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조건없는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국민촛불대회'에서 대학생, 시민, 야당인사들이 촛불과 휴대폰 불빛을 밝히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우성
지금까지 <세금혁명> 기획을 통해 대한민국의 조세 및 재정지출 구조의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나라 살림살이의 근본적인 틀을 바꾸는 세금혁명을 통해 나라의 틀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최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반값 등록금' 문제를 단초로 삼아보자.
사실 국내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아서 실상이 잘 안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국의 대학생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비싼 대학 등록금을 내고 있다. 한국은 사립대 비중이 78%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거의 대다수 OECD 국가들은 국공립대학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구조인데 한국은 정반대다. 사립대 중심의 대학 구조를 가진 것으로 오해되는 미국도 국공립대 비중이 67%에 이른다.
이처럼 취약한 국공립대 인프라는 OECD 국가들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등교육 재정지출 비중이 두 번째로 낮은 현실과도 맞물려 있다. 또한 한국의 대학 등록금이 지금처럼 '미친 등록금'이 된 것도 국내의 국공립대학 인프라가 취약한 가운데 주요 사립대들을 중심으로 학벌 서열구조에 안주해 등록금 장사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을 생각하면 대학 등록금 인상 폭을 줄이는 선에서 지금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제 한국사회는 조금 더 과감한 변화를 주장할 때가 됐다. 우리가 4대강 사업과 같은 엉뚱한 사업에 돈 쓰지 않고 제대로 조세 재정 구조개혁을 하면 고교까지 의무교육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국공립대의 대학 등록금을 무상으로 할 수 있다. 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학 등록금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학벌구조 타파와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지역간 균형발전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국공립대학 등록금을 무상으로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보자.
국공립대 무상등록금은 등록금 안정화 장치... 학벌구조 폐해도 희석돼우선, 사립대를 중심으로 매년 치솟는 대학 등록금을 잡기 위해서 대학교육에 대한 재정지원을 국공립대학 위주로 현재의 GDP 대비 0.7% 수준에서 OECD 평균인 1.3% 수준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지방 국공립대의 등록금을 수도권 사립대의 1/3 수준 이하로 떨어뜨리거나 무상으로 하고 동시에 양질의 교수 확충 등을 통해 교육 서비스의 질을 높여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비용(등록금) 대비 편익(교육 서비스의 질) 측면에서 지방 국공립대가 좋아진다면 점진적으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국공립대로 몰리게 되고, 사립대의 위상은 점차로 약해질 것이다.
5~10년에 걸쳐 이런 식으로 꾸준히 지원을 하면 대학서열 구조와 경쟁 구도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립대가 마구잡이로 등록금을 올리는 일은 점차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즉, 국공립대 인프라 확충 및 질적 개선이라는 정부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 국공립대가 '가격(등록금) 안정화 장치(price stabilizer)'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방 국공립대의 수준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수도권으로 몰리던 지역의 젊은이들이 지방에 남게 돼 지역발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 지방 대도시에서조차 최소한의 인재마저도 부족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지식정보화 시대, 창의경제 시대에는 지역경제가 우수 인재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가지 않으면 안 된다. 수도권으로 몰리는 지역의 젊은이들이 대학 졸업 후 해당 지역에 남아 산학연 협력을 토대로 지식벤처를 활발히 창업할 수 있다. 한국 젊은이들의 뛰어난 두뇌와 역량을 생각할 때 여건만 갖춰진다면 미국의 실리콘밸리 같은 첨단산업 클러스터가 지방에 만들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 경우 수도권에서는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부족하고 지방은 두뇌 유출과 인구 감소로 산업기반이 무너지는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을 극복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지역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배출돼 정착하기 시작하면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고 활용하기 위해 기업들도 자연스럽게 해당 지역으로 이동해가게 된다. 노무현 정부처럼 각종 개발사업마다 수천억, 수조원의 재정을 쓰지 않고도 활발한 지식산업생태계를 조성해 얼마든지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 균형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자리 잡은 학벌의 벽을 무너뜨릴 단초를 마련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학벌구조'의 정점인 서울대라는 이름 대신 예를 들어, '한국 1대학' '한국 2대학' '한국 3대학' 식으로 국공립대의 명칭과 학제를 전반적으로 통합하고 다양한 인센티브를 통해 교수들의 순환 근무 등을 활성화한다면 학벌구조의 폐해를 희석화하는 한편 지방 국공립대학에 대한 사회적 선호도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국공립대로 인재 몰려그 같은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일본의 경우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국공립대학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사립대의 비중이 한국과 유사한 일본의 경우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한 국공립대 인프라를 갖고 있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도쿄대뿐만 아니라 교토대, 오사카대, 나고야대, 히토쯔바시대, 도쿄공대, 도호쿠대, 규슈대 등이 모두 국공립대학으로 일본의 대표적 사립대인 와세다대학이나 게이오대학보다 학문적으로 더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이들 대학 가운데 교토대, 오사카대, 나고야대, 도호쿠대, 규슈대, 홋카이도대는 모두 일본의 대표적 지역 대학으로서 지역 발전에 필요한 우수한 젊은 인재들을 길러내고 있다.
