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 무량수전 현판자연스럽고 투박하면서도 모든 것을 받아들일 것 같은 겸허함이 느껴진다.
김대오
그리고 추사는 대웅전 우측의 백설당에 '무량수각(無量壽閣)' 현판 글씨를 써 준다. 지금도 남아있는 추사의 편액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면서도 모두를 포용할 것 같은 자태로 대흥사 대웅전 곁을 지키고 있다.
최고의 명필로 꼽히는 추사 김정희의 사찰 편액이 적지 않은데 죽기 3일 전에 썼다는 봉은사의 경판전(經板殿)에 걸린 '판전(版殿)'과 영천 은해사(銀海寺)에 걸린 '대웅전(大雄殿)' 편액만이 직접 쓴 것이고, 다른 사찰에 걸린 추사의 대웅전 편액은 모두 모각한 것이라고 한다.
어수룩하게 보이기 어렵다는 의미로 중국어에 '난더후투(難得糊塗)'라는 말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꼭 빼어난 재능을 휘두르며 뽐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나아감과 물러남을 알고 때와 장소에 맞게 자신의 처신을 올리고 내리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은 세상이니 말이다.
'물이 깊으면 파도는 고요하고 배움이 넓으면 언성은 나직하다(水深波浪靜, 學廣語聲低)'는 이치를 추사는 어쩌면 고단한 유배기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나와는 다른 타인을 인정하고 품어 안는 그 깊은 성찰의 깨달음을 말이다.
대흥사를 내려오며 생각해 본다. 온 산을 물들이는 것은 화려한 꽃이 아니라 그 꽃을 받들며 피어나는 수많은 나뭇잎들의 푸르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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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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