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는 '걸레'소리나 듣고…, 그래 싸우는 거야!'

[서평] 가정의 달 5월의 의미가 남다를 청소년 소설 <라운드>

등록 2011.05.05 11:02수정 2011.05.0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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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운드> 겉그림
<라운드> 겉그림우리교육
<라운드> 겉그림 ⓒ 우리교육

<라운드>(우리교육 펴냄)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처한 형제가 돈 때문에 '부상은 물론 자칫 장애와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는 무허가 권투 경기'에 참가, 싸움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가족 간의 사랑 등을 묻는 청소년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화자인 나 카메론과 나의 형 루브. 연년생인 이들은 '울프형제'로 불린다. 위로 형과 누나가 있다. 이 가정에 평화가 깨진 것은 아버지가 실직을 하면서부터. 배관수리공인 아버지는 사고로 병원신세까지 지면서 실직자가 되었다. 때문에 병원 청소 일을 하는 어머니가 가족을 책임지고 있다.

 

공과금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집안형편이 어려워진다. 실업수당이라도 받으면 급한 불이라도 끌 수 있으련만, 아버지는 일에 대한 희망과 자존심 때문에 실업수당을 신청하지 않겠다고 고집한다. 이 문제로 아버지와 큰형 스티브, 사라누나는 걸핏하면 부딪히고 만다. 결국 스티브 형은 집을 나가게 되고 사라 누나는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 잦아진다.

 

이런 와중에 형제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야, 울프. 내 아버지가 주말에 느닷없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일을 달라고 하시더라. 우리 엄마가 괜히 일 맡겼다가 우리 집에 사고 날 일 있냐며 안 된다고 했어." 루브 형이 하하 웃었다.

 

"야, 울프. 네가 원한다면 내가 신문 배달 일을 구해드릴 수도 있는데. 용돈은 버실 거야. 아무렴." 루브 형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야, 울프. 너희 아버지는 실업수당 안 받으셔?" 형이 그 녀석을 빤히 노려보았다.

 

"야, 울프. 너, 학교 그만두고 차라리 일이나 하는 게 어떻겠냐? 형편이 몹시 안 좋은 모양인데 살림에 좀 보태드려." 루브 형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러고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건 바로 이 말 때문이었다.

 

"야, 울프. 그렇게 살기 힘들면 네 누나더러 몸 좀 팔라고 그래. 안 그래도 '걸레'라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듣기로는….-<라운드>중에서

 

울프 형제는 아이들 사이에 놀림감이 된다. 어느 날 어떤 아이가 형제에게 빈정댄다. 일을 구하러 다니는 아버지는 구걸하는 사람이 되고 사라 누나는 창녀가 되고 가족들의 자존심이 땅에 처박히고 만 것. 형은 그 아이의 '이가 부러지고, 온몸이 너덜너덜해지도록, 한동안 일어나지 못할'만큼 흠씬 패고 만다.

 

그런데 이 일을 계기로 형제는 낯선 남자로부터 '무허가 권투 경기'에 나와 줄 것을 제안 받게 된다. 돈을 벌 수 있게 해준다는 달콤한 제안이었다.

 

"매주 일요일 5라운드만 싸운다. 이기면 50달러를 주지만 지면 단 한 푼도 없다. 지더라도 운이 좋으면 관객들이 동정하여 던져준 팁은 너희 몫이다."

 

이런 조건이었다.

 

남자는 이들 형제처럼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돈을 벌 수 있다고 꼬드겨 모은 다음 경찰의 눈을 피해 이 공장 저 공장으로 이동하면서 권투 경기를 벌임으로써 돈을 버는 사람이었던 것.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지만 선뜻 대답할 수 없는 것은 게임 도중에 다치는 것은 물론이요, 장애를 입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것. 어떤 위험도 남자는 전혀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 불법이라는 것. 게다가 한눈에 봐도 약골인 동생까지. 형 루브는 고민, 고민한다.

 

형의 표정은 진지하고 엄숙했다. "우리는 경기에 나가서 꼭 이길 거야. 이기지 않고는 자리를 뜨지 않을 거야." 형은 문에 기댔다. 몸을 웅크렸다. 울타리에 얼굴을 묻었다. 손가락을 철조망 사이에 밀어 넣었다. 그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그도 그럴 것이 고개를 들어 나를 돌아본 형의 눈에 눈물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형의 목소리는 굶주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형이 말했다. "마냥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지낼 수는 없어. 우리는 올라갈 거야. 더 높은 데…. 엄마를 좀 봐. 엄마는 자신을 죽이고 있어. 아버지는 줄곧 풀이 죽어서 나가고, 스티브 형은 이제 이사를 가서 오지도 않을 거야. 사라 누나는 걸레라는 소리나 듣고."

 

형은 주먹을 꼭 쥐었고 이를 꽉 문채 말을 이었다. "우리 집이 지금 이 모양이야. 문제는 간단해. 우리는 올라갈 거야. 우리의 뭉개진 자존심을 되찾을 거야."-<라운드>중에서

 

참 마음 아프게 읽은 부분이다.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돈 때문에 어쩔 수없이 선택해야만 할 때의 비장함과 돈 때문에 무참하게 상처받은 자존심을 어떻게든 추스르려는 어린소년의 아픔이 생생하게 전해졌기에. 겨우 한 살 차이이건만 싸움의 위험을 잘 알고 있는 형과 달리 위험을 거의 모르는 동생의 천진함도 슬프게 읽혔다.

