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에게 편지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서평] 장은진의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등록 2011.04.28 17:51수정 2011.04.2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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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진 아무도 편지하지...
장은진아무도 편지하지...문학동네
▲ 장은진 아무도 편지하지... ⓒ 문학동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장은진, 문학동네)를 손에 들면서 편지를 매개로 한 소설은 어떨까 궁금했다. 내용은 재미있고 신선했다. 마지막 반전은 유쾌, 통쾌했다.

 

주인공 '나'는 도시여행자다. 집을 나온 지 3년째.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751명. 모두 이름 대신 번호로 부른다. 소설은 "나는 허름한 배낭에 MP3와 소설책 한 권을 넣고 집을 떠났다. 와조와 함께"로 시작된다.

 

내가 머무르는 곳은 주로 모텔이다. 묵었던 모텔을 나오기 전에는 반드시 사람들의 눈길이 잘 닿지 않는 욕실 세면대 밑에다가 <2009년 x월 x일, 나와 와조가 다녀감>이라고 글을 써 붙여 놓는다. 모텔에 들어가면 씻기 전에 반드시 가장 먼저 편지를 쓴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일어나면 공중전화 부스에 가서 친구에게 전화한다. 친구네 집 근처에 있는 우리 집 우편함에 편지가 왔는지 확인하는 전화다. 하지만 편지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난 751. 소매치기로 지갑을 잃어버린 나는 751의 신세를 지고 길동무가 되지만 늘 티격태격이다. 이 여자는 소설을 쓴다. 여행하면서 소설을 쓰고 자기가 쓴 소설을 지하철 안에서도, 거리에서도 팔고 다닌다.

 

나는 긴 여행으로 지친 와조와 여행을 계속할 수가 없어 집으로 돌아온다. 3년 동안 동행했던 와조는 할아버지가 맡긴 개의 이름이다.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온 나. 여행에서 주인공이 추억했던 가족들은 이미 죽고 없는 사람들, 즉 과거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비로소 여기서 발견한다.

 

조부가 돌아가신 그날, 장지로 향하던 가족들은 한꺼번에 사고로 죽었다. 나는 부모님과 형을 잃고 3년 동안 돌아다녔다. 아무도 없는 집에 다시 돌아왔지만 보낸 편지에 답장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집으로 돌아온 것을 알게 된 이웃집 아주머니가 나타난다. 손에는 택배 박스가 들려 있다. 그동안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들이 한꺼번에 들어 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주인 없는 집에 편지가 오는 것을 보고 자기 집으로 배달되도록 해서 그동안 쭉 편지를 모아놓았다.

 

편지가... 아무도 내게 보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답장이 박스 가득 들어 있었다. 홀로 집에 돌아와서 일으킨 발작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는 편지만 읽으면서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에서 처음 만났던 1번한테서도 편지가 왔다. 집에 돌아와 처음 받아보는 편지다. 다음날엔 여행의 끝자리 친구 751에게 두 번째 편지가 왔다.

 

"이 편지 속에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 들어 있다. 이 사람들이 보내 준 편지에 답장만 쓰고 지내도 평생을 충분히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신기한 건...편지를 받을 사람이 있고 또 답장을 보내줄 사람이 있다면, 생은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단 한 사람뿐이라 하더라도."(p277)

 

주인공 나는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들의 답장으로 위로를 얻는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뜻밖에 한꺼번에 받은 답장들. 주인공은 그들에게서 온 편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아줌마가 돌아가고 나는 상자에 가득 든 편지를 한통씩 꺼내 본다. 모두 다 내가 아는 숫자들이고 내가 알고 있는 주소다. 누구도 나한테 거짓 주소를 말하지 않았다. 내가 보낸 편지는 모두 잘 도착했고 그들은 편지쓰기를 귀찮아하지도 않았고 글을 모르지도 않았고, 내 편지가 분실되지도 않았으며, 안 읽은 것도 아니었고, 죽지도 않았으며, 내 편지가 맘에 안 든 것도 아니었다. 내가 편지를 보냈던 사람들 모두, 살아서 내게 답장을 보내왔다. 아무도 나에게 편지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여행 전에도 여행 중에도 그리고 여행 후에도 나는 결코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결국 나는 눈물을 쏟고 만다. 행주를 바짝 비틀어 짰는데도 불구하고."(p275)

 

이 시대는 디지털 시대다. 아날로그적인 것들이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빠르고 편리한 것이 환대받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들의 집 우편함에 들어오는 것은 매달 때가 되면 오는 각종 고지서 등 반갑지 않은 것들뿐이다. 우체통은 어디로 갔을까. 빨간 우체통을 본지도 오래되었다. 공중전화 박스와 우체통은 점점 적어지고 주변에서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것들이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우리의 기억과 생활 속에서 점점 사라져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눈먼 개 와조와 함께 3년 동안 모텔을 전전하면서 편지여행자로 지내온 주인공과 함께 나도 여행을 다닌 듯했다. 편지를 쓰지 않는 세상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답장하지 않을 거라는 지레짐작으로 펜을 들지 않았었는지도 모른다. 어쩐지 촌스럽고 어색하고 할 일 없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바쁜 것이 곧 능력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편지란 옛 유물과도 같은 것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편지는 시간과 감정의 낭비라고, 구시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이 세상에 편승해가고 있었던 것 같다. 휴대전화와 문자, 스마트폰까지. 편지는 점점 멀어져간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나도 기대해볼까. 정말 편지하고 싶은 사람에게 마음을 담아 글을 써볼까. 소설 속 주인공처럼 밥도 먹지 않고 소파에 앉아 밤새도록 편지만 읽어볼까. 삭막한 세상에서 오아시스 같은 편지 한 장, 마음이 담긴 답장을 받아볼 수 있을까.

2011.04.28 17:51ⓒ 2011 OhmyNews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문학동네, 2009


#장은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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