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문집 <우리들의 이야기>장녀(당사자는 큰딸이라고 불러주기를 원함) 현경이의 16회 생일날, 친구 소연이와 가영이가 밤을 새며 만들어준 생일 기념 문집 <우리들의 이야기>
이명재
표지에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 생일을 맞은 현경이를 가운데 하고 왼쪽에 소연이 그리고 오른쪽에 가영이의 사진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특징이 도드라지는 사진이어서 그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고 또 무슨 생각으로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까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일 문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선물을 만드느라 하룻밤을 꼬박새웠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친구 사랑 그리고 열정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표지를 넘기니 '이 책을 이현경님에게만 바칩니다. -신 자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른인 저는 이것을 공책으로 봤는데, 청소년인 그들은 손수 만든 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헌정의 말을 첫 쪽에 붙인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책을 만든 이들로 '신 자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마 소연이와 가영이가 같은 '신씨'여서 그런 친근한 표현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이들의 정성이 대단합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예전에 군대 제대할 때 동료 후배 군인들이 '전역'을 축하한다며 만들어준 추억 앨범을 연상케 합니다.
아이들의 글도 맵시가 있습니다. 그들의 우정을 다짐하는 글들이 페이지마다 수 놓여 있습니다. 어디서 오려왔는지 요람 위에 귀저기 찬 아이 사진을 붙여놓고 그 밑에 '우리는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 다음 장엔 한반도 지도를 붙여놓고 '같은 지역 사람도 아니고….'라는 글귀를 달아놓았습니다. 지도를 자세히 보니 서울과 김천 그리고 대구에 빨간 글씨로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아마 서울에서 태어난 현경이, 김천에서 태어난 소연이 그리고 대구에서 태어난 가영이의 출생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어서 세 아이들을 나타내는 캐릭터 사진 밑에 '생각하는 것도 다르지만… .' 페이지를 달리하여 '촌팸으로 하나 됐지!!'라는 글귀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촌팸'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중요하다는 표시로 글자 위에 두 개의 꽃무늬 스티커까지 붙여 놓았습니다. 촌에서 살고 있다는 말인지, 아니면 촌에 있는 초등학교를 나왔다는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촌'과 관계가 있는 말임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본론 격으로 세 아이의 자기소개를 자세하게 기술하며 서로의 다름을 강조하고 있지만, 영화와 연예인 그리고 운동선수 등 함께 좋아하는 것들을 소개하며 어깨동무한 사진 밑에 '서로 상처 주는 말도 많이 하고 서로 간에 자잘한 갈등과 오해도 있었지만… .' '힘들 때는 서로 위로해 주고 잘 되는 일 있으면 함께 기뻐해 주고, 고민 있으면 터놓고 이야기하자'며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반 아이들이 생일을 맞이한 현경이에게 주는 예쁜 글씨의 축하 글들이 몇 페이지에 걸쳐 빼곡히 붙여져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정은 날개 없는 사랑이다. -바이런-' '-THE END-'로 저술(?)은 막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현경이의 생일을 맞이해서 친구들이 정성껏 마련해 준 문집을 보면서 저는 엉뚱한 상념에 젖었습니다. 이 사회가 각박하고 이기적이고 무한 경쟁에 내몰려 있다는 한탄의 소리가 많이 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른들의 생각과 세계이지 아이들은 순수함과 천진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관점이라면 한 친구를 위하여 밤을 새며 순수하면서도 아름다운 꿈을 담은 문집을 만들어 이튿날 전해 주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현경이의 이번 생일이 좀 쓸쓸했다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형식만 따지는 아빠의 마음이었지 아이들에겐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꾸민 생일잔치가 난무하는 가운데, 아이들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생일을 생각하니 갑자기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우리는 늘 내용이 형식을 규정하기보다 형식이 내용을 이끄는 모습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베풀며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기보다 결과에만 연연하는 우리 어른들이었습니다.
현경이 친구들이 밤을 새워 만든 문집 말미에 '아가씨 되어서 카페에 모여 수다 떨고 … 아줌마 되면 애들 데리고 다 같이 밥 먹고 … 늙어서도 끝까지 함께 가자~'고 한 세 소녀의 다짐은 인생의 전 과정을 잘 담고 있는 글귀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답습니다. 어른 흉내나 내는 아이들은 이렇게 다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출세해서 너를 생각하고 내가 잘 되어서 너를 돕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식의 약속이 앞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 자매(현경, 소연, 가영)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우정이 변치 않고 이어지기를 세 자매의 한 아빠로서 또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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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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