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에서 치커리 키우는 여자...'지금 만나러 갑니다'

한진중공업 김진숙을 응원하는 '희망버스'...11일에 출발

등록 2011.06.10 16:08수정 2011.06.1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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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인권상 상패 제7회 박종철 인권상 수상자 김진숙 동지에게 11일 전달될 예정이다.
박종철 인권상 상패제7회 박종철 인권상 수상자 김진숙 동지에게 11일 전달될 예정이다.이명옥
6월 8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2층에서 의미 있는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제7회 박종철인권상 시상식이 열린 거지요. 선배와 한 약속과 신의를 지키다 물고문으로 죽어간 박종철 열사의 인권정신을 기리는 인권상 일곱 번째 주인공은 한진중공업 85호 타워크레인 위에서 희망과 부활의 싹을 틔우고 있는 김진숙(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입니다. 

박종철인권상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김진숙씨는 마음이 복잡하다고 했다지요. 수상 소감에서 한 시대를 살며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린 인연이 산 자인 자신에게 부채감으로 남아 생의 방향을 틀어버린 인연의 줄에 대해 말하더군요.

김진숙. 그녀를 뭐라 표현해야 적당할까요. 일당이 더 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용접을 배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용접공. <전태일평전>을 통해 노동자 본연의 정체성을 찾은 노동자. 1986년 7월 노동조합 대의원 활동을 하다 '명예실추, 상사명령 불복종' 등의 이유로 해고된 후 25년간 해고노동자로 살아온 최장수 해고노동자. 거기에 이제 최장수 고공농성 투쟁의 기록을 덧붙여야 할 것 같군요.

나는 '전사' 김진숙이 아닌 '인간' 김진숙이 지닌 따뜻한 삶의 방식과 뜨거운 가슴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김진숙의 강인함은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소금꽃나무>과 트위터에서 보여지는 따스함. 셈하지 않고 동지를 위해 자기 생을 아낌없이 던지는 마음은 모두 사람을 사랑한 데서 싹이 트고 자라났을 테니까요.

동지들과의 약속을 위해 35미터 고공크레인에 올라 '구조조정 중단'과 '근로조건 개선'을  외치며 129일을 투쟁하다 목숨을 끊은 김주익 열사가 올랐던 85호 타워크레인. 그 85호 타워크레인에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올라간 김진숙씨는 이런 편지를 남겼지요.

대리 수상한 한진 노동자 고공 농성중인 김진숙 동지를 대신해 한진중공업 노동자가 대리 수상을 하고 있다
대리 수상한 한진 노동자고공 농성중인 김진숙 동지를 대신해 한진중공업 노동자가 대리 수상을 하고 있다이명옥

조합원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85호 크레인은 생각하면 무겁고, 깊은 상처로 다가온다. 상처를 극복해야 한다.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죽은 공간이 아니라 승리와 부활의 공간이다.(중략)

8년 동안(2003년 이후) 한 번도 주익(고 김주익 지회장)씨 이름을 편하게 불러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김주익'이라고 발음하는 순간 대화는 거기서 끊어지곤 했습니다.


저는 지금 주익씨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하루를 보내고, 주익씨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잠을 자고, 주익씨가 살아생전 나지막히 봤던 세상의 모습들을 봅니다. 그리고 저는 주익씨가 못해 봤던 일, 너무나 하고 싶었으나 끝내 못했던, 내 발로 크레인을 내려가는 일을 꼭 할 겁니다.

그래서 이 85호 크레인이 더 이상 죽음이 아니라, 더 이상 눈물이 아니라, 더 이상 한과 애끓는 슬픔이 아니라 승리와 부활이 되도록 제가 가진 힘을 다하겠습니다."
- 타워크레인에 오르며 김진숙 동지가 남긴 편지 가운데


5월 16일 김진숙 동지가 트위터에 올린 치커리 "크레인 위에서 첫 수확한 치커리입니다. 귀엽죠^^ 모두들 치커리 같은 나날이시길~!"
5월 16일 김진숙 동지가 트위터에 올린 치커리"크레인 위에서 첫 수확한 치커리입니다. 귀엽죠^^ 모두들 치커리 같은 나날이시길~!"김진숙
'주익씨가 못해 봤던 일, 너무나 하고 싶었으나 끝내 못했던, 내 발로 크레인을 내려가는 일을 꼭 할 것'이라 다짐하며 텃밭을 만들어 씨를 뿌리고 가꾸는 사람.

85호 타워크레인이 더 이상 죽은 자의 공간이 아닌 산 자의 공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바람과 햇살 한줌으로 치커리를 키우고 수확해 트위터에 사진을 올리고 치커리 같은 날이 되라고 상쾌한 덕담을 남기는 사람.

