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집으로>의 할머니와 손자
CJ엔터테인먼트
거기에 아들집과 제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림에 육아까지 하고 있으니 몸인들 성할까? 평소 A는 건강한 편이었지만 고질적으로 어깨가 많이 아팠다. 병원에 가고 한의원에도 가서 치료도 받았지만 좀처럼 낫지 않았다. 그러다 누군가 경락 마사지를 받아보라고 해서 받아본 후론 괜찮아졌다고 했다.
그런데 무리한 탓인지 손자를 본 지 두 달 만에 또 다시 양쪽 어깨가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심할 땐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오십견도 아니란다. 침 맞으러 며칠을 다녔지만 좀처럼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친구. 그에게 "남편하고 같이 보는데, 어깨가 왜 또 아프니?"하자 "내가 일을 만들어 해서 그렇지 뭐"라고 말한다.
나도 손자를 봐줄 때 손자를 안고 침대에서 내려오다 손자를 놓친 적이 있어 그의 어깨통증이 정말 걱정이 됐다. 앞으로 손자가 점점 자라면 어깨통증 때문에 안아 주기도, 업어주기도 무척 힘들 텐데. 만약 계속 그렇게 했다가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아플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들 내외한테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왜냐하면 지금 무작정 참는 것이 병을 더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에 오전 6시에 일어나 남편과 함께 아들 집으로 간다. 그의 집에서 아들 집까지는 자동차로 20분 정도 걸린다. 친구가 남편과 아들집에 도착하면 아들 내외는 출근을 한단다. 아들 내외가 출근하고 나면 친구는 아들 집에서 청소, 빨래를 하고 주방 일까지 한다. 그리고 아들 내외가 돌아오기 전까지 손자와 씨름을 한다. 남편하고 함께 돌봐준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여자들이 일을 더 많이 하는 편일 것이다.
그러다 저녁 때가 되면 시장에 다녀와서 밥과 반찬을 준비한다. 아들 내외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저녁을 차려주고 손자 목욕시키고 제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제 집으로 돌아오면 오후 11시가 다 되고 그때부터 친구의 집안일은 시작된다. 어떤 때는 돌아와서 옷도 못 갈아입고 그대로 잠자리에 들 때도 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괜스레 내가 바빠지는 듯했다.
친구는 그렇게 아들집 살림을 돌보면서도 제 집에 일이 있으면 중간에 다시 나와 은행으로, 주민자치센터 등으로 볼일을 보러 다닌다. 주말에는 아들집에 가지는 않지만 요즘처럼 결혼식이 많을 때에는 그나마의 휴식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린 그와 약속이 있으면 그의 아들 집 근처에서 만나곤 한다.
"며느리 집에 가서는 대충하지... 그렇게 구석구석 닦아주고 치워주니깐 병이 나지. 그렇지 않아도 내가 먹을 밥도 하기 싫어질 나이인데." "나도 그래야지 하고 가지만 막상 걔들 집에 가서보면 맨 일투성이라 그냥 손 놓고 있을 수가 없더라고."친구 말을 듣고 있자니 나 같아도 지레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럼 며느리 들어오면 밥은 지들보고 차려 먹으라고 해. 뭘 밥까지 차려 주냐. 하루 종일 집안일에 손자 돌보는 일까지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 애들도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왔는데…." "가만 보니깐 너무 잘해서 병이 났구만. 옛말에도 넘치면 모자라니만 못하다는 말도 있잖아. 적당한 선을 그어야지. 그러다 자기 골 빠진다.""그러게. 내가 이러다 골병들지 싶다."옆에 있던 B도 "그 말이 맞아, 애초부터 너무 잘해주면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라고 말한다. A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B와 나는 손자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지라 그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며느리 집 살림까지 한다는 말에 우리 둘은 할 말을 잃었다.
우리는 A에게 "두 달 되었는데 이렇게 힘든데 앞으로 어떻게 견딜 거야, 남편하고 의논해서 다른 방법을 찾아봐"했지만 A의 남편은 적어도 1년은 봐주어야 나중에 할 말이 있다면서 꾹 참고 1년을 채우잔다. 아직도 10달이나 더 남았는데 어떻게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을런지 걱정스러웠다. 친구의 상태가 저러면 정말 몸과 마음에 큰 병이 날 것 같았다.
"손자를 할머니 집에서 키워주면 어때?"... "엄마가 아이를 자주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