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암에서 바라본 세죽마을 방향예전에는 횟집이 즐비했으나 지금은 아주 공단지대로 변했다.
정만진
동백나무 가득한 섬, 처용암
그나저나 뜻밖의 행운을 만난 덕분에, 울산 황성동에 있는 처용암 안을 밟아볼 수 있게 되었다. 보통의 관광객은 세죽마을이나 처용마을에서 처용암을 멀찍이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법인데, 동해 용왕이 헌강왕에게 길을 터준 것처럼 문득 친절한 어부 한 분이 길손을 처용암에 데려다주겠노라 하신 덕분이다. 조금 전 주막에서 이런저런 대화 끝에 필자가 직접 쓴 소설책 한 권을 선물로 드렸는데, 그에 감복하였다면서 선의를 자청하신 것이다.
감격에 겨운 심정으로 처용암 안에 발을 딛고 보니, 섬 한복판에 커다란 바둑판 같은 제단이 놓여 있는 것부터 눈에 띄었다. 아직도 지역 어민들은 처용을 위해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는 모양이구나.
아니나 다를까, 정월 보름이면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서 제를 지낸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마침 가져간 소주라도 한 병 있으면 필자도 제단 위에 그것이나마 올려놓고 재배라도 할 일이다 싶었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터라 준비된 제물이 전혀 없었으므로 실제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의 답사는 책만으로 알던 처용암과 실제의 처용암이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소득 있는' 체험이었다. 어떤 유명한 답사 안내 서적은 처용암을 두고 '바다에 떠 있기에 섬이라고는 하지만, 변변한 나무 한 그루는 물론 풀 한 포기도 보기 힘든 자그마한 바위'에 불과하다고 썼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처용암이 바위섬인 것은 분명했지만, 풀 한포기도 보기 힘든 그런 돌덩어리가 아니라 섬 중심부를 가운데로 하여 전체의 절반 이상이 둥그렇게 동백나무로 뒤덮여 있는 초록빛 섬이었다. 바위로 뒤덮인 부분은 바닷물에 접한 물가 일대뿐이었다. 처용암은, 동백꽃이 피는 철에 다시 한번 이곳에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절로 그런 기대에 부풀도록 해주는 낭만의 소도(小島)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