 

형제가 첫 경기를 치르고자 사내를 따라 도착한 곳은 죽어있는 고기들이 죽죽 늘어져 대롱대롱 수없이 매달려 있어 살 비린내가 진동하는 도축장. 게다가 원초적인 싸움에 목말라 아우성인 광폭한 노동자들.

 

경기마다 완승을 거두면서 관중들에게 전설적인 존재가 되는 형 '싸우는 루벤 울프'. 이런 형과는 달리 '천하의 약골' 동생 카메론은 싸움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할 정도로 약해 관중들로부터 조롱을 받는다. 하지만 형의 격려에 힘을 얻고 서서히 자기만의 페이스를 찾으며 이따금 상대방을 쓰러뜨리기도 한다.

 

형제란 참 묘하다. 형은 지금 나에게 쉽사리 양보하려고 하지 않지만, 저 밖으로 나가면 형은 죽음을 무릅쓰고 나를 지켜줄 것이다. 희한한 건 나도 똑같다는 것이다. 우리 둘은 똑같이 굴 거다.… 나는 어렴풋이 변한 형을 느꼈다. 형은 더 단단해졌다. 형에게는 스위치가 있어서 경기 때가 되면 스위치가 탁 켜졌다. 그 순간은 루브 형이 아니었다. 기계였다. 스티브 형처럼 루브 형도 변했지만 어딘지 다르다. 더 거칠다.…루브 형은 자기 자신 속에 있는 패배를 때려눕히고 싶어 하기 때문에 승자였다.…루브 형은 여전히 그 사실을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형은 더 거칠어졌고 더 잔인해졌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패배를 닥치는 대로 때려눕히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루브 형은 싸우는 루벤 울프다. 아니면 실제로 '싸우고 있는' 루벤 울프인가?….-<라운드>중에서

 

가끔 들춰 읽고 싶은 부분이다. 책에는 이런 부분, 이처럼 의미심장한 부분들이 좀 많다. 작가는 <책도둑>으로 유명한 '마커스 주삭'. 작가는 돈 때문에 싸워야만 하는 가난한 형제의 싸움을 통해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싸워야만 하는 것들과 싸울 수밖에 없는 것들을, 끊임없이 싸워야만 하는 이유와 현실을 의미 있게 들려준다.

 

작가 '마커스 주삭'은...

1999년 <패배자들>을 발표하며 데뷔한 마커스 주삭은 이 작품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성공을 거둔다. 주로 청소년 소설을 집필하며 문학적 명성을 쌓아 가던 그는 2002년 <메신저>를 발표하며 그 명성을 더욱 확고히 한다. 이 작품은 2003년 CBC(Children's Book Council) 올해의 책, 2005년 퍼블리셔스 위클리 올해의 책, 불러틴 블루 리본 북(Bulletin Blue Ribbon Book)에 선정되었다.

이후 <메신저>를 집필할 때 떠올랐던 '책도둑'이라는 아이디어에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께 들어 온 나치 독일에 관한 이야기를 결합해 소설 <책도둑>을 완성한다. <책도둑>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출간되어 성공을 거둔 후 영국, 프랑스, 덴마크, 이탈리아, 브라질, 중국, 일본 등 세계 30여 개국에서 잇달아 번역, 출간되었다. 또한 이 작품으로 2006년 캐슬린 미첼 상, 2008년 에나 노엘 상을 받았다.

주요 작품은 <책도둑><메신저><라운드>

-책표지 '작가 프로필' 참고 정리

또한, 형제간의 정이 뭉클, 돋보이는 소설이다. 루브는 겨우 한살 차이의 형이지만 늘 보호자가 되어 자신의 한 부분을 포기하고 덜어 동생을 끊임없이 위하고 바라보고 격려한다. 동생 카메론은 형에게 경쟁심을 느끼기도 하고 이기고 싶어 하면서도 닮고 싶어 하고 기대는 한편 게임 횟수가 늘어갈 수록 점점 황폐해져가는 형을 아파하고 걱정한다.

 

소설 전체 울프 형제의 애정, 그 뭉클한 감동이 배경음악처럼 잔잔하게 흐른다. 이런지라 이 소설은 가정의 달 5월에 읽으면 의미가 더욱 남다를 것 같다. 외동이라 형제의 정을 전혀 모르는 아이들에게, 늘 내 곁에 있어 소중함을 거의 느끼지 못한 형제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할 것 같다. 

 

게임은 계속되고 돈은 늘어가고. 그런데 정말 피하고 싶었던 일이 벌어지고 만다. 시즌 마지막 경기는 '울프 VS 울프. 약골인 동생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천하무적의 형과 감히 싸워야만 하는 싸움으로 결정되고 만 것이다. 싸움 상대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쓰러뜨려야만 경기가 끝나는지라 형제는 이 싸움을 결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하루하루 결전의 날은 다가오고, 형제는 각자 깊이 고민하고 그리고 다짐한다. '나를 위해, 동생을 위해 싸우리라.' '나를 위해, 형을 위해 싸우리라'고. 내일로 다가 온 울프 형제의 싸움. 피를 나눈 형제의 피가 튀는 싸움을 보고 싶어 하는 관중들. 형제는 자신과 내 형제를 위해 어떻게 싸울까? 형제에게 싸움은 무엇일까?

덧붙이는 글 <라운드>| 마커스 주삭| 정미영 (옮긴이) | 우리교육 | 2011-04-11 |: 값:10000원 

라운드

마커스 주삭 지음, 정미영 옮김,
우리교육, 2011


#청소년(1318) #청소년소설 #마커스 주삭 #책동네 #우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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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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