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불고택 본채와 사랑채
정만진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마시던 옥천이 지금도금호강을 건너 동촌 안에서 왼쪽으로 비행장 담을 타고 들어가면 둔산동에 닿는다. 둔산은 왕건의 군대가 주'둔'한 '산'이라는 뜻이다. 본래 이름은 옻골마을인데, 이 마을은 안으로 들어서면 대단한 옛날 와가들이 즐비하여 답사객을 황홀하게 만든다.
옻골마을의 한옥들 중에서 한가운데에 있는 저택이 흔히 백불고택이라고 불리는 '경주최씨종가'이다. 대구에 남아 있는 주택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본채는 1694년(숙종 20)에 지어졌고, 사랑채는 1905년(고종 42)에 중건되었다. 이 고가들에 백불고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최씨 문중이 낳은 대학자 최흥원(崔興遠)의 호가 백불암(百弗庵)이기 때문이다.
백불고택에서 동촌으로 곧장 나오지 않고 고속도로 아래를 지나면서 바로 우회전하면 그대로 도동에 닿는다. 이 길의 끝도 고속도로가 하늘을 덮어 사람을 답답하게 한다. 고속도로 아래의 길가에서 오른쪽 산비탈을 보면 주차장이 숨은 듯 들어앉아 있다. 주차장 끝에는 안내판이 하나 댕그마니 서 있다. 용암산성 일대와 옥천을 안내하는 표지판이다.
정상까지 가는 데에는 30분가량 걸린다. 그리 멀지는 않지만, 계속 숲 사이를 걷는데도 제법 길이 가파른 탓에 산을 오르는 기분만은 충분히 느껴진다.
답사객이 이 오름길을 오르는 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정상 우측 비탈에서 뜻깊은 샘 하나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정상 턱밑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떠 마시면서 결사항전했던 우물에서 아직도 물이 샘솟고 있는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다. 그 이름 옥천(玉泉)이 헛되지 않은 것이다.
또 하나는, 옥천 옆에서 바라보는 팔공산의 전경이 장쾌하게 사람의 마음에 사무쳐온다는 점이다.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지는 팔공산의 위세를 바라보노라면, 등산 끝에 밀려오는 노곤함은 순식간에 다 사라져버리고 문득 꿈을 꾸는 듯한 무아지경으로 젖어든다. 켜켜이 쌓인 산줄기들이 그려내는 아득한 빗살무늬는 애써 찾아온 답사객을 선사시대의 풍경 속으로 황홀하게 이끌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