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현장 사회 두 번째, 이러다 '꾼' 될라

10년 만에 구제역 농장 입식 반대 집회를 이끌다

등록 2011.04.16 15:03수정 2011.04.1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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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열린 소사리(강원 횡성 안흥) 돼지농장 재 입식 반대 주민 결의대회 사회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1주일 전 쯤 받았다. 주민대책 위원장인 박상수 소사리 이장님과 집회 실무를 맡은 주민 정아무개씨가 찾아온 것이다.

 

귀향 후 지역 행사인 면민체육대회 개회식 사회를 수년 간 맡은 경험 밖에 없는 내게, 성격이 사뭇 다른 집회 사회를 의뢰한 것은 다소 의외로 여겨질 일. 그러나 꼼짝 없이 요청을 수락할 수밖에 없는 '무기'가 그들에게 있었으니, 사연은 벌써 10년이나 훌쩍 지나버린 2001년도 서울에서 농민단체 일을 하고 있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a  돼지 재입식 반대 결의대회에서

돼지 재입식 반대 결의대회에서 ⓒ 성락

돼지 재입식 반대 결의대회에서 ⓒ 성락

 

전국 농민대회에서 처음 마이크를 잡다 

 

사슴을 사육하는 농민들의 단체인 사단법인 한국양록협회는, 당시 한국·뉴질랜드 간 주요 통상 의제였던 절편녹용(얇게 썰어서 건조한 후 한약재로 규격화 한 녹용) 수입개방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전면 수입개방을 반대하는 국내 농가들로서는 집요한 통상 압력으로 시장 문을 열려는 뉴질랜드, 그리고 국내 산업의 경쟁력이 낮다는 이유로 개방을 허용하려는 우리 정부를 상대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전국 양록인 결의대회가 계획되고 드디어 2001년 9월 11일 서울 한복판 종묘공원에 2천여명의 사슴농민들이 집결했다. 이들은 오전 집회와 주한 뉴질랜드 대사관까지의 가두행진, 오후에는 농림부가 있는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연속으로 집회를 가졌다.

 

당시 협회 사무총장 직을 맡고 있던 나는 난생 처음 수 천 명의 시위대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행사를 이끌었다. 가두행진 시에는 차에 올라 시위대를 선도하며 가두방송 및 구호선창을 하며 깜짝 '투사'로 변신 했었다. 평소 차분한 언행의 소유자로만 알려져 있던 나의 그날 '변신'에 주위 사람들이 크게 놀란 것은 당연한 일.

 

a  구호 선창

구호 선창 ⓒ 성락

구호 선창 ⓒ 성락

 

과천 정부청사 앞 대회, 그리고 정씨와의 인연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는 집회가 격렬하게 전개됐다. 농림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던 농민들 일부가 통제에서 벗어나 기습적으로 청사 진입을 시도한 것이다. 이를 막는 전경들과의 몸싸움이 위험 수위까지 치닫던 중, 대표단과 농림부 장관의 면담이 성사되면서 겨우 과열된 분위기가 진정됐다.

 

농민대표와 장관의 면담 자리에 축산국의 담당 과장으로서 배석했던 이가 바로 박상수 이장과 함께 찾아온 정아무개씨이다. 당시 농민대회 후 "사람을 그렇게 골탕 먹일 수 있수?"라며 농담을 걸었던 그는, 농림부 고위 관료로 정년퇴임하고 이곳 소사리에 귀농해 한우를 사육하며 농업인으로 살고 있다.

 

여담이지만, 마침 녹용수입 반대 결의대회가 있었던 2001년 9월 11일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몇 개월의 준비 끝에 업계로서는 처음으로 전국규모 집회를 성공적으로 치렀고, 국제 통상과도 관련이 있는 대회라 국내외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었는데 정작 보도는 거의 되지 못한 행사가 된 것.

 

하필이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미국 무역센터 테러 사건이 그날 일어난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사상 초유의 테러 사건이 터지면서 TV와 신문지면은 작은 농민단체의 집회기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던 것이다.

 

a  행진의 선봉에

행진의 선봉에 ⓒ 성락

행진의 선봉에 ⓒ 성락

 

퇴임 후 귀농한 정아무개씨 주민대회 사회 요청

 

그때의 인연을 들어 주민 결의대회 사회를 요청하는데, 딱히 마다할 명분이 있을 리 만무한 터. 결국 본의 아니게 집회 경험이 없는 주민들을 대신해 준비 과정까지 관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주민들이 마련한 구호와 결의문 등을 집회 성격에 맞게 손질하고, 대회 식순, 연대 발언자 섭외, 풍물패 초빙은 물론 행진 시 사용할 음악 CD 구하는 일까지 맡았으니, 10년 전 정아무개씨를 담당과장으로서 좌불안석토록 만들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 것이다.

 

비록 집회 참가자는 150여명에 불과했지만 열기만큼은 예전 경험한 전국규모 대회와 다를 바 없음을 실감했다. 연단에 서는 순간, 가슴 속으로부터 울컥 끓어오르는 비장함 또한 10년 전 그때와 다를 바 없으니 '타고난 꾼인가?' 스스로 착각에 빠지게 한다.

 

10년만의 사회, 끓어오르는 비장감 그때와 같아

 

몇 차례 어색한 부분도 있었지만, 주민들의 넘치는 호응과 연대 발언자들의 지원 덕분에 행사는 잘 마무리 되었다. 집회 상대가 된 돼지농장 정문을 통과해 약 1km 정도를 행진하며 줄곧 구호를 선창하고, 나름의 상식을 동원해 재 입식 반대의 당위성을 외치다보니 목에 무리가 왔다.

 

10년 전 하루 종일 교대 사회자도 없이 마이크를 잡고, 며칠간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어 입만 '벙긋벙긋'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a  2001년 전국 양록인대회 장면

2001년 전국 양록인대회 장면 ⓒ (사)한국양록협회

2001년 전국 양록인대회 장면 ⓒ (사)한국양록협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당면 현안으로 당연히 나서야 하는 일을 했음에도, 주민들의 인사를 참 많이 받았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스스로 뿌듯함이 느껴진다. 앞으로 구제역 농장 재 입식 반대와 관련, 몇 차례 주민대회가 있을 터인데 도맡아 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러다가 정말 '꾼' 되는 것 아닐까?

2011.04.16 15:03ⓒ 2011 OhmyNews
#집회 #사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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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지키며 각종 단체에서 닥치는대로 일하는 지역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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