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치는 보통은 구이로 먹지만 남도 쪽에서는 싱싱한 삼치를 회로도 즐겨 먹는다. 몇 년 전 남도지방에 머물고 있을 때 먹어본 기억으로는 웬만한 회보다 더 대접을 받는 게 삼치회였다.
보기에는 비릴 것 같지만 양념장에 찍어 먹거나 묵은지에 싸서 먹으면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메웠던 게 바로 삼치회였다.
지난 몇 년 동안 수도권 인근에서 그동안 숱한 횟집과 일식집을 드나들었다지만 삼치회를 파는 곳은 보지 못했다. 나에게 삼치회는 기억 저편에만 남아 있는 추억의 맛이었던 셈이다.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 수산시장 A동 뒤편에는 사리물때만 되면 풍성한 파시(?)가 열리곤 한다. 오이도 어촌계 계원은 약 200여 명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은 2톤짜리 선외기로 근해에서 자망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아다가 선착장에서 판다. 이와 반해 이곳 뒷골목 쪽에서 생선을 팔고 있는 어민들은 10톤 내외의 배로 조금 더 먼 바다에 쳐 놓은 안강망 조업으로 잡아온 생선을 판다.
선장은 선원들과 함께 먼 바다로 나가서 생선을 잡아오고 그 부인들은 이곳 수산시장 뒤편에서 길거리에 좌판을 펴놓고 그날 잡은 생선을 즉석에서 파는 형식이다. 안강망 조업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지 않는 조금때는 고기가 덜 들고 조석간만의 차이가 커 물살이 빠른 사리때는 고기가 많이 드는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보름마다 돌아오는 사리때만 되면 배마다 만선을 이루곤 한다. 바로 이 물때에 맞춰 오이도 수산시장 뒷편으로 가게 되면 싸고 싱싱한 생선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또 있다. 바로 시간이다. 보통은 새벽에 조업을 나가 그물을 걷어와 이곳에 도착하는 시간이 오후 1~2시경이기에 보통은 오후 3시경에 맞춰 가면 가장 물좋은 생선을 만날 수 있게 된다.
6월초 요즈음 많이 나는 생선은 살아있는 '병어'와 '광어'다. 5, 6월 한 달 남짓 동안은 살아서 펄떡 펄떡 뛰고있는 '병어'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여기에 손님 고기로 그물에 들어온 아귀, 삼치, 갑오징어, 낙지… 등등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살아있는 각종 서해안 생선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홍만급' 삼치, 들기도 힘겹네
3일 오후 3시경 이곳을 찾았다. 쭉 늘어서 있는 10여 명의 어민 앞에 많은 사람들이 생선가격을 흥정하느라 정신없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싱싱한 생물 삼치. 오늘 아침에 안강망 그물 안에 들어 있던 놈이니 선도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대여섯 마리의 초대형 삼치가 놓여 있었다. 삼치의 눈망울은 탱글탱글 살은 축 늘어지지 않고 뻣뻣하다. 죽은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징표다. 곧바로 흥정에 들어갔다. 그동안 많은 삼치를 보았지만 이 삼치처럼 큰놈은 처음이다.
10kg쯤 나간다면서 5만 원만 내라고 한다. 속으로 계산을 얼추 해보니 1kg당 5천 원에 불과하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도 없이 돈을 내밀었다. 흥정은 끝났지만 이제는 들고갈 일이 문제다. 또 삼치는 쉽게 상하기 때문에 1시간 내외의 이동이라고 하지만 얼음을 채워야만 했다.
별수 없이 커다란 PE자루를 하나 달라고 해 그 안에 얼음을 채워넣고 삼치를 담았다. 차가 있는 곳까지 2~300미터를 가야만 하는데 이걸 들고 가는데 장난이 아니다. 고기 무게에 얼음무게를 더하면 십오륙킬로가 나갔을 테니 간신히 들고 가야만 했다.
끙끙대며 간신히 차에 싣고 상하지 말라고 에어컨을 최대로 올린 후 조수석 쪽 바닥에 놓았더니 이게 또 문제였다. 길이가 1m 20cm가 되다 보니 커브를 돌 때마다 꼬리가 변속기를 조작하고 있는 내 손등을 치는 거였다.
삼치를 들고 들어온 후 해야 할 작업은 먹기 좋게 다듬는 것. 하지만 통상적으로 하는 생선을 다듬기가 아니었다. 초대형이다보니 도마 위에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싱크대 위에서 다듬어야만 했다.
