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휴양림에서여행을 가도 아빠와 함께
정가람
백수가 된 남편의 입장으로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흔쾌히 알았다고 답해야만 했다. 생각 같아선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이번 기회에 쉬면서 나의 장래에 대해 더 고민하고, 공부도 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싶었지만 아내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는 없었다.
집에서 아내와 함께 아이를 보다 보면 결국 그 모든 것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그게 내 업보겠거니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이 모든 걸 극복하고 답을 구하게 되면 더 절실하겠지.
덕분에 나의 하루는 아이의 똥 냄새와 함께 시작됐다. 평소 새벽에 출근하기 위해 일찍 잠을 청해야 했던 난 회사를 그만둔 뒤 밤 늦게 잠을 청하고 아침 늦게까지 이불 속에서 기어 나오지 못했는데(아이가 자는 그 시간만이 우리의 자유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놀던 아이는 아침 10시쯤이 되면 어김없이 똥을 쌌고, 나는 그 냄새에 기저귀를 갈기 위해 눈을 떠야만 했다. 둘째를 임신한 아내에게 차마 아이의 똥 기저귀를 갈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문제는 비몽사몽 아이의 똥 기저귀를 갈고 난 뒤 시작되었다. 아이는 똥을 싸고 난 뒤에 꼭 배고프다고 징징거렸는데 그게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요리의 '요'자도 싫어하는 내가 아침밥을 하자니 너무도 막막하고, 그렇다고 밤 늦게까지 작업하다 곤히 잠든 아내를 깨우자니 너무 미안하고.
처음에는 아내가 조언한 대로 우유에 시리얼을 타서 아이에게 먹였지만, 그것도 며칠이었다. 아이는 이내 밥을 달라고 울어댔고 결국 만삭의 아내가 힘들게 일어나 아침밥을 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보기 안쓰러웠지만, 두 눈 질끈 감고 외면했다.
못 하는 것도 못 하는 거지만 요리 자체가 워낙 싫었던 탓이었다. 대신 난 아내에게 집에 있는 동안에는 집안 일에 최선을 다하겠노라며 다시 한 번 약속하였고, 아무리 귀찮은 일이라도 아내의 요청만 있으면 기꺼이 나섰다. 요리 하나만 빼고.
신뢰의 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