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머를 든 철거반원들이 골목길에 줄 맞춰 서 있다.
권우성
"20년 동안 살아온 보금자리... 어디 가란 말인가""20년 동안 살아온 집입니다. 그런데 아무 예고도, 대책도 없이 이렇게 쫓아내면 어떻게 합니까? 당장 오늘밤 어디서 자야 할지 막막합니다." 우씨는 전세 1800만 원에 얻은 이 집에서 지난 1992년부터 20년 동안 살아왔다. 공사장 막일을 해서 두 자녀를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다는 그는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이 집은 네 식구의 단란한 보금자리"였다고 말했다.
우씨에게 철거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 5월, 서울시가 이 지역을 주택재개발구역으로 지정하면서부터였다.
원래 상도4동 산 65번지의 소유주는 조선 태종의 큰아들 양녕대군의 후손들로 구성된 재단법인 '지덕사'다. 그런데 이 땅에는 수 십년 전부터 지덕사에 토지 사용료를 내며 무허가 건물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비록 무허가이긴 했지만 매매와 전·월세 계약도 자유롭게 이루어져왔던 터였다.
하지만 지덕사로부터 재개발 시행사로 선정된 세아주택은 무허가 주택들에 대한 '부당이익금 반환 및 건물 퇴거·철거 소송'을 진행했다. 50년 가까이 살아온 가옥주와 세입자들에게 재개발은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가옥주와 세입자들이 주택재개발 결정 취소 청구소송을 냈지만 패소했고, 지덕사 측은 '지역주택조합' 개발을 추진했다.
2009년 4월에는 세아주택 기아무개 대표가 재단법인 지덕사측 이사들과 원주민들로 구성된 재개발 추진위원회를 설득하기 위해 모두 43억 원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와중에도 마구잡이식 철거는 진행되었다. 철거가 진행되면서부터 세입자들은 이사비조로 100만~200만 원씩 받고 하나, 둘 떠나버리고 어느새 우씨가 살던 65번지 3호 주변에는 우씨 가족만 남게되었다.
우씨도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받아 이 동네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집주인도 이 동네에 살고 있는데, 당장 보증금을 돌려줄 형편이 아니라고 했어요. 보증금도 안 받고 집을 비워줄 수가 있나요? 보증금을 돌려받는다고 한들 지금 1800만 원 가지고 네 식구가 살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까지 여기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보증금 500만 원이나 1000만 원에 세든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