▲창밖에 대한 호기심나가고 싶어요
정가람
물론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지리산 밑 산청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 서울 화곡동 마당 있는 집에서 잔디밭을 뒹굴며, 그네를 타며, 라일락 나무에 오르며 살았던 좋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요즘 세상에는 비싼 아파트가 부의 상징이 되어버렸지만,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마당 있는 단독 주택에서 개들도 키우면서 사는 것이 나의 목표이기도 하지 않는가.
하지만 지금 까꿍이를, 그리고 아내 뱃속에 있는 산들이를 위해서 이사할 수는 없었다. 인천에 자리한 회사도 회사였지만 올해 초부터 심상치 않던 전셋값 폭등이 현실적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작년 전셋값 인상분 1천만 원도 겨우겨우 마련했는데, 최근 알아본 주위의 전셋값은 다세대 주택도 최소 2~3천만 원 이상 올라 있었다. 서울 변두리 오류동도 2~3천만 원 인상이라면 다른 지역은 불 보듯 뻔했다. 오히려 작년 겨울 전세 계약을 갱신한 것이 운 좋았다고 할 수밖에.
결국 아내는 부동산을 다녀온 뒤 전처럼 이사 가자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지는 않았다. 여전히 바깥에만 나오면 좋아라 방방 뛰는 아이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건 똑같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인식한바, 뒷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2년 뒤 전세 계약이 끝날 때 전셋값이 지금과 같이 비정상적으로 인상되어 있지 않기를 바라며, 또한 많은 미분양 아파트들이 장기임대주택으로 전환되기를 바라며.
나가는 대신 책을 읽을까?임신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데 제약을 받던 아내는 대신 아이에게 책을 사주기 시작했다. 물론 돌 갓 지난 아이가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밖을 돌아다니며 세상을 인식하기 어렵다면 대신 책을 통해서라도 새로운 자극을 주기 위함이었고, 아이가 혼자 책을 볼 때면 그만큼 엄마에게 자유시간이 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아이는 책에 꽤 흥미를 보였다. 넘기는 재미 때문인지, 아니면 각 장마다 그려진 새로운 그림 때문인지 혼자 책장을 넘기면서 신기한 듯 꺅 소리도 질렀으며, 자신의 마음에 드는 책이다 싶으면 엄마나 아빠에게 가지고 와 읽어달라고도 요구했다. 물론 그게 읽어달라는 이야기인지 그냥 하는 행동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부모 된 입장에서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었다. 이젠 눈만 뜨면 책장에 가서 자신의 책들을 꺼내 너저분하게 펼쳐놓은 다음 한 권을 택해 읽는 기특한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