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찬조금 22억원 받았어도 '무혐의'라고?

검찰의 대원외고 '면죄부' 논란... 강북 일반고였어도 마찬가지였을까?

등록 2011.05.05 14:07수정 2011.05.0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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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9일 서울동부지검(부장 이상용)은 대원외고의 22억 원 불법찬조금 모금에 대해 대부분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극히 일부인 1억 5000만 원에 대해서만 이사장과 교장, 행정실장을 횡령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대원외고가 가지는 상징성도 있지만, 22억 원이라는 규모가 무척 커서 많은 관심을 끌었지만 검찰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면죄부를 줬다. 

대원외고 불법찬조금 22억 원... 검찰은 면죄부 줬다

검찰 수사와 서울교육청 감사를 종합해 보면, 대원외고가 모금한 불법찬조금의 액수는 22억 원에 이른다. 그런데 재단인 대원학원이 지난 6년간 대원외고에 납입해야 하는 법정전입금은 10억 원이 넘지만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그러니까 법인이 부담해야 할 법정전입금을 전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충당한 것도 모자라 학부모에게 불법찬조금을 22억 원이나 받아오다가 적발된 것이다.

a  대원외고의 불법찬조금 현황과 법정 재단전입금 현황. 22억 원의 불법찬조금을 조성하여 학교발전기금으로는 사용이 금지된 교사 명절선물비, 회식비, 자율학습비 등으로 3억 이상을 사용했다. 또 1억 5000만원은 학교발전기금에 편입도 않고 중학교 공사비 등으로 사용했다. 더 웃기는 것은 6년간 법정 재단전입금 10억 중 대원학원이 부담한 것은 "0원"이라는 점이다.

대원외고의 불법찬조금 현황과 법정 재단전입금 현황. 22억 원의 불법찬조금을 조성하여 학교발전기금으로는 사용이 금지된 교사 명절선물비, 회식비, 자율학습비 등으로 3억 이상을 사용했다. 또 1억 5000만원은 학교발전기금에 편입도 않고 중학교 공사비 등으로 사용했다. 더 웃기는 것은 6년간 법정 재단전입금 10억 중 대원학원이 부담한 것은 "0원"이라는 점이다. ⓒ 서울교육청 감사자료, 안민석 의원실(김행수편집


안민석 민주당 의원실 자료와 학교알리미, 대원외고 결산서 등을 종합해 보면, 2004년 이후 대원학원이 부담해야 하는 법정전입금의 총액은 10억 원이 넘는다. 이 중 대원학원이 법인회계로 직접 부담한 금액은 6년 내내 "0원"이었다. 

대원외고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 학벌의 학교다. 다르게 말하면, 대한민국 교육계의 '로얄 패밀리'다. 그런데 재단은 단 1원도 부담하지 않고, 비공식적으로 22억 원을 받은 것이다. 로얄 패밀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이 정도면 바닥 수준이다.

사실 대원외고 불법찬조금이 문제가 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의 2008년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07년 이전에도 대원외고는 학부모들에게 청소용역비 명목의 불법찬조금을 걷은 사실이 적발됐다. 같은 재단의 대원중·대원여고 등도 똑같이 불법찬조금이 문제가 되었다.


검찰이 이번에 무혐의 처분을 내려 대원학원 관계자들을 처벌할 수 없다고 밝힌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불법찬조금에 대가성이 없고,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냈으며, 모은 돈을 학교를 위해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따져봐도 검찰이 댄 근거는 대원외고를 봐주기 위한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대가성 없고 학교 위해 썼으니 죄가 없다고?


먼저, 대가성이 없어서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은 일반적으로는 맞지만 이 경우에는 적합하지 않다. 대가성을 입증하기 위한 필수 사항은 직무관련성이다. 학부모와 교장, 교사와 교장, 학부모와 담임교사가 직무관련성이 없는 관계라면 도대체 어떤 관계가 직무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a  대원외고 정문.

