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1.04.09 15:38수정 2011.04.10 13:13
지역의 문화유산과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새로운 역사의식과 각오를 다짐해보는 제29회 '우리고장 향토문화역사 탐방'(4월 8일, 9일, 22일, 23일) 참가자 50여 명이 8일(금) 오전9시30분 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일정을 시작했다.
군산문화원(원장 이복웅)이 주최하고 군산시가 후원하는 역사탐방 첫날은 조선 태종 3년(1403년)에 창건한 '옥구향교'를 시작으로 '자천대(紫泉臺)', '옥산서원', '채만식 문학관', '옥구농민항일학쟁 기념비', '죽산리 3층 석탑', '발산리 문화재'와 '시마타니 농장 금고', '최호 장군 유지' 순으로 둘러보았다.
백목련 봉오리들이 봄 햇살을 받아 눈부신 옥구향교(문화재 96호)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전호진 옥산서원 원장의 안내로 대성전, 명륜당, 양사재, 전사재, 외삼문, 내삼문, 교직사, 단군성전 등을 돌아보며 군산문화원 이진원 부원장의 설명을 들었다.
조선 후기 정자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자천대'는 참가자들 발걸음을 한참 세워놓았다. 얽힌 사연과 얘깃거리가 많았기 때문. 오식도에서 태어난 최치원(서기 851년~?)이 그곳에서 책 읽는 소리가 당나라에까지 들려 사신이 건너와 데려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고.
2층 누각형식에 팔작집으로 지어진 자천대는 원래 옥구군 선연리 하제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1941년) 군용비행장 기지로 편입되는 바람에 헐리게 되자 당시 옥구 유림들 발의로 옥구향교 경내로 옮겨 세워졌다 한다.
군산문화원 이 부원장은 "향교는 오늘날의 국립학교이고 서원은 사립학교에 해당된다"고 덧붙이며 옥구향교와 옥산서원이 자리한 상평은 조선 때 원님이 거주하고 장이 서던 큰 마을이었으며 일제의 숱한 탄압을 이겨낸 마을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이 부원장은 건너편에 있는 공자묘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곳에서는 매년 두 번씩 석전제를 모시는데 공자가 돌아가신 봄과 태어난 가을에 제사를 모신다고 했다. 공자, 맹자, 주자 등 옛 성현 스물일곱 분(18현은 한국 분) 제사를 올린다고.
1929년 봄, 일제치하에서 어렵게 건립된 옥산서원(시 지정 유형문화재 3호)으로 옮긴 참가자들은 국권을 잃은 상황에서도 충(忠), 효(孝), 예(禮)를 숭상하는 전통문화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지역 유림들의 의지를 확인하고 그들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전 원장은 "옥산서원에는 신라 시대 성현 문창후 최치원 선생을 비롯하여 옥구 지역의 문무 및 충효에 특출한 선현 14분을 모시고 있다"며 "유림의 배향으로 매년 음력 9월 '계정일(季丁日)'에 대제(大祭)를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당인 옥산원, 강당, 내삼문, 원직사, 외삼문 등 총 다섯 채 건물로 이루어진 옥산서원은 옥구향교와 담장 사이로 이웃하고 있으며, 말쑥하게 단장된 기단 아래에는 세 개의 댓돌이 놓여 있다. 초석은 평평한 자연석을 사용하였고, 기둥은 원형으로 잘 정제되어 있었다.
채만식 문학관에서
오전 11시 백릉 채만식기념관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전시실을 둘러본 뒤 군산문화원 이복웅 원장의 강의를 들었다. 이 원장은 채만식(1902년~1950년)이 걸어온 발자취와 그의 대표작 <탁류>, 데뷔작 <세길로>, 풍자소설 <레디메이드 인생>등에 담긴 시대적 배경을 중심으로 강의를 이어나갔다.
이 원장의 강의가 끝나고 참가자들은 식민지시대 문학세계를 소개하는 영상을 통해 채만식을 만났다. 15분 정도 상영된 영상은 소설을 통해 암울했던 시대상황을 인식하려 했던 채만식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있었다.
영상을 관람하고 기념관 앞 잔디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옆자리에서 도시락을 드시던 조태진(77) 할아버지는 우연히 알고 역사탐방에 참가했는데 오기를 잘했다며 다음에는 손자들을 데리고 와야겠다고 거듭 말했다.
