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이루어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고 발표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군 특수부대가 빈 라덴의 은신처를 기습, 그를 사살하는 순간을 참모들과 실시간 TV로 시청했던 모양인데, 죽은 사람이 실제 빈 라덴이 맞는지 궁금해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99.9% 확실하다"고만 답했다. 시신조차 없어 확인할 길도 없다.
미국은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켜 430조 원의 천문학적인 전비를 쏟아 부었고, 이 전쟁에서 미군 2천여 명과 아프가니스탄 국민 10만 명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그 끝에 '정의'는 한 편의 암살극으로 마무리되었다. 어째서 생포하지 않고 사살했는가 하는 질문에 미국은 재판 과정에서 논란에 휩싸일지도 모르고 그를 구출하기 위한 추가 테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옹색한 변명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한다면 마땅히 전범을 재판정에 세워 심판해야 했다.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된 <정의는 무엇인가>에서 마이클 샌델은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 언어에서 '도덕적이고 영적 차원'을 발견한다. 샌델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정치를 누구의 권리문제로만, 누구에게 이익을 주는 문제로만 보는 자유주의적 틀을 뛰어넘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삶에 목적의식이, 서사적 궤적이 필요"하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면 "종교적 담론을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정의는 무엇인가>가 강조하는 공동체적 정의는 이러한 인식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그렇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정의'는 예컨대 이런 우려, 즉 빈 라덴을 죽임으로 인해 보복 테러 위협이 커진다는 우려에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인 효용이 크냐 작으냐는 공리주의의 기준인데 이는 정책의 고려 기준이 될 수는 있어도 도덕과 정의의 조건이 되기엔 무리가 있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도 이번 작전의 성공을 재선에 유리한 고지에 오르는데 계기로 삼을 수 있지만, 그걸 일단 차치하고 보더라도 이번에 그가 선언한 정의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보복의 다른 표현인 것 같다.
그런데 빈 라덴도 그런 '정의'라면 갖고 있지 않는가? 그에게도 종교적 담론은 있으며, 9.11 이전 미국이 중동에서 벌여온 '더러운 전쟁'들은 아랍인들의 증오의 원천이 되기에 충분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과 학살을 지원했으며, 이라크 경제를 봉쇄하여 수많은 아이들이 감기약조차 제대로 처방받지 못해 죽어간 일에 책임이 있다. 결국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아닌가? 보기에 따라서, 미국의 정의는 아랍의 불의이고 알 카에다의 테러는 영웅적 저항도 되는 것 아닌가? 결국 정의란 저 트라시마코스의 말대로 "강자의 이익" 또는 승자의 정의일 수밖에 없는가?
물론 나는 9.11 테러가 민간인을 상대로 한 사악한 범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범죄자도 자신의 정의를 부르짖는 한, 그의 아지트로 쳐들어가 다짜고짜 총으로 쏴버린다고 반대편의 정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게 정의의 총탄이든 주먹이든 사시미든, 그것은 깡패의 정의인 것이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리자면 "말이 중단된 상태에서 발생한 정치행위는 '폭력'"이며 이는 언제나 권력에 의해 사후에 정당화될 뿐이다. 고문으로 사람을 죽여 놓고도 뻔뻔하니 '정의 사회 구현'이라고 관공서마다 걸어놓았던 전두환 정권을 생각해보라.
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공공영역에서 이뤄지는 '말과 행위'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했는데, 이는 인간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공적영역에서 '말'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혹은 '말'이 보장되는 공적영역을 아예 없애버린다면 그건 결코 정의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건 말 그대로 '닥치고 정의'에 불과하다.
'테러와의 전쟁'은 오바마 대통령 개인이 혼자 TV를 시청하면서 시작하고 끝내고 정의를 선언할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니다. 그동안 엄청난 인명과 권리가 희생되지 않았는가. 세계 시민들은 빈 라덴을 재판정에 세워 공적 영역에서 그가 주장하는 말이 보다 이성적이고 보편적인 말로 심판되는 과정을 지켜볼 권리가 있었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승자라 할지라도 자기 반성의 계기를 가져야 했다. 정의를 보복 차원에 가두지 않고 인류 이성과 더불어 한 단계 확장시키려면 그렇게 해야 했다. 그러나 정의는 그저 '선언'되었고, 언제 또 다른 빈 라덴이 나타나 또 다른 정의를 선언할지 우리는 두려워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의 블로그와 <그날이오면> 칼럼난에도 게재합니다
http://interojh.blog.me
2011.05.04 13:30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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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세월호를 기록하다> 등을 썼다. 20대 대선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했다. 국회 비서관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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