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차장한국 돈을 받아들고 좋아하던 사람
최성수
담배 사건이 있은 이후, 달리는 버스 안에 탄 중국인들은 모두 창밖을 보고 있거나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척 했지만, 끊임없이 우리를 관찰하는 눈길이다. 어쩌다 그 눈길과 내 눈길이 마주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얼른 고개를 돌리곤 한다. '대체 이 외국인들은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하는 궁금증이 버스 안에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한참 침묵이 이어진 후, 차장이 조심스레 내게 말을 건넨다.
"너희들 어느 나라 사람이냐?"묻는 것조차 미안한 듯, 얼굴 표정이 한없이 부드러워진다. 차장의 질문이 계기가 되었는지, 버스 안의 중국인들이 모두 나를 주시한다. 궁금함과 호기심이 얼굴 가득하다.
"우리 한국 사람이다."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주위의 중국인들 표정이 갑자기 환해진다. 긴장과 호기심으로 딱딱하게 굳어있던 표정이 동시에 그렇게 환하게 바뀌는 순간은 평생 처음이다.
"한국?""정말 한국 사람이야?""한국에서 왔대."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면서도 우리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마치 신기한 동물을 보는 표정이다. 한국인이 자기네 버스에 탄 것은 처음이라느니, 한국사람 구경하는 것도 처음이라느니 하는 말들을 주고받더니, 차장이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한국 돈 좀 보여줄 수 있니?"차장은 차비로 받은 돈을 손에 쥐고 나에게 가리키며 말한다.
주머니를 뒤져 천 원 짜리 한 장을 꺼내 주자 차장이 받아 한참 들여다보더니 돌려준다.
"그냥 너 가져라. 기념이다."내 말에 차장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천원이 중국 돈으로 얼마냐고 묻기에, 6위안 정도 된다고 하자 그가 얼른 10위안 짜리 한 장을 꺼내 내게 준다. 아니 그냥 선물로 주는 거라고 하자, 그가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고맙다는 말을 되뇐다.
그러자 아까 담배를 피우던 청년이 내게 손을 내민다.
"나도 한국 돈 하나만 줘라."강요가 아니라는 듯, 그의 표정이 한없이 부드럽다. 아내가 지갑에 있는 동전을 꺼내 주자 그가 또 이리저리 동전을 살펴보며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그러자 여기저기 중국인들이 서로 한국 돈을 달라며 난리다. 일행들이 동전을 꺼내 나누어주자 서로 왁자지껄 떠드느라 버스 안이 도떼기시장같이 시끄러워진다.
"한국 사람은 드라마에서만 봤다.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다. 환영한다."차장이 다시 인사를 한다. 그 눈빛에 호의가 가득하다. 내가 중국에 자주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왜 더럽고 불친절한 중국을 그렇게 자주 가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빙그레 웃고 만다.
더럽고 깨끗함의 기준이 정말 무엇일까? 친절과 불친절의 경계는 어디일까? 어쩌면 늘 샤워를 하고, 새 옷만 골라 입는 우리가 실은 더 더러운 것 아닐까?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민 채, 허위로 가득 찬 자본의 나날을 살아가는 우리야말로 불결하고 불친절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 아닐까?
모든 것이 더럽고, 모든 사람이 불친절한 나라는 없다. 그 나라 사람의 일부가 더럽고, 일부가 불친절할 뿐이다. 그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순간, 중국인은 한없이 친절하고 한없이 부드럽다. 나는 그런 순간을 즐겁게 맞아들이면 될 뿐이다.
짜이하오에 왜 가느냐는 차장의 질문이 이어지고, 완짜이 마을을 찾아간다니까, 거기는 외국인이 묵을 곳이 없다고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준다. 차도 다니지 않는 마을이라며, 버스가 도착하면 거기에서 빵차(봉고차)를 알아봐주겠다는 친절까지 덧붙여 준다. 고맙다.
차는 강을 옆구리에 끼고 달린다. 차 안에서는 중국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가 꽃을 피운다. 이런 것이 여행의 재미라는 것을 새삼 만끽한다.
동족의 초대버스 차장의 도움으로 빵차를 빌려 완짜이 마을로 향한다. 짜이하오에서 완짜이까지는 가까운 거리이긴 하지만,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비포장이다. 길은 한창 공사중이다. 완짜이 마을로 가는 길이 아니라 산 너머 새로 공항을 닦는데, 그곳으로 이어지는 길을 공사중이란다.
완짜이 마을은 가파른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는 동족 거주지다. 꽤 이름이 있는 동족 마을이라는데, 가는 길도 험하고 관광객이라곤 눈 씻고 봐도 한 명도 없다. 아슬아슬한 비탈에 촘촘하게 지어진 집들도 오래 된 것보다는 새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