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있어요?" 나한테 물은 거 맞니?

매직데이 찾아온 여중생, 난데없는 요구에 당황했지만...

등록 2011.06.22 14:43수정 2011.06.2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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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교회 백일장에 참가한 여중생들

교회 백일장에 참가한 여중생들 ⓒ 김학용


지난 주일, 교회 입구에 중학교 2학년 여학생 유이(가명)가 보인다. 지난해 1년 동안 찬양지도를 했었는데, 몇 달 만에 보게 되니 너무 반갑다.


"야~! 유이야! 너 오랜만이다, 잘 지내지? 얼굴도 많이 예뻐졌네! 그런데, 지금 예배 시작한 지가 30분도 넘었을 텐데 여기서 뭐해?"
"호호호, 그냥 놀구 있어요, 예배가 따분하고 재미도 없고, 또…."
"그래? 그런데 옆에 같이 있는 친구는 누구야? 처음 보는 친구 같은데?"
"네, 현주(가명)라고 하는데요. 다른 교회 다니는데 오늘 우리 집에 나를 깨우러 왔다가 한번 놀러왔어요."
"그래, 그래도 교회까지 왔으니 놀다가(?) 예배에 얼굴이나 비치고 가라, 알았지?"
"네~"

그런데, 돌아서는 나를 아이들이 따라 나선다.

"뭐, 할 말 있니?"
"저기요, 선생님…."
"응…."
"야, 네가 말해…."
"뭔데 그래?"
"저기요 OOO 있어요?"
"응??? 뭐라고? 잘 못 들었는데…."
"아, 생리대요!"

a  단편 영화 <생리해서 좋은 날>의 한 장면

단편 영화 <생리해서 좋은 날>의 한 장면 ⓒ 생리해서 좋은 날


아,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닐까? 털썩! 재차 확인해도 생리대가 맞댄다. 난생 처음 보는 다른 교회 남자선생님에게 "혹시 생리대 있어요?"라고 물어보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나에게 닥친 것이다. 며칠 전 아내의 "미안한데, 생리대 좀 사다 줘"라는 반말인지 존댓말인지도 모를 명령 이후 최대의 황당 사건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변한다. 애써 표정을 감추며 태연한척 하느라 힘들었다. 이 난관을 어떻게 수습한단 말인가? 대답은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왜 이럴 때 써먹을 멋진 멘트도 하나 준비 못했을까?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응, 자... 자... 잠깐만 기다려봐~"

바로 앞 교회사무실로 달려간 나는 친하게 지내는 사무 간사에게 잽싸게 털어놨다.


"저기, OO씨…, 혹시 생리대 있어?"
"네????"
"아, 이상하게 쳐다보지 말고… 있어, 없어?"
"있긴 있는데…"
"빨리 내놔! 이유는 조금 있다가 알려줄 테니까…"

그랬다, 아이들에게는 생리를 한다는 것이 창피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만 상대가 처음 보는 남자(?)라는 것이 약간 마음에 걸렸을 뿐이었다. 오히려 생리대도 없이 외출하여 불안하고 초초했을 아이들을 생각해보니, 표정을 감추느라 급급한 내가 더 어리석고 한심하지는 않았는지….

여성이라면 때가 되면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아직도 비밀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고 순간적으로 아이들을 당돌하다고 생각한 내가 아이들보다 한참 모자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교회 사무실에도 단단히 부탁했다. 생리대 여유분은 항상 챙겨두라고….

'그런데, 얘들아! 초등학생이면 몰라도 중학생이니까 매직데이를 항상 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해서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날이 와서 힘들어도 그것은 여자의 특권이란다. 알았지?'

a  교육용 성교육 만화 중 생리주기

교육용 성교육 만화 중 생리주기 ⓒ user.chollian.net/~grey69

#생리 #생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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