칼도 집에 있는 것 가운데 가장 큰 식칼을 사용했지만 한번에 들어가지 않았다. 배 부위쪽은 폭이 20cm가 넘는 듯 보였기 때문. 내가 생선을 다듬는 것인지 아니면 가끔식 일식집에서 퍼포먼스로 보던 참치 해체작업을 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서른 덩어리가 넘은 '어마어마한 양'
먼저 배를 가르니 배안 한가득 알이 차있다. 운 없는 삼치가 봄철 산란기를 맞아 연안 쪽으로 다가왔다 잡혔던 것이다. 크기 때문에 알 또한 그 양이 장난 아니다. 지름 30cm에 가까운 반구형 그릇에 가득 들어갔다. 이 한 마리가 운 좋게 살아 남아 산란을 마쳤더라면 몇천마리의 새끼 삼치가 태어났을 법하다.
삼치의 금어기가 설정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숙명적인 산란을 위해 연안 가까이 왔다 불운하게 인간의 식탁에까지 오른 삼치의 운명이 얄궂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내장을 정리한 후 살을 다듬어야 할 차례였다. 다행인 것은 삼치는 살이 물러서 칼이 한번에 잘 먹어 들어간다. 세 조각으로 나눈 뒤 참치를 보관하는 것처럼 냉동보관하기 위해 10cm단위로 덩어리를 만들어 나갔다. 알루미늄 포일로 싼뒤 다시 랩으로 싸서 냉동 보관해 놓고 두고두고 먹을 생각이다.
서른 덩어리가 넘는 것 같다. 차례차례 알루미늄 포일과 랩으로 둘둘 말아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만든뒤 냉동실 보관 용기에 차곡차곡 재워 놓았다. 이렇게 해서 일 단계 작업은 끝났다.
이제는 저녁상에 올릴 반찬을 어떻게 할 것인지 궁리할 차례. 포를 뜨고 남은 뼈 부분만 해도 양이 너무 많아 한 조각만 남겨놓고 랩으로 싸서 냉동실에 넣었다. 뻐두께가 2cm가 넘으니 거기에 붙어 있는 살 또한 웬만한 삼치 구이보다 그 양이 많을 것 같다. 머리 부분은 두 조각으로 나눠 구이로 먹을 셈이다.
싱싱할 때 먹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은 '삼치회'가 아니겠는가. 아니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바로 '삼치 초밥'이다. 뭐 이것도 일반적인 초밥이 아니다. 새로운 초밥의 경지에 도전해 보고픈 마음이 먹었던 것.
제주도에서 맛보았던 새로운 '한국형 초밥'
지난주 제주도 횟집에서 전혀 새로운 형태의 초밥을 먹은 적 있다. 바로 김으로 싸서 먹는 초밥이다. 초밥은 배합초를 섞어 만들어 놓은 초밥용 밥에 회를 얹어 손으로 주물러 모양을 만들어 내놓는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이날 맛본 초밥은 초밥용 밥 따로 회 따로 거기에 바삭바삭하게 구워진 김이 함께 나왔었다. 김 위에 적당량의 초밥용 밥을 얹고 적당량의 고추냉이(와사비)와 함께 간장을 찍어 회를 얹은 후 돌돌 만 후에 먹는 형식이었다.
이렇게 먹는 걸 곧 바로 써먹었다. 이름하여 한국형 초밥에의 도전이다. 초밥의 지존에 도전하는 셈이지만 만들기는 어렵지는 않다. 집에서 초밥을 만들어 먹을때 가장 어려운게 바로 초밥용 밥을 적당량으로 뭉치고 그 위에 회를 얹어 모양을 다듬는 과정인데 이런 과정이 전혀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배합초에 밥을 비빈 후 그릇에 적당량 담은 후 주걱으로 약간만 눌러서 상에 놓으면 1단계 작업이 끝난다. 그 다음은 마른김을 바삭바삭하게 구운 후 6등분해 놓고 고추냉이와 함께 간장을 따로 따로 놔두면 준비 끝이다. 물론 회 또한 초밥용으로 만든다고 공을 들일 필요가 전혀 없다. 그냥 횟집에서 썰어 놓듯 적당하게 썰어 놓으면 먹는 사람이 취향껏 김에 얹어서 먹으면 되기 때문.
아내가 늦는다고 연락이와 두 아들과 나까지 세명이 먹는 식탁 위에 새로운 한국형 초밥을 내놓았다. 밥 세공기에 두 숟가락 분량의 배합초를 넣고 비빈 후 얼려놓은 삼치와 생물삼치를 같이 그릇에 담아 놓았다.
"아들아 맛이 어떠냐..."
말 대신에 두 아들의 입속으로는 계속해서 돌돌 만 앙증맞은 '한국형 초밥'이 쉴새 없이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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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cm, 10kg... '최홍만급' 삼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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