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 꽃길 지나 진달래의 신천지로

[창녕 관룡산, 화왕산 진달래 기행 ②] 관룡산-화왕산 능선

등록 2011.04.22 10:55수정 2011.04.2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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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기사("고려 개혁공신 신돈이 창녕 옥천사지 출신이래")에서 이어집니다.(편집자 주)

a  관룡사 부도 1.

관룡사 부도 1. ⓒ 이상기

그러나 절을 나온다고 절을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산으로 이어지는 길가 언덕에 스님들의 부도가 보이기 때문이다. 부도는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두는 일종의 사리탑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가까이 가 본다. 관룡사 부도는 모두 7기로 절 동북쪽에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다. 가장 먼저 찾은 것이 경남 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는 부도다.


기단부, 탑신부, 옥개부의 3단 구성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기단부 아래에 2단의 바닥돌이 또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세 개의 받침돌(臺石)로 이루어진 기단부가 있다. 사각형의 하대석에는 구름 무늬가 있고, 윗부분에 복련을 장식했다. 그 위 팔각형의 중대석에는 연꽃잎을 펼쳐놓은 것 같은 연판문(蓮瓣紋)이 새겨져 있다. 그 위 상대석은 반구형으로 앙련을 장식했다.

탑신부는 구형인데, 우리말로 '알독'이라고 부른다. 이곳에 바로 스님의 유골이 안치된다. 그런데 알독이 아주 단순하고 소박하다. 그것은 조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알독 위에는 옥개부가 있는데, 이것 역시 그렇게 정교하지 않다. 약간 삐딱하게 모자를 쓴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부도가 전체적으로 서민적이면서도 친근한 느낌을 준다. 고려 말 조선 초 작품으로 추정되며 높이가 205㎝이다.

a  관룡사 부도 2

관룡사 부도 2 ⓒ 이상기


이 부도 아래에는 두 기의 종형 부도가 있다. 부도의 윗부분에 연꽃 봉오리가 있어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조금 더 가니 알독 형태에 옥개부와 상륜부가 잘 남아 있는 것도 보인다. 조금 더 가니 종형 부도가 또 나타나는데, 연꽃 아래 주름이 하나 있다.

이처럼 부도는 시대에 따라, 스님의 위상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유명한 부도에는 탑비가 있거나 기록이 있어 어느 스님의 부도인지 알 수 있으나, 이곳 관룡사 부도에는 그런 게 없다. 그렇다면 관룡사 출신의 큰 스님은 별로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혹시 부도 중 하나가 유공비가 있는 환몽화상의 것이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다. 

진달래, 제비꽃, 붓꽃... 봄꽃 잔치


a  붓꽃.

붓꽃. ⓒ 이상기

부도를 보고 나자 산길은 조금 가팔라진다. 관룡사 동북쪽으로 뻗어 있는 능선으로 올라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 능선은 해발 740m인 구룡산으로 이어진다. 이 길은 바위와 소나무 그리고 진달래가 어우러진 오르막길이다. 올라가면서 보니 서쪽으로 관룡사가 있고, 남쪽으로 우리가 들어온 옥천리 골짜기가 펼쳐진다. 동쪽으로는 농업용 저수지인 청간지도 보인다.

해발 600m쯤 올라가니 이제는 암릉이 나온다. 산행의 묘미는 역시 암릉에 있다. 한두 개의 암릉을 넘자 바위 아래로 천룡암이 보인다. 길옆으로는 분홍빛 진달래 말고도 보라색의 제비꽃, 붓꽃이 보인다. 봄을 알리는 꽃으로는 산수유, 생강나무처럼 노란꽃을 피우는 게 있고, 진달래, 철쭉처럼 분홍꽃을 피우는 게 있다. 이들이 나무 종류라면, 제비꽃과 붓꽃은 풀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런지 제비꽃과 붓꽃은 길가 풀섶에 숨어서 피어난다.


바위도 넘고 꽃도 보고 전망도 즐기며 1시간 30분쯤 오르자 구룡산에 이른다. 구룡산은 일부 지도에는 표기가 없다. 그것은 우뚝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밋밋해서 산이라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에 잡목이 많아 조망도 시원치 않다.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평평한 곳이 많아 점심식사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각자 도시락을 싸왔는데, 음식이며 반찬을 많이 준비해와 푸짐한 점심식사를 한다.

a  관룡산의 암릉.

관룡산의 암릉. ⓒ 이상기

구룡산에서 관룡산으로 이어지는 암릉길 

구룡산에서 관룡산까지는 1㎞가 안 되는 길이지만 암릉구간이어서 조금 위험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중간에 자일을 이용해 내려가야 하는 구간이 있어, 우리 같은 단체 팀이 그곳을 지나는 데는 삼사십 분은 걸린 것 같다. 그렇지만 중간 중간 바위 정상부에 조망 포인트가 있어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암릉이 산행의 재미를 더해준다.

바위에 올라 남쪽을 내려다보니 관룡사가 소나무 사이로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다. 남동쪽으로는 용선대 석불이 아주 조그맣게 보인다. 서쪽으로는 아직 누런색 억새로 뒤덮인 화왕산 정상이 그 모습을 조금 보여준다. 관룡산은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런지 소나무가 많은 편이다. 관룡산의 멋은 이처럼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풍경에서 찾을 수 있다.

a  관룡산 아래 천룡암.

