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용기 없어 '미안하다'는 말 아직은 못 하겠어

등록 2011.05.12 19:40수정 2011.05.1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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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엄마한테 나 불효자 글 공모에서 상 받는다고 말했다."
"야! 왜 그딴 말을 엄마한테 해?"
"왜? 엄마 좋아하시던데."
"그냥 상 받는 것만 말하면 되지. 불효자 주제로 상 받았다는 말을 왜 하니?"


언니는 이미 <오마이뉴스>에서 내 글을 읽어 보았다. 그래서 글 내용이 어떤지 다 안다. 언니와 나는 어버이날 몇 시에 만날지 이야기하고 전화통화를 끝냈다.

이번 어버이날은 준비하는 마음이 좀 다르다. 부모님께 내가 제일 불효한 일이 무엇인지 글로 써 보았더니 정말로 내가 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가면 부모님께 뽀뽀도 해 드리고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말 해야지.

어버이날 아침, 아이들에게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드릴 카드를 만들라고 시켰다. 초등학생인 둘째는 종이에 할머니 할아버지 그림을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사세요. 사랑해요" 하고 쓴다. 중학생인 첫째는 "이따가 할게" 하며 뺀질거린다. 나도 붓을 들고 글을 썼다.

어버이날 부모님께 드린 카드. ⓒ 강정민


"엄마 아빠 올해도 건강하시길 그리고 행복하시길 빌게요. 저는 아이 셋을 키우면서 항상 쩔쩔맵니다. 부모님은 저희 사남맬 어찌 키우셨을지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아빠 엄마 사랑합니다. 정민 올림 "

정성 들여 붓으로 글을 쓰는 내 모습을 보던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야! 딸이 있으니 좋긴 좋구나.  그러니까 우리도 딸이 있어야 하는데."

카드 한 장 쓰는 거 가지고 딸 아들이 무슨 상관이야! 부러우면 자기도 아버님께 카드 쓰면 되지. 아들은 이런 글을 왜 못 쓴다는 건지? 부모 자식 간에 뭐 그리 쑥스럽다고.

"딸이라고 다 이런 거 쓰는 거 아니거든. 나이 사십에 이런 거 쓰는 딸이 어디 흔한지 알아? 나 정도는 되니까 이런 거 쓰는 거야."

말은 자랑스럽게 했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지은 죄가 많으니 이렇게라도 속죄하고 싶었던 거다. 그러고 보니 작은 언니도 부모님께 감사 편지를 써서 읽었던 적이 있다. 눈물을 흐리며 읽었는데 언제였지? 아~하, 아빠 환갑잔치 때 지금부터 20년 전에 언니가 감동의 편지를 공개적으로 읽었다. 엄마 아빠가 그 편지 글을 듣고 얼마나 흐뭇하는지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내가 아무 말 없이 홀랑 가출했다. 아, 내가 참 나빴구나.

카드를 마무리하고 친정으로 갔다. 친정에서 둘째가 쓴 카드와 내가 쓴 카드를 부모님께 전해 드렸다.

"어쩜 이렇게 할아버지 할머니 그림을 잘 그렸냐?"

엄마 아빠가 카드를 보며 좋아하신다.

"정민이 어디에 글 써서 상 받았다면서. 그 글 볼 수 없냐?"

아빠가 물으신다.

"아빠, 그거 인터넷에서만 볼 수 있어요. 그 신문은 종이 신문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서."
"무슨 이야기를 써서 상을 받은 거냐?
"옛날에 내가 불효했던 이야기."
"야, 넌 뭐 그런 이야기를 하냐? 하지 마."

언니가 옆에서 내 말을 막는다. 엄마 아빠가 옛 생각이 나면 속상하실까 걱정이 되나보다.

"정민이가 없는 이야기 지어내서 쓴 것도 아닐텐데. 너는 정민이한테 왜 그러냐?"

엄마가 언니를 나무란다.

"하긴 다른 사람들 공모 글 보니까 우리 집은 양반이긴 하더라. 그런데 누가 일등 했냐?"

언니가 나에게 물었다.

"그 '전두환의 평생동지' 그 글이 일등 했어."
"그래, 그 글이 일등할 거 같더라."

집이 먼 언니가 먼저 출발했다. 우리 가족만 남았을 때, 궁금해 하시는 부모님께 글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내가 가출했던 그 이야기 글로 썼어."

엄마가 한숨부터 쉰다. 표정도 어두워진다.

"그때, 너까지 가출하고 하늘이 무너지더라. 엄마 아빠가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는지 뭘 잘못해서 너까지 가출을 했는지.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 그 때 무슨 정신으로 엄마 아빠가 살았는지 모르겠다. 니가 가출해서 아빠도 아프셨잖아."

생각지도 못했다. 아빠가 한 달간 아팠던 것이 나의 가출 때문인 줄은. 아빠가 아팠던 시기는 내가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라 그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빠가 너 집나가고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몸까지 상하셨겠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빠 엄마가 내가 가출하고 얼마나 힘들어 하셨는지 내 눈으로 보지 못해서 잘 몰랐다. 건강체인 아빠가 한 달을 꼬박 자리 보전하고 누워계실 정도로 나의 가출은 부모님께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는 이제야 알았다.

언니 오빠들이 결혼해서 집을 떠날 때도 참 허전해 하셨는데, 늦둥이인 내가 결혼했을 때는 더욱 허전해 하셨을 텐데... 결혼한 것도 아니고 가출, 그것도 아무 말도 없는 가출에 얼마나 먹먹하셨을까? 학생운동을 하더라도 꼭 그렇게 가출까지 했어야 했을까? 내 가출로 부모님은 당신들의 전 삶을 돌아보며 고민하셨을 거다. 당신들이 무슨 큰 잘못을 하여 이런 벌을 받나 고민을 하셨을 거다. 내 마음이 아렸다.   

친정에 오기 전에는 불효자 공모 글을 쓰며 들었 던 내 감정을 엄마에게 다 털어 놓을 계획이었다. 엄마에게 '엄마, 미안해. 상처투성이 엄마에게 내가 또 상처를 줘서.' 하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울 거 같아서 내가 말하다 말고 울 거 같아서.

그냥 엄마의 탄력 없는 볼에 뽀뽀를 해 드렸다.

"엄마, 사랑해요. 건강하게 지내세요."

그리고 엄마의 작은 등을 쓰다듬었다. 엄마도 내 볼에 뽀뽀를 해 주신다. 아빠에게도 "건강하세요 사랑해요." 말하고는 뽀뽀를 해 드렸다.

오늘은 미안하다는 말을 못했다.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다음 번에는 미안하다고 꼭 말하고 싶다.
#불효자 #가출 #어버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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