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부모님께 드린 카드.
강정민
"엄마 아빠 올해도 건강하시길 그리고 행복하시길 빌게요. 저는 아이 셋을 키우면서 항상 쩔쩔맵니다. 부모님은 저희 사남맬 어찌 키우셨을지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아빠 엄마 사랑합니다. 정민 올림 "
정성 들여 붓으로 글을 쓰는 내 모습을 보던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야! 딸이 있으니 좋긴 좋구나. 그러니까 우리도 딸이 있어야 하는데." 카드 한 장 쓰는 거 가지고 딸 아들이 무슨 상관이야! 부러우면 자기도 아버님께 카드 쓰면 되지. 아들은 이런 글을 왜 못 쓴다는 건지? 부모 자식 간에 뭐 그리 쑥스럽다고.
"딸이라고 다 이런 거 쓰는 거 아니거든. 나이 사십에 이런 거 쓰는 딸이 어디 흔한지 알아? 나 정도는 되니까 이런 거 쓰는 거야."말은 자랑스럽게 했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지은 죄가 많으니 이렇게라도 속죄하고 싶었던 거다. 그러고 보니 작은 언니도 부모님께 감사 편지를 써서 읽었던 적이 있다. 눈물을 흐리며 읽었는데 언제였지? 아~하, 아빠 환갑잔치 때 지금부터 20년 전에 언니가 감동의 편지를 공개적으로 읽었다. 엄마 아빠가 그 편지 글을 듣고 얼마나 흐뭇하는지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내가 아무 말 없이 홀랑 가출했다. 아, 내가 참 나빴구나.
카드를 마무리하고 친정으로 갔다. 친정에서 둘째가 쓴 카드와 내가 쓴 카드를 부모님께 전해 드렸다.
"어쩜 이렇게 할아버지 할머니 그림을 잘 그렸냐?"엄마 아빠가 카드를 보며 좋아하신다.
"정민이 어디에 글 써서 상 받았다면서. 그 글 볼 수 없냐?" 아빠가 물으신다.
"아빠, 그거 인터넷에서만 볼 수 있어요. 그 신문은 종이 신문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서.""무슨 이야기를 써서 상을 받은 거냐? "옛날에 내가 불효했던 이야기.""야, 넌 뭐 그런 이야기를 하냐? 하지 마."언니가 옆에서 내 말을 막는다. 엄마 아빠가 옛 생각이 나면 속상하실까 걱정이 되나보다.
"정민이가 없는 이야기 지어내서 쓴 것도 아닐텐데. 너는 정민이한테 왜 그러냐?"엄마가 언니를 나무란다.
"하긴 다른 사람들 공모 글 보니까 우리 집은 양반이긴 하더라. 그런데 누가 일등 했냐?"언니가 나에게 물었다.
"그 '전두환의 평생동지' 그 글이 일등 했어.""그래, 그 글이 일등할 거 같더라."집이 먼 언니가 먼저 출발했다. 우리 가족만 남았을 때, 궁금해 하시는 부모님께 글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내가 가출했던 그 이야기 글로 썼어."엄마가 한숨부터 쉰다. 표정도 어두워진다.
"그때, 너까지 가출하고 하늘이 무너지더라. 엄마 아빠가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는지 뭘 잘못해서 너까지 가출을 했는지.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 그 때 무슨 정신으로 엄마 아빠가 살았는지 모르겠다. 니가 가출해서 아빠도 아프셨잖아."생각지도 못했다. 아빠가 한 달간 아팠던 것이 나의 가출 때문인 줄은. 아빠가 아팠던 시기는 내가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라 그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빠가 너 집나가고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몸까지 상하셨겠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빠 엄마가 내가 가출하고 얼마나 힘들어 하셨는지 내 눈으로 보지 못해서 잘 몰랐다. 건강체인 아빠가 한 달을 꼬박 자리 보전하고 누워계실 정도로 나의 가출은 부모님께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는 이제야 알았다.
언니 오빠들이 결혼해서 집을 떠날 때도 참 허전해 하셨는데, 늦둥이인 내가 결혼했을 때는 더욱 허전해 하셨을 텐데... 결혼한 것도 아니고 가출, 그것도 아무 말도 없는 가출에 얼마나 먹먹하셨을까? 학생운동을 하더라도 꼭 그렇게 가출까지 했어야 했을까? 내 가출로 부모님은 당신들의 전 삶을 돌아보며 고민하셨을 거다. 당신들이 무슨 큰 잘못을 하여 이런 벌을 받나 고민을 하셨을 거다. 내 마음이 아렸다.
친정에 오기 전에는 불효자 공모 글을 쓰며 들었 던 내 감정을 엄마에게 다 털어 놓을 계획이었다. 엄마에게 '엄마, 미안해. 상처투성이 엄마에게 내가 또 상처를 줘서.' 하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울 거 같아서 내가 말하다 말고 울 거 같아서.
그냥 엄마의 탄력 없는 볼에 뽀뽀를 해 드렸다.
"엄마, 사랑해요. 건강하게 지내세요." 그리고 엄마의 작은 등을 쓰다듬었다. 엄마도 내 볼에 뽀뽀를 해 주신다. 아빠에게도 "건강하세요 사랑해요." 말하고는 뽀뽀를 해 드렸다.
오늘은 미안하다는 말을 못했다.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다음 번에는 미안하다고 꼭 말하고 싶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엄마, 용기 없어 '미안하다'는 말 아직은 못 하겠어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