미국 또한 '아이비리그'로 알려진 명문 사립대학들이 매우 높은 학문적 성과를 자랑하지만, 전체 대학의 67% 가량이 주립대학 등 국공립 형태로 운영되며 대학 등록금도 평균적으로 사립대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주별로 편차는 있지만 각 주의 대표적 주립대학들의 학문 및 교육 서비스 수준도 매우 높아 지역의 우수 인재들을 유치하고 있다. 예를 들어, UC버클리나 UCLA 등으로 대표되는 캘리포니아주립대학들이나 텍사스주립대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아이비리그'에 진학할 실력을 갖춘 상당수 젊은이들이 각 주의 대표적인 주립대에 진학해 졸업 후 지역의 기업이나 주정부 등에 취직하고 있다. 물론 미국에서도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적어도 한국의 수도권이 젊은 인재들을 싹쓸이하는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이렇게 국공립 대학의 등록금을 낮추고 교육서비스의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사전에 많은 연구와 준비가 필요하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고교 졸업자에 대한 다양한 진로기회 제공 및 대학의 구조조정이다. 우선, 대학 진학률이 가파르게 상승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것은 한국의 높은 교육열이 작용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지 않을 경우 취업과 소득 면에서 받게 되는 불이익이 커지는데다 독일이나 핀란드, 스위스 등에서 활성화된 산업과 연계된 고교 수준의 직업교육이 활성화돼 있지 않은 탓도 크다.
따라서 고교 수준에서 전문직업교육을 활성화해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도 괜찮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이 문제는 교육정책상의 개선 방안도 필요하지만 기업들이 채용 기준을 현실화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기업들이 무턱대고 업무 성격이나 난이도에 관계없이 대졸자만을 채용할 것이 아니라 학력에 상관없이 업무에 필요한 능력을 갖춘 인력을 채용하는 식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
한편 1999년 이후 국내 대학의 재학률(재학생수를 전체 재적학생 수로 나눈 비율)은 점진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전문대의 경우에도 2000년대 초 재학률이 가파르게 떨어졌다가 다시 회복하는 듯했으나 2007년 이후로는 다시 떨어지고 있다. 대학 재학률이 공장의 가동률에 비견할 수 있다고 볼 때 대학의 구조조정 압력이 계속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미 대학 진학자 수가 더 이상 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가파르게 줄어들게 돼 있다.
이미 부실한 상당수 사립대들이 전국 곳곳에 난립해 있어 대학의 구조조정 압력은 갈수록 거세질 것으로 봐야 한다. 실제로 이 같은 구조조정 압력에 따라 대학 수는 이미 2005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다. 이런 점에서도 국공립대의 경우 통폐합을 추진하고 학사운영이 부실하거나 비리가 만연한 사학들의 경우 구조조정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이렇게 고교 졸업자들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도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 사회적 수요 이상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수를 줄이는 한편 사립대를 중심으로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구조조정을 거친 뒤 국공립 대학들을 중심으로 재정 지원을 대폭 확대하면 고등교육 재원의 효율성 또한 크게 높일 수 있다.
고교와 국공립대 무상 등록금, 10조 원이면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