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대형병원의 환자 진료 대기 모습.
최은경
알아보니, 서울의 빅5병원 중 삼성서울병원을 제외한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에서는 환자 편의를 고려해 개별 진료과에서 간단한 검사결과 통보를 오래 전부터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었다. 이때 진료비를 부과함은 당연.
이들 대학병원 외래원무과에서는 "의사에게서 검사 결과를 들으려면 원칙적으로 환자가 병원을 방문해 외래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환자 편의를 위해 담당 의사가 전화로 검사결과를 알려주는 것이니까 진찰료와 선택진료비 등을 모두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현행법상 전화 검사결과 통보와 전화진료에 대한 의료수가가 책정되어 있지 않아서 환자에게서 비용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전화진료 그 자체도 불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현행 의료법> 제34조(원격의료) ①의료인(의료업에 종사하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만 해당한다)은 제33조제1항에도 불구하고 컴퓨터·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원격의료를 할 수 있다."전화진료는 의료법 제34조 1항의 원격진료에 해당하기 때문에 현행법상 의사와 의사간에만 허용되고 의사와 환자간에는 금지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법 규정을 어긴 병원은 어떤 처벌을 받을까? 안 받는다. 의료법상 의사와 환자간의 원격진료가 금지되어 있지만 이를 위반했다고 행정제재를 가하거나 형사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전화진료에 대한 의료수가가 없기 때문에 전화진료 비용만 받지 않는다면 전화진료 그 자체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문제는 어떤 기준도 없이 전화진료나 전화 검사결과 통보에 대해 진료비를 받고 있는 병의원들이 늘고 있는 것.
진료비 내역을 따져보면 부당한 점은 또 발견된다. 병원에서 청구하는 금액은 진찰료(기본진찰료+외래관리료)와 선택진료비로 구성된다. 검사결과를 전화로 통보해 주는 경우, 환자는 진찰을 받지도 않았고, 외래방문도 하지 않았는데 모든 비용이 청구된다.
이에 대해 암시민연대 최성철 사무국장은 "단순한 검사결과를 전화로 통보하면서 외래진료와 동일한 비용을 받고, 진찰을 전제로 부과하는 선택진료비까지 포함시켜 비용을 청구하는 관행은 분명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심은혜 사무관은 병의원의 전화진료 실태를 확인한 후 관련 부서와 검토를 해보겠다고 했다.
"현행법상 의사가 환자에게 검사결과를 통보해 주고 진찰료, 선택진료비 등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전화로 검사결과를 알려주는 것은 되지만 외래진료를 대신하는 것은 안 됩니다. 전화 검사결과 통보의 형태가 병원마다 다를 수 있고 내용도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정식으로 질의하시면 보험 등 관련 부서와 검토해 보겠습니다."효율적이긴 하지만, 100% 비용 청구는 부당 물론, 각종 의료검사 후 결과를 전화로 통보받는 경우 환자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병원 방문을 위해 직장인은 월차, 개인사업자는 휴업, 학생은 결석을 하지 않아도 된다. 둘째, 지방에 있는 환자들은 KTX, 고속버스, 택시 등의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다. 셋째, 교통수단 이용, 병원 진료대기 등으로 인한 환자의 육체적 피로를 줄일 수 있다.
예전에는 CT, MRI, 초음파검사 등은 암 진단과 같이 특별한 경우에만 실시했었고 그 검사결과도 다음 외래진료 때 담당 의사가 직접 알려주었다. 그러다가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전국민 대상으로 암조기검진, 생애전환기건강진단 등 각종 무료건강검진을 시행하면서 각종 의료검사가 일상화 되었다.
이제는 심각한 질병이나 암 증상이 없어도 혈액검사나 소변검사 등에서 조금만 이상증후가 나와도 CT, MRI, PET, 초음파검사 등 각종 의료검사를 실시한다. 물론 검사결과는 대부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온다.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박은철 교수는 '국가 암 검진사업의 비용과 효과 보고서(2011년 5월)'에서 유방암의 경우 암으로 의심된 뒤 최종 확진검사에서 암으로 판정되는 비율이 0.6%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즉, 1000명의 유방암 의심환자가 있다면 이 중에서 각종 의료검사를 통해 실제 유방암 확진을 받는 환자는 6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S대학병원 산부인과를 다니고 있는 예비엄마 양아무개(29)씨 역시 이런 불편을 호소한다.
"17주 기형아검사를 했는데요. 2주 후에 병원에 다시 오라고 하네요. 대학병원이라서 그런지 대기시간이 기본 1시간이에요.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자꾸 휴가 쓰는 것도 눈치 보이고요. 오면 별거 하는 것도 없는데 병원비만 비싸고 초음파검사 한번 받으려면 2시간씩 또 기다려야 하구요. 일반 산부인과 의원은 전화로 알려주는 것 같은데요. 대학병원에서는 또 2주 뒤에 오라고 하니까 짜증나 죽겠어요."이렇듯 상당수의 환자들은 각종 의료검사 결과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음에도 '특별한 이상이 없습니다'라는 한 마디를 의사에게 듣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이러한 번거로움 때문에 간단한 검사결과는 전화로 통보해 달라고 병원에 요청하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의원들 역시 "검사 결과 이상이 있으면 추가 검사와 치료를 위해 병원을 방문해야 하지만 특별한 이상이 없다면 환자에게 병원을 방문하는 불편과 추가 교통비 부담을 줄 필요가 없지 않냐?"며 전화 검사결과 통보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환자와 의사간의 원격진료에 해당하는 전화진료의 허용 여부에 대해서는 다양한 사회적 논의 과정이 필요한 예민한 사안일 수 있다. 하지만 각종 의료검사 후 이상 유무에 대한 간단한 결과 통보행위를 의료법상 금지되는 원격진료에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각종 의료검사 비용에는 검사결과를 알려주는 비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검사결과가 바로 당일 나오는 경우 별도의 추가비용 없이 검사결과를 알려주는 것처럼 단순히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통보하는데 별도의 추가비용을 받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만일 검사결과가 당일 나오지 않아서 다른 날 통지받아야 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환자가 병원을 방문해 의사 앞에서 진찰을 받는 것도 아닌데 진찰료, 선택진료비 등을 외래진료와 동일하게 받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
이에 대해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이진석 교수는 "환자의 편익증진 차원에서 검사결과 통보행위는 전화뿐만 이나라 문자, 이메일 등으로 오히려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진료가 아니기 때문에 비용은 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화로 통보되는 검사결과의 내용이 '검사결과의 이상 유무와 다음 외래진료 안내, 예약'에 그쳐야 하고 이를 넘어 현행법상 금지되는 전화진료까지 할 경우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등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덧붙이는 글 | 안기종 기자는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한국환자단체연합회 상임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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