그녀가 편지의 말미에 쓴 것처럼 '85호 크레인이 더 이상 죽음이 아니라, 더 이상 눈물이 아니라, 더 이상 한과 애끓는 슬픔이 아니라 승리와 부활'이 되어야만 합니다.

김진숙 동지는 6월 6일에 박종철인권상 수상 소감을 이렇게 적어보냈습니다.

시퍼런 청년을 열사로 부르는 일이 나는 아직도 낯설다. '인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박종철이 대공분실에서 죽어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건 내가 거기 다녀온 지 몇 달 후였다. 그의 죽음을 보면서 내가 다녀온 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이었는지  내가 겪은 일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었는지 비로소 실감났다. 그는 죽고, 그와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살아서 크레인에 오른 지 152일째(6월 6일 현재).

선배의 이름을 불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시대. 죽음으로 역사가 된 청년의 이름을 우리는 6월 항쟁의 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불렀다. 그 부름은 7, 8, 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고 전국 곳곳에서 하룻저녁에도 수백 개의 노동조합이 세워지고 어용노조가 민주노조로 바뀌었다.

불량냈다고 따귀 맞고 5분 지각했다고 하루 일당이 까이던, 손가락이 잘리고 다리가 부러져도, 심지어 사람이 죽어도 산재가 뭔지도 몰랐던 공순이 공돌이들이 노동자라는 본명을 쟁취했던 개명천지. 이 크레인에서 보는 바로 맞은편에 그의 집이 있었다. 선배와의 약속을 목숨처럼 여겼던 한 청년이 죽엇고,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이 크레인에선 조합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끼들과의 약속을 어겼던 한 노동자가 죽었다.

그리고 그 죽음들이 고스란히 빚이 된 내가 다시 크레인에 올라 그의 집이 있던 자리를 내려다본다. 역사는 아직도 이렇게 가혹하다. 인연이 빚이 되고 죄가 되는 세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기 몫의 밭을 갈 뿐이다. 그렇게 돌을 골라내고 바위를 들어내며 황무지를 갈다보면 꽃도 되고 감자도 열리고 고구마도 캘 날이 오려니 하는 믿음으로.

25년 전 한 청년이 쓰고자 했던 민주주의를 온 몸으로 써내려가는 우리 조합원들에게 이 상이 위로가 되길 바라며 곳곳에서 싸우는 노동자, 청년학생들, 민중들의 하루하루가 박종철이 살고 싶었던 세상으로 이어지는 나날임을 되새기고자 한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2011년 6월 6일
크레인고공농성 152일차 김진숙 올림

희망 사디리를 만드는 사람들 박종철 열사 아버님 박정기님, 용산의 전재숙 어머니. 이햔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저들이 바로 희망사다리를 함께 만들어가는 힘이다.
희망 사디리를 만드는 사람들박종철 열사 아버님 박정기님, 용산의 전재숙 어머니. 이햔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저들이 바로 희망사다리를 함께 만들어가는 힘이다.이명옥

존재만으로 부끄러움을 일깨우는 이가 있나요? 내게는 김진숙씨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25년 전 한 청년이 쓰고자 했던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써 내려가는 우리 조합원들에게 이 상이 위로가 되길 바라며, 곳곳에서 싸우는 노동자, 청년학생들, 민중들의 하루하루가 박종철이 살고 싶었던 세상으로 이어지는 나날임을 되새기고자 한다"는  김. 진. 숙.

35미터 고공에서 묵묵히 자기 앞의 생의 밭을 갈며 언젠가 함께 가꾸고 거둔 감자와 고구마를 한 솥 가득 쪄서 동지들과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나눠먹는, 그런 소박한 소망을 지닌 김진숙 동지. 그이의 무사 귀환을 돕는 일은 우리 스스로 그녀가 딛고 내려올 희망사다리의 계단이 되는 일이 아닐까요?

11일, 나는 김진숙 동지가 두 발 딛고 내려올 희망사다리 한 계단 만들러 '희망버스'를 탑니다. 사람만이 희망이고 연대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희망끈이 될 수 있으니까요. 당신도 희망사다리 만들기의 기꺼운 동지가 돼 주시겠습니까?

마주잡으면 힘이 됩니다 희망의 연대 함께 만들어 가요
마주잡으면 힘이 됩니다희망의 연대 함께 만들어 가요이명옥

덧붙이는 글 | * '희망버스'는 11~12일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농성을 응원하는 시민들이 부산 한진중공업 85호 타워크레인으로 모이는 행사로, 전국에서 1000여 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희망버스'는 11~12일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농성을 응원하는 시민들이 부산 한진중공업 85호 타워크레인으로 모이는 행사로, 전국에서 1000여 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희망버스(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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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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