관룡산 아래 천룡암. ⓒ 이상기

관룡산 정상에 이르니 오후 1시 20분이다. 이곳 역시 평지여서 산 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넓은 공터라는 느낌이 든다. 정상석도 임시방편으로 만들었다. 자연석에 매직으로 관룡산이라는 글자를 써넣었다. 그 옆에 깨진 아크릴판이 있어 산 높이가 754m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은 관룡산 산행의 정점으로, 길이 세 갈래로 갈라진다. 동쪽으로 가면 우리가 올라온 구룡산이 있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관룡사가 나온다. 우리는 여기서 방향을 북쪽으로 틀어 일야봉 산장으로 내려간 다음, 다시 서쪽에 있는 화왕산으로 갈 것이다.

개나리 꽃길 지나 <허준> 세트장으로

관룡산 정상에서 일야봉 산장까지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일야봉 산장 가까이 내려가니 도로가 나타난다. 가을에 하는 화왕산억새축제를 위해 낸 길로, 드라마 <허준> 세트장을 거쳐 화왕산성 동문까지 차가 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가지 않고 산으로 난 지름길을 따라 화왕산 방향으로 진행한다. 이 길 주변으로는 개나리를 심어 노란 개나리꽃의 향연을 볼 수 있다.

올해는 봄이 늦게 오기도 했고, 이곳의 고도가 높아 아직도 개나리꽃이 한창이다. 진달래를 보러 왔는데 이 산속에서 개나리도 볼 수 있다니 이건 눈이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호사다.

진달래 개나리 꽃길을 따라 작은 고개를 넘자, 눈앞에 신천지가 전개된다. 왼쪽으로는 갈색의 억새밭 너머로 분홍색의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오른쪽으로는 <허준> 세트장이 있는데, 시간과 역사를 과거로 돌리는 듯하다. 그리고 길을 따라 앞으로는 화왕산을 둘러싸고 있는 화왕산성 성벽이 능선을 따라 선명하게 이어진다.

a  화왕산 진달래

화왕산 진달래 ⓒ 이상기



a  허준세트장

허준세트장 ⓒ 이상기


억새는 아직 새순을 내놓지 못해 지난 가을과 겨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갈색 때문인지 진달래의 보라색이 더 밝고 화사해 보인다. 이 세트장은 1999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허준>을 촬영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그대로 남아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허준>은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을 원작으로 제작하여 평균시청률 48.9%을 기록한 인기 드라마였다.

현장을 보니 너와집과 초가집이 뒤섞여 있고, 마당 한쪽에는 무쇠솥이 두 개 걸려 있다. 함께 간 우리 회원이 드라마에서 그 솥을 봤던 기억이 난다고 말한다. 이곳 세트장에서 우리는 잠시 쉬어 간다. 세트장 너머 산자락에는 진달래가 붉게 타오른다. 이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진달래 산행의 묘미를 이곳에 앉아 잠시 느낄 수 있다.

화왕산을 감싸고 있는 화왕산성

a  화왕산성

화왕산성 ⓒ 이상기


<허준> 세트장에서 화왕산성으로 가는 길은 넓고도 평탄하다. 또 화왕산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화왕산성이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길가 언덕에는 진달래가 환하게 피어 있다. 화왕산성에는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문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동, 서, 남 세 개의 문만 존재한다. 북문은 문지(門址)만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는 동문으로 해서 산성으로 들어간다. 동문에서 보니 남문만 보인다. 서문은 언덕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남문은 옥천리에서 올라오는 지름길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남문이 가장 낮은 곳에 있고 바로 옆에 용지(龍池)라는 연못이 있어, 남문 지역에 성의 치소가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용지 옆에는 창녕조씨 득성비가 있는데, 창녕조씨의 시조인 조계룡이 이곳 용지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고 한다.

a  화왕산 정상에 이르는 길.

화왕산 정상에 이르는 길. ⓒ 이상기

우리는 동문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성벽을 따라 화왕산 정상으로 향한다. 성벽은 아주 가파르게 이어지다 어느 순간 끝난다. 그곳에서부터는 굳이 성벽을 쌓지 않아도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성곽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북쪽으로 이어지던 능선이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런데 북쪽 사면이 완전 낭떠러지다. 그러므로 화왕산의 북쪽능선은 자연스럽게 방어진지가 된다. 화왕산성은 남문 쪽으로만 틔어 있는 구조를 하고 있어 남문만 잘 지키면 난공불락의 요새이었을 것이다.

북쪽 능선을 따라가면서 보니 성안은 온통 억새밭이고, 능선을 따라서는 곳곳에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 정상 쪽으로는 진달래꽃이 절반쯤 피었고, 절반은 아직 덜 피었다. 사람들은 다음 주쯤 만개할 거라고 말한다. 능선을 따라 화왕산 정상에 이르니 세 시가 다 되었다. 오전 열 시에 옥천리 주차장을 출발했으니 다섯 시간 가까이 걸린 셈이다. 중간에 문화유산도 보고 꽃도 보고 점심도 먹었으니 그 정도는 걸릴 수밖에 없다.

a  화왕산 서쪽 사면

화왕산 서쪽 사면 ⓒ 이상기


화왕산 정상석에 보니 "756.6m"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창녕의 기상(氣像)"이라고 적혀 있다. 창녕의 기운과 맥이 이곳에서 발원한다는 뜻이리라. 화왕산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창녕의 진산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화왕산의 지리적인 중요성은 가야시대 때부터 인식되었을 것이고, 산성의 역사도 그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화왕산성은 둘레가 2.6㎞이다. 이제 말흘리 쪽으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구룡산 #관룡산 #화왕산 #허준세트장 #화왕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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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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