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노병들이 제식훈련 시범을 보이고 있다.
윤여문
"내가 가평대대(호주육군 3대대) 막내였습니다. 18살이었지요. 전쟁이 그렇게 참혹할 줄 몰랐습니다. 60년이나 지났는데 지금도 악몽을 꿉니다. 가평전투에서 죽은 전우들이 꿈속에 나타나는 겁니다. 피투성이로..."
한국전 참전용사 프랭크 윈터스씨(78)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오랫동안 하늘을 응시했다. 가슴에 훈장을 여러 개 단 역전의 용사가 눈물까지 내비쳤다. 잔뜩 찌푸린 시드니의 하늘에서 간간이 가을비가 흩뿌렸고.
프랭크 윈터스씨는 1932년 서부 호주의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규모가 큰 양 목장을 소유한 아버지의 희망으로 농부가 되기로 결심하고 공부하던 중이었다.
1949년 연말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같은 동네 형들이 전쟁터의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형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특히 전쟁이 끝나고 유럽의 여러 도시를 구경했던 얘기는 황홀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외국을 구경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병무당국에 물어보니 일본에 점령군으로 주둔하는 3대대에 지원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원입대를 한 겁니다. 그런데 지도를 펼쳐보니 일본이 8000km나 떨어져있는 나라였어요. 결국 일본 히로시마에 도착해서 기초훈련을 받는 도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부산을 통해서 3대대에 합류해보니 평안북도였습니다. 인천상륙작전 후에 북진하던 3대대가 중공군한테 밀려서 후퇴를 거듭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가평전투'가 벌어졌고요."시드니에서 열린 '가평전투' 60주년 추모식 지난 4월 26일 오후, 콩코드병원(구 전쟁부상자 원호병원) 채플에서 '가평전투 60주기 추모식'이 거행됐다. '한국전쟁 참전용사협회 NSW지부'가 주관한 추모식에는 마리 배셔 NSW주 총독과 한국전쟁 참전국가 외교사절 등이 참석했다.
호주 출신 한국전쟁 참전용사와 한인동포들이 다수 참석한 추모식은 참전용사 거스 브린씨의 '가평전투' 소개와 마리 배셔 주총독의 추모사 등의 순서로 이어졌다. 한편 콩코드병원 인근에 위치한 시드니제일교회 성가대원이 찬양 순서를 맡았다.
배셔 주총독은 "한국과 호주 출신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가평전투 60주기 추모식'을 열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면서 "60년 전에 '가평대대' 용사들은 후퇴하지 않는 호주군인 특유의 군인정신으로 중공군의 공세를 막아내어 한국군과 UN군이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면서 3대대의 용맹함을 상기시켰다.
배셔 주총독은 '가평전투' 당시 UN군 총사령관이었던 매튜 B. 리지웨이 장군이 쓴 공적인증서를 인용하여 "3대대가 4월 23일 새벽부터 24일 야간까지 완전하게 포위된 상태였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결사항전의 정신으로 중공군 1개 사단의 공격을 막아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한편 배셔 주총독은 "1년 전에 방문한 한국은 전쟁의 참화를 겪은 흔적이 전혀 없는 활기 넘치고 발전된 모습이었다"면서 "하루 전에 시드니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는데, 수많은 한국 출신 학사, 석사, 박사학위 수여자를 보면서 한국인의 뛰어난 능력을 확인했다"는 얘기를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