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은 살아있다> 겉그림
동녘
<태안은 살아 있다>(희망제작소, 동녘 펴냄)는 우리에게 '기름 유출 사고'로 기억되고 있는 '태안 대재앙' 그 3년간의 기록이다.
이 책이 나온 것은 기름 유출 사고 3년째인 2010년 12월 7일. 지역과 현장 중심의 연구를 통해 살아 있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사회 희망을 모색하는 시민참여 민간연구소인 희망제작소가 기획한 책이다.
글을 쓴 사람들은 사회·환경·경제·사회복지·행정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 11명. 이들은 3년 동안 기름 유출 사고 이후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진 지역은 물론, 피해를 당하였음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아 자원봉사자의 손길마저 미치지 못한 곳까지 사고 현장 구석구석을 다니며 6천억 쓰나미의 비극을 조사 연구했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총체적 보고서인 셈이다.
태안의 가장 큰 문제는 생활에 대한 만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도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기름재앙 앞에 할 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억울함만 가득할 뿐 달리 할 말이 없는 상황에서 소득이 3분의 1이하, 혹은 10분의 1 이하의 참혹한 수준으로 떨어져 버렸다. 3년이 흐른 지금 이 시점에서 본 태안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들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라도 자연은 복원력, 치유력, 그리고 생명력으로 기름 재앙 이전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태안에는 과거의 되새기고 싶지 않은 슬픈 추억과 아픔만이 가득한 상처받은 주민들이 남겨져 있다. 진정한 생태계의 복원은 인간 공동체의 복원과 동시에 이루어질 때 가능한 것이다. 태안의 파괴된 삶이 복원될 때 비로소 생태계의 치유와 다른 문제들이 함께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태안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태안은 살아있다> 에필로그 중에서"고의나 과실 아니다" 삼성중공업 책임회피2007년 12월 7일 새벽에 태안의 바다에 쏟아진 원유는 1만 500톤. 1995년 씨프린스호 사고 당시 유출량의 두 배이며,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모든 선박 유류 사고의 유출량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대참사는 삼성중공업 측이 바다에서의 안전수칙만 지켰더라면, 해상 예인은 위험하다는 경고만이라도 귀담아들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이다. 그럼에도 가해자인 삼성중공업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다 2008년 1월 들어 자살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사고 조사 과정에서 자신들의 항해일지 조작이 탄로 나자 마지못해 일간지를 통해 <태안사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어쩔 수 없었던 사고인 것처럼.
이후 삼성중공업은 "태안 사고는 고의나 과실로 인한 사고도 아니고 크레인과의 충돌 자체보다 삼성중공업 소유가 아닌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조선에서 나온 기름 때문에 피해가 컸다"며 피해자에 대한 배상책임을 50억 원으로 제한해달라는 신청을 했다.
2010년 1월 법원은 삼성중공업의 신청을 받아들여 56억 원 한도에서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태안 주민의 삶을 하루아침에 짓밟았지만 피해 규모야 어떻든 삼성은 56억 원 안에서만 책임을 지면 된다는 이야기다.
태안 유류피해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법원이 삼성중공업의 편을 들어 제시한 56억 원은 피해 주민 한 사람 당 5만 원정도 배상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한다. 참고로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펀드)에 따르면 태안 기름유출 사고 피해액은 5663억~6013억 원에 이른다.
자살자가 연이어 3명이나 속출하면서 설날을 앞두고 민심마저 흉흉해지자 다급해진 충청남도는 1단계로 1월 29일 1만 9397 세대에 482억 2900만원을 지급했다. 이것은 정부지원금 300억 원에 도비 75억 원과 성금 93억 6500만원을 합친 액수였다. 2단계 긴급 생계지원비는 생활 안정금 지원형태로 4월 21일 1만 4855세대에 431억 100만원이 지급되었다. 이것은 정부지원금 300억 원에 도비 75억과 성금 56억 100만원을 보탠 것이었다. 긴급 생계안정자금은 도합 913억 3000만 원이 지급되었다. 이중 57.8퍼센트인 527억 7400만원이 태안군의 몫으로 배분되었다. -<태안은 살아있다>중에서눈먼 돈 앞에서 갈라진 주민들가해자 삼성중공업이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 축소하고자 안하무인일 때 1차 생계지원비가 긴급 지원됐다. 지원금 중 300억 원은 정부가 이미 사고 1주일 만에 충청남도에 지원한 것이다. 이 지원금은 주민의 삶이 위협받건 말건 지원 대상 기준 등과 같은 행정적인 문제와 절차 때문에 3명의 자살자를 내고서야 40일 만에 주민에게 전달됐다.
300억 원은 정부가 공급하는 '눈먼 돈'이었다. 이웃사촌이었던 동네 사람들은 그 돈 앞에서 전혀 딴 사람이 되었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다른 사람에게 한 푼이라도 더 갈까 봐 모두 눈에 불을 켰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태안의 주민을 반목하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