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주민투표가 서울시에 청구된 가운데, 16일 오후 서울시청 서소문 청사 대회실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민투표 기자설명회를 열고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에서 패할 경우 어떤 정치적 책임을 질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겠다"고 답변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뒤편으로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성사시키기 위해 서울 시민들로부터 80만1263명의 서명을 받은 서명지가 쌓여있다.
유성호
무상급식을 둘러싼 주민투표가 현실화됐다. 그동안 진보진영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주민참여' 제도의 핵심이었던 주민발의형 주민투표가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으로, 그것도 보수단체의 주도하에 수도 서울에서 진행되게 된 것이다.
주민투표는 2004년 7월부터 실시됐지만, 그동안 주민보다 중앙정부와 자치단체장만이 활용할 수 있는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 이유로는 단체장(의회 동의 필요)과 중앙정부는 주민투표를 매우 쉽게 요구할 수 있는데 반해, 주민들은 지나친 청구요건(유권자의 1/5~1/20 이상의 서명) 때문에 거의 발의가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됐던 것이다.
실제로 주민투표법 도입 이후 실시된 주민투표는 2005년 7월 27일 제주도에서 실시된 행정계층 개편을 둘러싼 주민투표, 2005년 9월 29일 청주시·청원군 통합에 관한 주민투표, 2005년 11월 2일 방폐장 유치와 관련한 일련의 주민투표 등 모두 중앙정부가 발의한 것이었다.
다만, 주민투표법이 시행되기 전인 2004년 2월 14일, 방폐장 유치를 둘러싼 내홍을 앓았던 부안군에서 주민들의 주도로 자체적인 주민투표가 진행되었을 뿐이다. 전북 부안에서의 주민투표는 주민투표법이 만들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러나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라는 보수단체가 주도한 이번 주민투표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강력한 의지와 입김이 작용했다 하더라도 청구요건을 훨씬 넘긴 서명을 받아 냈다. 836만83명의 유권자 중 80만1263명의 서명부를 제출한 것이다. 이는 주민투표 발의요건인 유권자 5%(41만8005명)의 두 배에 가까운 숫자다.
물론 아직까지 무효서명에 대한 검증작업이 남아 있지만, 청구권자 서명 규모로 보았을 때 쉽게 통과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렇게 된다면 7월 말에서 8월 초에 본격적인 투표운동이 시작되어 8월 중·하순에 투표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주민투표 요건을 완화해 실질적인 주민발의형 주민투표가 이뤄지게 하자던 진보·개혁 진영으로서는 발의 자체가 무산될 것이라는 애초의 예측이 무색해 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어쨌든, 이제 문제는 전면 무상급식 찬성 진영이 이번 주민투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로 넘어 가고 있다. 크게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이 더 좋으냐보다 어떤 방법으로 입장 통일을 이뤄낼 수 있느냐에 있다.
[투표 보이콧] 효과적이지만 딜레마에 부딪혀첫 번째 방법은 투표를 보이콧하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4월 재보선 투표율이 40%를 넘겼고,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중구청장 선거도 31%대를 기록했다"며 "선거운동 기간에 충분한 토론이 이뤄지면 이슈가 될 것이기 때문에 3분의 1을 넘기면 넘겼지 미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정치적 계산이 깔린 발언이다.
실상 찬반양론이 갈라지는 의제를 둘러싼 평일 투표에서 한쪽이 보이콧을 선언하면 1/3의 투표율을 넘어서기란 매우 어렵다. 지난 2009년 8월,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던 제주도지사 주민소환 투표에서도 투표일 직전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8%가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밝혔지만('아마도 투표참여' 19.7%, '투표불참' 32.4%), 관 주도의 투표 보이콧 운동으로 인해 실제 투표율은 11%에 불과했다(주민소환 최저 투표율은 주민투표와 같은 1/3이다).
2007년 12월, 사상 첫 주민소환 대상이었던 하남시장을 비롯한 시의원 3명의 경우도 승패를 갈랐던 것은 투표율이었다. 당시 유신목·임문택 시의원은 소환투표 투표율이 37.7%를 기록해 역사상 첫 주민소환 대상자라는 불명예를 안았지만, 핵심 소환 대상자였던 김황식 전 시장(31.1%)을 비롯해 다른 한 명의 시의원은 투표율 미달로 소환이 무산된 것이다.
서울 유권자 수를 고려했을 때, 1/3이 넘는 사람이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278만3900여 명이 투표해야 한다. 휴가철에다 평일 투표가 이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전면 무상급식 찬성 진영의 대대적인 투표 보이콧 운동을 극복하고 투표를 성사시키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투표율 문제는 없다고 한 오세훈 시장의 발언은 전면 무상급식 찬성진영의 투표를 유도해, 최저 투표율을 넘어서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투표 보이콧은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킨다. 대부분의 주민참여 제도들이 실질적으로 무력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향후 주민들의 능동적 발의로 주민소환이나 주민투표가 발의될 경우, 반대 진영에서 투표 보이콧이라는 효과적인 무기를 사용하게 된다면 주민의사를 개진할 수 있는 통로가 아예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
또한, 그동안 시민사회 일각에서 '강제투표제'까지 제안되었듯이, 매 선거마다 진행된 '투표독려운동'은 진보·개혁 진영의 일관된 프레임이었다. "정치권이 썩었다고 외면하지 말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번 주민투표 보이콧 전술과는 논리적으로 일치되기 어렵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항상 좋은, 또는 옳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내용과 발의 주체에 따라 투표 행위 자체를 거부하는 전술 역시 적지 않은 반론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민주주의가 특정 가치를 지향하는 이들만의 독점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전면급식 찬성 운동] 정당하지만 위험성 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