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린과 딸, 아들
전은선
"한국에 처음 와서 마을사람들과 만났을 때 '안녕하세요' 밖에 할 수 없었어요. 숨 막힐 정도로 답답했어요. 한국어는 필리핀어보다 (같은 단어의) 의미가 다른 게 많아 어려워요. 하지만 한국어 배우는 기회가 생겨서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조이린이 사는 곳은 강원도 영월군 쌍용리. 충북 제천 세명대까지 꽤 거리가 멀어 택시를 타고 다니면 왕복 6만 원 정도 나오지만 딱한 사정을 안 개인택시 기사 한 분이 2만 원에 이들 가족을 등·하교시키고 있다. 조이린은 3년 전 코리안 드림을 안고 쌍용시멘트공장에서 일하는 박영희(41)씨와 결혼했다.
"시어머니나 남편과 진한 이야기해보는 게 꿈이었어요. 수업 받는 것은 시어머니가 애 봐주는 것에 비하면 힘들지 않아요. 집에 가서 배운 것을 복습하는데 그때도 시어머니와 남편이 도와줘요. 나를 진짜 딸처럼 대해줘 고마워요." 시어머니 신순남씨는 교회 아는 사람을 통해 조이린을 며느리로 맞아들였다고 전했다.
"이렇게 공부해야 한국 사람이 될 수 있다는데 어떡해요? 내가 힘든 건 참을 수 있어요. 한국에는 부모도 없으니 내가 자식으로 생각해야지요. 늦장가 들인 아들과 한국말로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사는 꼴을 보고 싶어요."
사회통합과정 성과 크지만 거리·육아·생계가 문제 사회통합이수과정은 법무부가 한국의 언어·문화·제도 등에 이해가 부족한 이민자가 한국 사회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이 과정을 이수하면 2년쯤 걸리는 국적취득 기간이 6개월 정도로 단축된다. 한국어는 400시간, 한국사회 이해 과정은 50시간이며, 교육비는 정부에서 전액 지원한다.
이 과정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생활고 등으로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이수할 처지가 못 되는 이주민이 많아 일부 외국인들만을 위한 정책이란 비판도 없지 않다. 결혼이주여성은 농촌지역에 널리 흩어져 사는데 프로그램 주관 교육기관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충북에는 세명대 한국학센터, 충주다문화가족지원센터, 보은농협 등 6개가 있을 뿐이다.
지난해 조이린 일가는 버스를 여러번 갈아타고 세명대까지 오는데 3시간이나 걸렸다. 오전 10시에 집을 나서서 수업을 듣고 귀가하면 해가 저물었다. 신순남 할머니는 "애들을 돌봐야 하는 가족들에게도 큰 짐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