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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로 본 자살 문제] 한국청소년의 슬픈 초상... '자살공화국' 오명 씻어야

등록 2011.04.14 14:44수정 2011.04.1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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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는 고3 수험생들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는 고3 수험생들연합뉴스

1980~1990년대 한국 청소년들의 삶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사건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유서를 남긴 여고생의 자살이고, 2000년대 이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는 사건은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싶다"던 초등학생의 일기일 것이다. 우리 청소년은 세계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인 동시에, 가장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청소년 자살률도 세계 1위란다.

카이스트 학생들 이전에도, 어쩌면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대학생들과 청소년들이 자살을 하고 있는데 아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죽음마저 학벌을 차별한다는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 진의를 알지만 지금은 그렇게만 생각하면서 죽음의 무게를 따질 상황은 아닌 듯하다.

각종 통계와 수치를 통하여 우리 사회의 청소년 자살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한 번 살펴보자.

21세기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

 연도별 학생 자살 현황. 2008년 이후 해마다 초중등생과 대학생을 합해 4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자살을 하고 있다. 하루 평균 1.2명에 달하는 충격적인 수치다.
연도별 학생 자살 현황. 2008년 이후 해마다 초중등생과 대학생을 합해 4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자살을 하고 있다. 하루 평균 1.2명에 달하는 충격적인 수치다. 김행수

교과부와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 초중등학생들의 자살 건수는 100명 전후였는데 2009년 처음으로 200명을 넘어섰고, 2010년 다시 150명대로 내려갔다. 또 다른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대학생 자살 건수는 해마다 200건 이상으로 2008년에는 300건이 넘었다. 이 통계만 보더라도 최근 몇 년 사이 해마다 400명 넘는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데, 이는 하루에 1.2명의 학생이 자살하고 있다는 뜻이다.

2009년 10대 자살률이 40.7%나 증가하면서 전체 청소년 사망원인 중에서 '자살'이 1순위가 됐다. 2008년 이전까지만 해도 10대 사망원인 1위는 '교통사고'였는데, 이제 자살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통계청은 그 원인을 유명인들의 자살에 따른 영향(이른바 베르테르 효과)과 학업 등에 대한 스트레스라고 분석했다.

성인 자살률은 물론이고 청소년 자살률 또한 세계 최고인 나라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얻은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닌 듯하다. 그야말로 한국 사회는 "자살 공화국, 자살 권하는 사회"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이와 관련된 더 걱정되는 통계와 수치들도 많다.


가장 불행하다고 느끼고,  더불어 사는 법 모르는 아이들

한국 청소년들의 수면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짧고, 학습 시간은 가장 길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을 보고 우리 사회는 "요즘 아이들 공부 안 해서 큰일"이라고 한다. PISA(국제학업성취도 평가), TIMSS(수학·과학 성취도 추이변화 국제비교연구) 등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국제적인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한국 학생들의 수준은 늘 최상위 그룹에 존재하는데 기성세대와 보수언론은 "요즘 아이들 공부 못해서, 수준 떨어져서 큰일"이라고 한다.


우습게도 그 어른들 역시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갖고 있는 객관적 현실에도 보수언론은 "한국 노동자들 일 안 하고 월급만 많이 받아서 큰일"이라는 식으로 보도하니 할 말 다했다. 이렇게 공부 잘하고, 공부 많이 하는 우리 아이들은 행복하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로 조사됐다.

 OECD 주요국가 청소년의 행복지수. 우리나라가 조사대상 26개 나라 중 종합 25위로 꼴찌수준이었다. 그나마 3개 항목 중 2개 항목은 아예 "0점"이었다.
OECD 주요국가 청소년의 행복지수. 우리나라가 조사대상 26개 나라 중 종합 25위로 꼴찌수준이었다. 그나마 3개 항목 중 2개 항목은 아예 "0점"이었다.유니세프 한국방정환재단
2010년 5월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와 한국방정환재단이 발표한 '2010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비교'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은 '삶에 만족하는가?'란 질문에 53.9%만 '그렇다'고 응답해 조사대상 26개국 가운데 꼴찌 수준이었다.

솔직히 행복하다고 느끼는 우리 학생들이 이렇게 많아 하고 위안을 삼아야 할 지경이다.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네덜란드(94.2%)보다 40.3% 낮고, OECD 평균(84.8%)보다도 30.9%나 낮다. 우리나라 안에서만 보더라도 2009년 조사된 55.5%보다도 1.6% 낮아졌다.

반면, '주관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25.6%,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18.3%로 나타나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또 '행복을 위해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돈'이라고 답하는 비율이 증가했는데, 고교 3학년에 이르면 '돈'이라고 응답한 학생 비율(28%)이 '가족'이라 답한 비율(22%)을 넘어 가장 높았다. 이것이 2010년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슬픈 초상이다.

