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빚어놓은 백사실계곡의 절경들. 자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자리에 있지만 절대 자신을 뽐내지 않는 겸손함으로 숨막히는 경관을 자아냅니다.
손민우
배달음식은 약과...계곡에서 고기까지 구워 먹고
백사실을 찾을 때마다 드는 기분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간직한 곳을 방문하는 일이란 벅찬 일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백사실은 그 아름다움 아래로 슬픈 상처를 숨기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서울환경연합이 5월 한 달간 진행한 백사실 일일 모니터링 보고서를 종합해보면 한 달간 방문객이 약 5387명에 달합니다. 평일에는 일평균 93명이, 휴일에는 일평균 310명이 찾습니다. 우천 시를 제외하면 방문객 집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휴일 평균 400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백사실을 찾습니다. 텔레비전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된 뒤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미인박명이라는 속담이 사람뿐만 아닌, 자연환경에도 적용되는 희한한 경우입니다. 몇몇 방문객들은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써 하천 진입이 금지된 백사실계곡에 무단으로 진입하기도 합니다. "무단진입 시 2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는 경고문도 일부 방문객들에겐 이해하지 못할 상형문자에 불과합니다. 특히 어린 도롱뇽과 올챙이, 버들치 등이 자라나기에 더욱 조심해야 할 시기에 하천 진입을 하는 것이니 더욱 위태로운 행동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약과에 불과합니다. 하천변에서 치킨을 먹거나, 잔칫상에 가까운 음식을 배달시켜놓고 술을 마시는 방문객도 가끔 보입니다. 문화유적 36호로 지정된 별서 터에서는 고기를 구워 드시는 분들까지 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생태경관보존지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멀쩡히 서 있고, 위와 같은 행위를 금지하는 문구가 버젓이 써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모험들은 매주 주말이면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백사실을 잠깐 찾는 방문객들에겐 잠깐의 즐거움이 계곡과 산에서 서식하는 생물들에게는 해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계곡의 모든 생물들은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인간의 이기심 덕분일까요? 수많은 방문객에 의해 하천 생태계가 훼손당하고, 산길이 깎여 토양이 유실되고, 무심코 버려지는 쓰레기에 물이 오염되어도, 몇몇 방문객들은 무심한 행동들을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지구의 탄생역사를 24시간으로 단축시키자면, 인간이 나타난 시간은 단 30초도 채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인류가 자연을 전적으로 지배의 대상으로 본 시각은 19세기 말엽에나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지구의 생태계는 급속도로 파괴되었습니다.
수백 종의 동물들이 멸종했거나 멸종위기에 처해 있으며 모든 생명의 터전이던 대지는 차가운 아스팔트로 뒤덮였습니다. 산은 폭파되어 바다를 메우고, 그 자리에 살던 수많은 생명들은 터전을 잃고 신음합니다. 더구나 지금의 인류는 '기후변화'라는 보이지 않는 자연의 거대한 힘에 휩쓸릴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자그마한 생명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오만의 티끌이 부메랑 되어 인간의 눈앞에 돌아온 '원죄의 태산'입니다.
생물들의 서식처에 우리는 잠시 놀러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