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에서 만난 이정표
변종만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 칠성 소재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등잔봉(해발 450m)은 높지 않은 산이지만 처음부터 오르막이 이어져 힘이 든다. 숨을 헐떡거리다 산허리에서 만난 이정표 '힘들고 위험한 길, 편안하고 완만한 길'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인생살이가 그렇듯 각자의 길에서 행복을 찾아내면 된다. 힘들고 위험한 길을 걸으며 또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은 내가 택한 인생살이다.
등잔봉 정상의 조망을 나뭇가지들이 가린다. 잡목 몇 개만 제거해도 호수의 멋진 풍광이 제대로 보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산을 오르며 가지 제거 작업을 한 잡목을 이용해 산책로를 개척 중인 사람들을 만났는데 등잔봉도 잡목을 이용해 전망대를 만들고 있다. 세계적으로 청정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뉴질랜드에서 놀이기구, 운동기구, 벤치 등이 모두 목재로 만들어진 것을 보며 감동했던 터라 자연을 이용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등잔봉부터 1.1㎞ 거리의 한반도 전망대까지는 나뭇가지 사이로 괴산호가 보이고 평탄한 산길이라 두런두런 이야기가 이어진다. 전망대에 도착해 한반도를 닮은 지형이 호수와 어우러진 모습과 괴산댐, 반대편 산 밑의 오지마을 갈은(갈론)구곡 가는 길을 바라봤다.
전망대에서 천장봉(437m)까지는 300여m 거리로 가깝다. 천장봉 못 미쳐에는 진달래 동산으로, 지나서는 산막이 마을로 가는 갈림길이 있어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이곳에서 산막이 옛길로 향하지만 우리는 천장봉을 지나쳐 삼성봉(550m)까지 갔다. 평평하고 제법 넓어 쉼터로 알맞은 정상에 사랑나무 연리지가 있어 반갑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바람소리 뿐, 적막강산이지만 가끔은 이런 곳이 좋다.
삼성봉에서 내려오는 하산 길은 가파른데다 쌓여있는 낙엽이 미끄럼을 타게 해 엉덩방아를 찧기 쉽다. 산 아래로 내려오면 임도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농원을 만난다. 물길을 내려다보며 걸으면 물에 막히기 전부터 오지의 유배지로 산막이 옛길의 끝인 산막이 마을이다.
이제 3가구만 남은 마을에 들어서면 노수신적소와 하얀 집이 눈에 띄는데 노수신적소(충북기념물 제74호)는 우의정·좌의정·영의정을 지낸 조선시대의 문신 노수신이 유배생활을 할 때 거처하던 곳으로 괴산댐을 만들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하얀 집은 최근에 지어졌다. 이곳에서 맑은 공기도 마시고 포장마차에서 두부 안주로 막걸리도 한 잔 마시는 게 인생살이의 묘미다.
산막이 마을에서 옛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경치가 좋은 선착장이 있다. 5000원이면 이곳에서 배를 타고 초입의 선착장까지 갈 수 있다. 젊은이들이 그네를 타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선착장을 지나 흙길을 걸으면 가까운 거리부터 나무계단이 이어지고 아름다운 호수 옆으로 산딸기길, 가재연못, 진달래동산, 다래 숲 동굴, 마흔고개, 고공전망대, 괴음정, 호수전망대, 얼음 바람골, 앉은뱅이 약수, 망세루와 연화담, 노루샘을 차례로 만난다. 산막이 옛길은 때 묻지 않은 청정지역이고 여러 가지 볼거리들이 쪽빛 호수와 어우러져 산책길이 지루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