대원외고 정문. ⓒ 권우성


검찰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할 때, 오랜 지인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의 관계에서 대가성을 입증할 수 없자 포괄적 뇌물죄을 거론하며 "대가성 없어도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검찰이 학부모와 교장·담임·이사장 사이에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니까 돈은 받아도 대가로 뭔가 청탁을 들어주지만 않으면 무죄라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논리라면 교사의 촌지도 처벌해서는 안 된다.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모아 주었기 때문에 죄가 없다는 주장 역시 억지다. 이 사건은 일반 학교의 3배에 이르는 등록금에 불법찬조금까지 내야하는 처지에 놓인 한 학부모가 자금 조성과 사용처 등에 대해서 문제제기하고 내부고발을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런데도 검찰은 모든 학부모가 자발적으로 돈을 기부했다고 한다.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낸 학부모가 '왕따'를 자처하면서까지 왜 이를 문제 삼고 세상에 알렸겠는가.

"학교를 위해서 썼기 때문에 무죄"라는 주장은 법적으로 따져도 말이 안 되는 검찰의 억지 주장이다. 기자가 국민에게 돈을 받고도 언론사를 위해서 썼다고 하면 무죄이고, 정치인이 돈을 받고도 정당을 위해서 썼다고 하면 괜찮다는 뜻인가?

불법 찬조금이 학교발전기금의 하나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학교발전기금은 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 교육부령인 '학교발전기금의 조성·운용 및 회계관리요령' 그리고 서울시교육청의 '학교운영위원회 운영 요람' 등 관련 법령에 의해 조성과 관리가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이에 따르면 "학교발전기금을 교직원의 인건비성 경비나 간접교육비 등(예: 자율학습감독비)에 사용한다거나 교육활동과 직접 관련이 적은 교직원의 단체활동(예: 회식비)에 사용하는 것은 법에서 정한 사용 목적에 위배되는 것"이다.

학교발전기금에 대한 기존 대법원의 판례 역시 "학교발전기금은 그 조성·운영 및 사용의 주체인 학교운영위원회에 귀속되고, 그 사용 용도는 학교 교육시설의 보수 및 확충 등으로 엄격히 제한되어"있다며 "그 용도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는 학교발전기금을 임의로 제한된 용도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였다면 그 사용행위 자체로 불법영득의 의사를 실현한 것이 되어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밝히고 있다.(대법원 2006.9.22. 선고 2005도3757 판결, 대법원 2007도4713 업무상횡령 2010.7.22. 등 참조)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불법 찬조금 22억 원 가운데 최소 3억 원 이상은 교사 회식비와 선물 구입비, 자율학습 지도비로 사용됐다. 이는 학교발전기금의 용도로 엄격히 금지된 항목들이다. 검찰은 대법원의 판례를 인용하고 있지만 정작 이 경우에 정확하게 적용되는 판례는 모른 체 하고 있다.

1만 원 받은 교통경찰과 1000만 원 받은 교장, 누가 더 나쁜가?

서울시교육청(교육감 곽노현) 감사 결과에 의하면, 3년간 학부모에게 1000만 원 이상의 금품·향응을 받은 교직원은 대원외고 교장·교감 등 5명, 300만 원 이상 받은 교사도 30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 중 해임 당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이 현재 계속 교장·교감·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금품·향응 수수와 관련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교육공무원 금품·향응 수수 관련 징계 처분 기준(2007년 10월 기준)에 의하면, 위법부당한 처분을 하지 않더라도 직무 관련하여 300만 원, 직무연관성이 없는 의례적 금품 수수라도 500만 원 이상이면 파면·해임의 배제징계를 당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원외고는 단 한 명도 파면·해임의 배제 징계를 당하지 않았다.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보자. 2007년 1월 대법원은 신호위반을 한 운전자에게 담배값으로 1만 원 받은 경찰에게 해임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비록 원고가 받은 돈이 1만 원에 불과하여 큰 금액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경찰공무원의 금품 수수 행위에 대하여 엄격한 징계를 가하지 아니할 경우 경찰공무원들이 교통법규 위반 행위에 대하여 공평하고 엄정한 단속을 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고, 일반 국민 및 함께 근무하는 경찰관들에게 법적용의 공평성과 경찰공무원의 청렴의무에 대한 불신을 배양하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대법원 2006.12.21, 2006두16274 해임처분취소)