이와 관련해 또 하나 시선을 끄는 통계는 우리 학생들의 사회성 지수 즉, "사회에서 타인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능력"이 세계 꼴찌라는 것이다. 지난 3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발표에 의하면, 2009년 국제교육협의회(IEA)가 세계 중2 학생 14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제 시민의식 교육연구(ICCS)'에서 우리 청소년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지표는 1점 만점에 0.31점으로 전체 36개국 중에서 35위로 꼴찌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편, 한국 청소년은 "정부를 신뢰하느냐?"는 질문에는 전체의 20%(전체 평균 62%), "학교를 신뢰하느냐?"는 질문에는 45%(전체 평균 75%)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정부와 학교로 대표되는 기성사회에 대한 신뢰도도 바닥 수준임을 의미한다. 우리 학생들은 수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지만 정부나 학교가 이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매우 낮았다. 이는 갈등 상황을 자신이 스스로, 또는 이웃과 더불어 해결하는 것도 잘 못하고, 학교나 정부가 이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도 거의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 자살 문제에 무방비

우리 학생들의 자살은 이렇게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 무대책이라고 할 정도로 너무나 둔감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지난 2010년 8월 <시사저널>이 초중고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살 관련 설문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 설문에서 응답자 절반에 가까운 479명(48%)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답하고, 그 중 107명은 '자살을 시도해본 적이 있다'라고 답했다. 자살을 생각했다는, 실제로 시도해본 적이 있다는 수치보다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은 그 결심을 한 학생들의 행동양상, 그리고 우리 사회에 대한 인식이다.

자살과 관련하여 "누구와 상담을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선생님(2%), 학교 등 기타(7%), 자살예방센터(2%), 청소년관련단체(4%)로 나타나 소위 제도권과 상담하겠다는 응답은 모두 합해도 15%밖에 안 되는데, 이는 가족(7%), 친구(9%) 등 개인 관계로 해결하겠다는 것보다 낮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어떤 식이든 상담을 받겠다는 응답이 31%인데, 사실상 어디와도 상담하지 않는다는 의미인 무응답이 두 배가 넘는 69%에 이른다는 점이다. 우리 학생들은 자살문제와 관련해 사회 어디에서도 터놓고 상담할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질문 "학교나 사회의 자살 예방 시스템이 어떠하다고 보십니까?"는 우리 모두를 반성하게 한다. '자살예방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고 대답한 학생은 3%이고, '보통이다' 14%를 포함해도 고작 17%밖에 안 된다. 이에 비해서 '잘못되어 있다'고 대답한 학생이 절반에 가까운 46%이며, '잘 모르겠다' 34%, '무응답' 3%를 포함하면 부정적 또는 무응답이 무려 83%에 이른다. 제도권과 기성세대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그야말로 우리 학생들은 자살 문제와 관련 '무방비 도시'에 살고 있는 셈이다.

주목받는 서울교육청의 "학생 정신 건강 상태" 전수 조사

이런 가운데 서울교육청(교육감 곽노현)은 카이스트 사태가 이슈화하기 전부터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학생 정신 건강 증진 사업"이라는 의미 있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서 곽노현 후보는 학생들의 자살 등 정신 건강과 관련하여 ADHD, 우울증 진단/치료 시스템을 전 학교에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냈고, 당선 후 이를 구체화했다. 그리고 지난 3월 서울 1100여 개 모든 학교에 관련 공문을 내렸고, 이를 위한 예산도 배정했다.

이 계획의 주된 내용은 "초 1·4, 중 1, 고 1 학생에 대한 자살, 우울증 등 정신건강 선별검사를 전수 실시하고, 결과에 따라 전문기관과 연계하여 상담 및 치료를 하고, 학교 관계자(담당·담임교사 등), 학부모 등에 대한 교육과 연수를 실시하며, 특히 서울시학교보건진흥원에서 찾아가는 상담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받는 것은 3년마다 모든 학생들이 정신건강 관련 진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상담 치료를 학교에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학교보건진흥원에서 직접 찾아가는 상담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를 위하여 각 학교에 진단과 연수를 위한 예산을 50만 원씩 배당했고, 이에 따라 현재 모든 학교들에서는 학생정신건강 검사를 시행하거나 이를 계획하고 있으며, 결과를 6월 30일까지 보고하도록 했다. 시범 실시나 표본 조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서울뿐 아니라 당장 전국 모든 학교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교과부(장관 이주호)도 카이스트 사태를 계기로 하여 지난 11일 <학생자살 예방 및 위기관리 강화>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학생의 건강한 자아정체성 형성지도, 우울·자살생각 등 조기발견, 자살위기상황 대처능력 함양 등에 체계적·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환영할 일이다. 다만 현재 쏟아지는 사회적 우려에 대한 면피용의 1회성 뒷북치기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전문상담교사 배치 비율 5%... 우리 사회의 심각한 직무유기 끝나야

학생들의 자살 문제가 이렇게 심각함에도 교육 당국이나 학교는 거의 대책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 기준 상담교사가 있는 학교는 전국 1만1000여 개 중 575개(5%)에 불과한 것이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실적인 문제로 모든 학교에 전임 전문상담교사 배치가 어렵다면 기존의 상담교사 자격증을 가진 교사의 수업 등 다른 업무를 경감해주고 반전임 형태로 근무하도록 하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서울의 어느 사립학교에선 "자율형사립고는 입시 성적이 중요하기 때문에 상담교사는 필요없다"면서 상담자격증을 가진 교사에게 수업도 안 주고 상담 업무도 맡기지 않는,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한국 학생들이 가장 불행한 모순, 한국에서 공부 제일 잘하는 카이스트 학생들이 줄줄이 자살하는 현실이 우리 학생들이 처한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이제라도 경쟁 만능, 평가 만능, 결과 지상주의 교육, 생명경시 풍조에 대한 심각한 반성을 하고, 청소년들이 스스로 하늘 같은 목숨을 버리면서 던지는 경고에 대해 당장 답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 청소년 자살률 1위,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노력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직무유기이자 다음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죄악은 이제 끝나야 한다.
#자살 #곽노현 #정신건강 #KA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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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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