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죽일 거라고 믿고, 아들은 거꾸로 아버지가 자신을 죽일 거라 생각합니다. 이게 가능할까요?"
도서관에 모인 30-40대 남자 10명은 이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떻게 부자지간에 저렇게 살 수가 있을까?
용인시 수지구 느티나무도서관에서 지난 4월부터 매월 셋째주 토요일에 열리는 '아버지 학교'의 5월 주제는 '나와 아버지'였다.
이날 진행을 맡은 노영주 (사)가족친화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서로 죽이려는 부자(父子)가 가능한지 질문을 던지고는 이승우 소설 <칼>을 소개한 신문 기사를 읽었다.
주인공 '나'는 칼을 수집하는 남자의 제안으로 그의 부친인 노인의 말 상대가 되어 주는 일을 맡는다. 근무 시간은 해가 질 때부터 해가 뜰 때까지. 어둠을 두려워하는 노인은 열다섯 개의 전등을 켜 둔 방에서 주인공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거나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다가 힘겹게 잠을 청하곤 한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노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 주인공에게 일을 맡긴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놈이 언젠가 나를 죽일 거야"라고 노인은 말하는데, 아들은 거꾸로 노인이 "나를 죽일 거야"라고 믿고 있다. 그가 자신의 부친을 방문할 때 소매 속에 단검을 숨겨 지니고 가는 것이 죽이기 위한 것인지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함인지는 알 수가 없다.
많은 재산을 축적했으면서도 아들을 믿지 못해 그에게는 "일다운 일을 맡기지 않"는 늙은 아비와, "아버지가 하는 모든 험한 말들을 옷 속의 칼이 막아주는" 느낌이라면서 끝내 칼을 놓지 못하는 아들.
-<한겨레> 5월 21일자
대다수 참석자들은 소설에 나온 설정이라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버지와 아들은 원수지간이 아니라는 것. 다만 이 이야기가 오늘날 한국의 아버지와 아들이 적대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남처럼 지낸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한 참석자의 의견에는 대개 동감했다.
남남처럼 서먹서먹한 아버지와 아들
그렇다면 참석자들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 질문에 9명은 아버지와 몇 마디 나누지 못하는 사이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를 미워하지는 않는다고 했고 단 한 사람만이 아버지와 술친구처럼 지낸다고 답했다.
왜일까? 왜 이들은 아버지와 몇 마디도 나누지 못하는 걸까? 이에 대해 한 참석자가 말했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다들 그랬잖아요. 무섭고 권위적이고 무뚝뚝하고."
방에 누워 '재떨이 가져와라' '물 떠와라', 뭔가 시키기만 하고, 아무 말 없이 TV만 보고, 가끔 공부하라고 호통치시던 아버지. 잘 웃지도, 단 한 번도 울지도 않고 항상 굳은 표정으로 자식을 대하던 아버지.
참석자들에게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다. 당연히 이런 아버지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건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아들이 이제 자식을 둔 아버지가 되었건만 자기의 아버지는 여전히 어려운 존재다.
"그때의 아버지를 이해합니다. 내가 아버지 나이가 돼 보니 그럴 수밖에 없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말에 참석자 모두 고개를 끄덕 끄덕.
"그러나,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아요. 애들에게 친구같은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역시 다들 고개를 끄덕 끄덕.
가면 쓰고 있는 한 아버지처럼 될 수밖에 없어
그러나 어떻게 하면 친구같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각자 의견을 말하는 가운데 한가지 문제가 드러났다. 사실 자신도 자기 아버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옛날 아버지들이 무섭고 권위적인 이유는 자신이 '가면'을 쓴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사회에서 부여한 역할이 있다. 이 역할을 수행하려면 자신을 감추고 그 역할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을 해야 한다. 일종의 가면을 쓰는 것이다(가면은 자신의 표정을 감추는 유용한 도구다). 문제는 가면을 쓰다가 어느 순간 가면을 진짜 자신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 옛날 아버지들은 남자는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건 일종의 '가면'인데 이 가면을 곧 진짜 자신으로 간주해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안 드러내려고 참았다.
이런 남자들은 '역할'을 잃게 되면 아무 것도 못한다. 예를 들어 직장을 그만 두면 남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전락한다. '나=직업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참석한 사람들도 이 점은 같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맞춰 가면을 쓰고 있는데 그 가면을 벗었을 때 진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참석자 중 그 누구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진행자는 진짜 나를 알려고 하지 않는 한 결국 자신이 되기 싫어하는 아버지를 그대로 뒤따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들과 친구과 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걸 잘 알아"
느티나무 도서관 아버지 학교는?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느티나무 도서관은 '동네 마실'을 자처한다. 도서관 주변에 사는 동네 사람들이 마실처럼 편안히 드나들 수 있도록 환경을 꾸며놓고 주민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아버지 학교' 역시 동네 아버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수다를 떨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아버지 학교는 앞으로 4회 더 진행한다. 여성가족부가 후원하는 동네 도서관 사업에 선정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
이 말에 한 참석자가 "자기 역할에 충실한 것이 잘못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진행자는 "역할에 충실한 것이 잘못이란 게 아니라, 역할과 자기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진행자는 "여자들은 대체로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걸 잘 안다"라며 "역할을 수행하는 순간의 나와 본연의 나가 다르다는 걸 잘 알기에 자기를 잃지 않는다"고 말했다.
진행자는 이어 "한국의 남자들은 가면과 자신을 잘 구분 못한다"며 "그 결과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주어진 가면만 쓰고 있기에 가족이나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요즘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을 자주 접한다. 명상에서도, 종교에서도, 심지어 자기계발서에서도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이 질문이 좋은 아버지 되기에서도 여지없이 나왔다.
'아이들과 잘 노는 법'을 배우려 온 아버지들은 뜻하지 않게 그 옛날 소크라테스가 던졌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문제를 풀어야 할 과제를 떠안게 됐다. 아버지들이 이 어려운 난제를 잘 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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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려 한다,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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