대원외고 교장 등에게 이 판결을 적용하면 파면 정도는 무난해(?) 보인다. 1만 원 받은 교통경찰은 해임인데, 1000만 원이 넘는 금품·향응을 제공받은 교장·교감·교사는 단 1명도 해임을 받지 않았다니. 과연 학생과 시민은 위의 경찰과 이들 중 누구의 죄가 더 중하다고 할까?

2011년 2월 대법원은 1억46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 돼 1,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에게 징역 4년과 벌금 1억 원, 추징금 1억46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2010년 10월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도착한 뒤 부축을 받으며 청사로 걸어오고 있다.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2010년 10월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도착한 뒤 부축을 받으며 청사로 걸어오고 있다. ⓒ 권우성


재판 과정에서 공 전 교육감은 부하 직원에게 100만 원을 수수한 것을 인정하면서 "명절을 잘 쇠라는 과일값 정도로 알고 받았다"고 변명했다.

대법원은 "공 전 교육감이 서울 교육계의 수장으로서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을 가져야 함에도 거액의 뇌물을 수수하여 교육계의 위상과 권위를 실추시켰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대원외고 교장 등은 학부모에게서 1000만 원이 넘는 돈을 명절 선물비, 회식비 등으로 받았는데 아무런 죄가 없단다. '과일값 100만 원'을 받은 공 전 교육감이 들으면 크게 웃을 일이다.

대원외고가 아닌 강북 변두리 학교라도 무혐의 처리했을까?

대원외고는 최근 몇 년 동안 서울대 합격자 수나 사법고시 합격자 수, 신규 판검사 임용자 수 등에서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가히 고등학교 학벌로는 대한민국 최고다. 그래서 이 대원외고 불법 찬조금 수사가 시작될 때부터 과연 대원외고를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제기됐다.

검찰은 1년 가까운 시간을 끌더니 결국 면죄부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20억 원 넘는 불법 찬조금을 모아 그 일부를 교장 등 교사들의 명절선물비, 회식비, 자율학습 감독비 등으로 사용하였다가 적발된 것이 대원외고가 아니라 지방의 어느 이름 없는 학교였다면, 아니 서울 강북의 어느 변두리 학교였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무혐의로 처리했을까?

더 나아가, 대원외고가 아닌 교과부와 보수 언론 등이 그토록 문제 삼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추진하는 혁신학교가 불법찬고금을 20억 원 걷고, 명절선물비 등으로 학부모에게 1000만 원 받았다면 검찰은 같은 결론을 내렸을까? 만약 돈 받은 교장·교사 등이 전교조 출신이라면?

대원외고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 학교에 전교조 조합원은 단 1명도 없다. 교총 회원은 16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번에 기소된 최○○ 교장과 교감 역시 교총 회원 출신이다. 

이번 사건 관련, 가장 먼저 반성해야 하는 당사자는 대원외고다. 대한민국 교육계의 대표적 로얄 패밀리인 대원외고가 불법찬조금으로 22억 원 받고, 재단전입금은 0원 내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할 수 없다. 대원외고와 같은 학교들이 등록금이 비싸고, 불법찬조금까지 내야하는 걸 알기에 서민 자녀는 입학할 엄두를 못 낸다.

이번 검찰 수사의 근본적인 문제는 여기에 있다. 비싼 학비는 둘째 치더라도, 불법찬조금만이라도 근절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어야 하지만 모두 면죄부를 줘 서민에게 박탈감과 허탈감을 심어줬다. 검찰은 대원외고를 비호하고 있다는 비판을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대원외고와 검찰은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곰곰이 돌아봐야 한다.
#대원외고 #검찰 #로얄 패밀리 #22억 불법찬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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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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