전직 공무원이었고 날마다 노인회관에 나가면서 틈틈이 서예를 배우고 있다는 조 할아버지는 옥구향교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 방문한 옥구향교가 자꾸 마음이 끌린다고. 시내 노인회관보다 아늑한 시골에 위치한 향교가 더 좋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옥구농민항일항쟁' 기념비에서
참가자들은 도시락을 먹고 12시 40분 '옥구농민항일항쟁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임피중학교로 이동했다. 채만식 문학관에서 소요된 시간은 10분. 이곳에서는 김양규(86) 향토문화연구회 회장이 해설자로 나섰다.
"나는 학교 선생도 혔고, 여든 여섯이니께 여러분을 학생으로 볼꺼여. 그런 줄 알고 말 잘 들어. 여그는 '옥구 농민 항일 항쟁 기념비', 내 눈 똑바로 보고 다들 똑같이 따라서 혀!"
"옥구 농민 항일 항쟁 기념비!"
"일본에 항거하고 투쟁혔다는 기념비여. 일제하 조선은 80%가 농민이었고, 그중 80%가 소작인이었어. 특히 일본인 농장 밀집 지대였던 군산·옥구는 쌀과 농토 수탈의 대표적인 지역이었어. 따라서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이 어느 고장보다 강할 수밖에 없었지. 60년 넘게 묻혀 있다가 1991년에 공개된 '옥구농민항일항쟁'이 대표적인 예다 이말여···."
김 회장은 75%의 고율소작료를 거부한 농민 34명이 치안유지법을 적용받아 유죄판결을 받았던 1927년 옥구 농민의 항일항쟁은 단순한 '이엽사농장'의 소작쟁의가 아니라 전국에서 유일한 조직적인 농민 항쟁이고, 3·1운동의 연장이며, 독립운동이었다고 강조했다.
발산리 시마따니 농장
오후 1시 40분 임피중학교를 출발한 참가자들은 보수 중인 발산리 5층 석탑, 석등, 시마따니 농장 금고를 둘러보았다. 전 군산대학교 천영균 교수는 시마따니 농장의 많은 석물 중 고려 초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등에 대해 설명했다.
"높이가 2.5m인 석등에 창이 있는 점과 돌에 불 피우는 사천왕상의 조각이 특이합니다. 또한, 둥그런 기둥 전면에 이빨과 수염, 발톱이 뚜렷한 용이 구름 속에서 약동하는 모습을 정교하게 감아서 새겨놓아 아름다움이 뛰어납니다."
천 교수는 8각의 상대석은 여덟 개의 연꽃잎이 매우 정교하게 조각되었다며 기둥 돌에 용이 새겨진 경우는 한반도 내에서 유일하고, 만주에서 발견되었던 발해(渤海)의 경우만 그 예가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참가자들은 대야면 죽산리 건장산 기슭에 자리한 3층 석탑(도지정유형문화재 제66호)과 최호 장군 유적지(도지정문화재 제32호)를 둘러보고 오후 3시 30분 향토문화역사 탐방 첫날 일정을 모두 마쳤다.
"엄마들이 배워야 아이들도 알게 되잖아요"
일정을 마치고 만난 '군산녹색어머니연합회' 이경희(43) 회장은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어르신들 해설이 조금만 짧았으면 더욱 재미있는 역사공부 시간이 되었을 거라며 아쉬워하기도.
-단체로 오신 것 같은데 어떻게 참가하게 되었는지요?
"지역 역사에 관심이 많은 회원 24명이 참가했습니다. 문화원에서 역사탐방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군산을 가슴에 담아가자는 마음으로 참석했어요. 역사는 엄마들이 배우고 알아야 아이들도 알게 되잖아요."
-여러 곳을 다녔는데요. 어디가 가장 기억에 남는지?
"옥구향교였어요. 전통 유림에 대한 얘기라서 처음 듣는 내용이 많았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해설하는 선생님이 엑기스만 말씀해주니까 가슴으로 팍팍 들어왔어요."
-행사를 주최한 군산문화원에 당부 말씀이 있다면?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되어 참석한 보람이 있습니다. 고마웠어요. 그런데 해설이 너무 긴 것 같았습니다. 저에게 끊어달라고 부탁하는 쪽지를 보낸 회원도 있었으니까요. 시간을 짧게 하는 완성도 높은 해설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1.04.09 15:38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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