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모의고사 2교시 모습 (자료사진)
김행수
가히 '스마트'가 대세인 모양이다. 학창시절 교복 이름인 줄만 알았던 용어가 컴퓨터, 휴대전화에서부터 냉장고, TV, 심지어 건물 이름에까지 애용되고 있다. 그러더니 이제는 학교 울타리를 넘어 들어왔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서 스마트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며, 우선 2015년까지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교실에서 종이책이 퇴출되는 셈이다.
아이들의 책가방은 사라지고, 교실 내 개인 사물함에는 종이책 대신 태블릿 PC가 들어있게 될 테고, 교실마다 스마트 책상과 빔 프로젝터 등 첨단 기자재가 설치돼 어쩌면 책상과 칠판, 분필 등은 박물관에 전시될 운명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교과부의 계획대로라면 상상 속에서나 꿈꿨던 사이버 교실이 머지않아 현실로 나타나게 될 모양이다.
세계가 인정하는 IT 기술 강국일진대 그 정도 교육환경 바꾸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교사들은 물론, 휴대전화나 컴퓨터가 없으면 단 하루도 못 사는, 이른바 IT 세대 아이들조차 정부의 스마트 교육 정책에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과문한 탓인지, 지금의 우리 교육이 '하드웨어' 때문에 문제였던 적은 거의 없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특히 교육 정책 입안자들의 현실감이 제로라는 지적이 많다. 정책의 추진 배경과 구체적인 내용이 상충되는 게 다반사고, 정작 어떤 일이 시급하고 중요한지에 대한 정책적 판단이 학교 현장의 인식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한 스마트 교육 정책이 그 대표적인 '황당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느닷없이 스마트 교육을 추진하겠다는 배경이 궁금하다. 어느 국가정보화전략위원이 쓴 스마트 교육 취지문을 읽었다. 그는 개인의 학습을 맞춤형으로 구현하고 집단 지성과 지식의 공유와 협업을 가능하게 해 아이들마다의 창의성을 북돋울 수 있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듣기 좋은 말만 열거해 홍보하는 게 정책의 '취지문'이라지만, 이건 경쟁지상주의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현 정부가 내놓기에는 여간 민망한 게 아니다.
'짝꿍'이 사라지고 오로지 넘어서야 하는 '경쟁자'만 남은 교실, 여전히 수행평가 1, 2점에 울고 웃으며 노트 빌려달라는 말조차 꺼내기 힘든 삭막한 분위기를 정부는 정녕 모르는 걸까. 하물며 일제고사 성적표를 받아들고 학교와 자신의 전국 서열을 따져보는 아이들의 끝 모를 경쟁심을 앞장서서 부추겨놓고 협동학습과 창의성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한 편의 슬픈 코미디다.
국영수 중심 입시교육 개혁 않고선, IT 기술 도입 무의미세부적인 현실 진단은 더욱 가관이다. 교과 교실제 수업이나 선택 교과제 운영 등 학생 중심의 학교 정책이 다양화된 것에 견줘 교실 현장의 수업은 변화가 더디다고 나무란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정책의 변화에 교사들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거칠게 말해서, 정책의 실효성은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않은 채 애꿎게 교사들만 탓하는 형국이다.
정부가 실적 삼아 자랑하는 정책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부디 짬을 내 한 번만이라도 살펴보길 바란다. 시큰둥한 기성세대 불러다 모아놓은 하나마나한 요식행위 공청회 따위는 집어치우고, 과연 공교육의 목표에 잘 부합하는지, 무엇보다 그로 인해 아이들이 학교에서 행복해하는지 직접 물어보라는 거다.
기실 얼마 전 정부가 야심차게 학교마다 보급했던 전자 칠판과 전자(CD) 교과서 활용 수업에 대한 피드백은 제대로 해보았는지 의심스럽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도입되는 첨단 기자재가 과연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소기의 교육적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와 반성 없이, 마치 학교와 아이들을 첨단 IT 기술 적용의 '마루타' 삼는 듯하다.
교과 교실제와 선택 교과제 확대 시행은 학생 중심의 과정 운영이라는 선의와는 달리 우려하던 대로 교과목의 획일화를 부추기고 있다. 입시와 관련이 없거나 적은 교과목은 학교 교육과정에서 퇴출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지금껏 보아왔듯, 국영수 중심의 입시교육 자체를 손대지 않고는 그 어떤 좋은 제도를 도입해도 부작용만 생길 뿐이다.
관료주의에 실적주의가 덧씌워진 결과일까. 정부는 독서교육지원시스템을 만들어 보급하면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게 되고, 창의적체험활동운영시스템(에듀팟)을 갖춰놓으면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라 여긴다. 태블릿 PC 등을 이용해 디지털 교과서로 '이러닝(E-learning)'하게 되면 '스마트 인재'가 양성될 것이라고 믿는 이 단순함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아이들이 기존의 교실 수업을 획일적이고 답답하게 느끼는 건 그들이 스마트 기술에 길들여져서가 아니다. 입시 문제집을 태블릿 PC 위에서 푸나, 칠판에서 분필로 푸나 무슨 차이일까. 아이들에게 있어서 입시 문제집이 문제지, 태블릿 PC냐 칠판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더욱이 국영수 문제를 태블릿 PC를 이용해 푼다고 해서 창의력이 길러질 리 만무하다.
정부, 학벌구조, 입시제도 근본적 개혁에 올인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