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리처드와 필자(왼쪽)가 DMZ기행중 도라산역 철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수정
- 저도 그 부분에 동의합니다. 저도 두 아이의 엄마이고 대학 졸업 이후 쉼 없이 일을 해온 워킹 맘으로서 일을 통해 얻는 자존감을 잘 알고 있죠. 그러나 일과 '부모 되기'를 균형있게 잘해나가는 것에 대한 지지가 때로는 모든 여성들에게 "슈퍼우먼이 되라"고 주문을 걸고 있는 것 같아 조심스럽기도 합니다."엄마가 된 여성들은 사회가 기대하는 정형화된 '좋은 엄마'라는 이미지에 자신을 맞추려고 애씁니다. "내 소중한 아이를 위해서 저 유모차(100만 원짜리)를 가져야 하는데…" "우리 애가 훌륭하게 자라기 위해선 꼭 저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 애가 이번 여름방학에 저 캠프에 못 간다면 내가 아이를 잘 못 키우는 거지" 라는 식으로 말이죠. 사회가 정해놓은 선호도에 맞추려 하지 말고 스스로 부모로서 자기 독립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니까 '나만의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라'는 말씀이시군요. "바로 그거지요! 제가 미국 내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녀를 키우는 데 있어 획일적이다 싶을 정도로 정해진 기준이 있어서 부모라면 그것을 모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따르지 못하면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자신의 기준보다 사회의 기준에 모든 것을 맞추는 순간 자녀 키우기는 기쁨이 아니고 짐이 되기도 하지요."
- 여성의 월급이 아이를 사설 양육기관에 맡기거나 아이 보는 사람을 고용하는 비용보다 더 적어서 직장을 포기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남녀 간의 급여 차이라는 문제는 더 넓은 영역의 논의라고 봅니다. 아직도 남성의 급여가 여성의 급여보다 평균적으로 높고, 은퇴 시에 받는 퇴직금을 비교해 봐도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적지요. 그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여성들이 출산이나 육아휴직을 가는 동안에 퇴직금이 쌓이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요. 여성이 출산휴가를 가는 동안에도 사회보장 급여를 받을 수 있다면 남녀 간의 급여 차이도 줄어들 수 있고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국도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여 국가가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왜 여성들의 자녀 갖기를 도울 수 있는 육아휴직이나 '휴직 중 사회보장 혜택'과 같은 재정적 지원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도 가족휴가 제도라는 게 있는데 12주까지 쓸 수 있지만 무급입니다. 심지어는 출산 휴가도 대기업을 제외하면 무급인 현실이죠."
한국, 스웨덴 모델 따르기 미국보다 쉬워 - 미국도 일과 삶의 균형을 지원하는 기반이 약한 줄 알고 있었지만 심각하네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니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북유럽 나라들이 당신이 바라는 모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그런가요? "'무엇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가'라는 문제에서 본다면 그렇습니다. 스웨덴은 자살률이 낮고 부부가 아이를 함께 키우는 등 삶의 질의 기준을 정할 때 좋은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스웨덴 모델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이유는 첫째 미국은 스웨덴보다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고 둘째로 스웨덴처럼 동일종족이 아니라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크기와 종족의 동일성 그리고 민주주의의 나이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이 스웨덴처럼 가는 데 훨씬 쉬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질서에 의지한 민주주의를 시작한 지 300년이 된 미국은 이미 체계화 되어버려서 뭐 하나라도 바꾸려면 엄청나게 진통이 따르지요.
스웨덴은 법과 제도를 바꾸기도 하고 다른 모델로부터 배우기도 했지요. 그들은 회사 자체에서 육아 휴직을 강제하기도 했어요. 그냥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아빠들이 꼭 육아휴직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기회를 상실합니다!" 라고 하는 강제조항이었지요. 한국 한 IT회사의 중역에게서 자녀를 키우는 여성 직원들을 위한 '스마트 플레이스Smart Place'를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가 아프거나 사정이 있을 때 직장에 나오지 않아도 집 근처에 있는 스마트 플레이스로 출근해서 일처리를 하고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도 있는 '가족친화적인 정책'이라는 거지요.
저는 그들에게 "당신들의 그런 경험을 다른 IT 회사들과 공유하십시오. 동종 회사의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정부의 강요에 의해서 실시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있으니까요" 라고 말해줬지요."
- 남편과 자녀 양육을 어떻게 함께 하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피터와 저는 결혼을 하진 않았지만 함께 살며 두 아이를 낳았죠. 운 좋게도 우리 커플의 자녀 양육은 공정하게 평형을 유지하고 있지요. 피터와 저는 둘 다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기 때문에 아침에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게 가능합니다. 오후에 우리 둘 다 바쁠 때는 베이비시터가 와서 아이들을 데려옵니다. 최근에 제 일이 덜 유연해져서 피터에게 일주일에 서너 번씩 아이들을 맡도록 했지요.
양육을 부부가 함께 한다는 것은 저에게는 '양육 책임의 수용을 거부하기'와 '직접적으로 도움을 구하기' 사이에 하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일을 한다는 것은 전투의 반을 차지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제가 가장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정생활에 있어서 제가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반납일이 언제인지, 세탁용 세제가 떨어졌으니 사야한다는 것, 베이비시터가 언제 오고 갈 것인지 확인하는 일, 애들이 배고파서 정신없어지기 전에 저녁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 등 대부분이 모두 저에게 주어져 있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양육의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의 공유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노력중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저는 종종 애들이 울어도 가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가도록 말이죠. 그런 노력이 언제나 엄마만 그들을 돌봐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했지요.
명절날 저녁에도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아이들 아빠가 애들 저녁 먹이는 것을 담당하도록 해서 엄마가 먹이는 것처럼 아빠도 쉽게 먹일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거죠. 저에게 부모역할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피터에게도 부모역할이 자연스러운 것은 정말 행운처럼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저는 피터가 예외적 인간이라서 그렇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는 기꺼이 그것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죠. 그의 예처럼 양육이 모든 다른 아버지들에게도 가능하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모성 책임' 연장선상의 할머니 육아는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