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군 길상면 해병대 2사단 해안초소에서 4일 오전 김아무개 상병이 동료들을 향해 조준 사격을 해 4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김아무개 상병 포함)하는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흰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한 군인들이 시신을 운구하기 위해 사고 부대에 도착하고 있다.
권우성
소위 부대에서 큰 지적사항(장교들이나 선임하사 등에게 큰 문제로 지적받는 일)이 난 날이면 그야말로 찐하게 '한따까리' 하는 날이었다. '식사 끝나고 전원 집합. 열외 없음' 이런 지시사항이 전달된 날에는 저녁 식사도 다섯 숟가락 이상 뜰 수 없었다. 동작이 늦다고 식판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내무반에 80여 명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무릎선을 맞추고 앉아 있었다. 내무반장인 최고참 병장의 훈시가 있고 나면 상병들이 줄줄이 불려나가 맞았다. 일병, 이병들은 침상 걸치기(침상과 침상 사이에 몸을 걸치고 있는 것), 수통따까리(수통 뚜껑을 침상에 놓고 머리박기), 반합 따가리(야전 식기인 반합 뚜껑에 머리박기), 군번줄 손가락에 감고 깍지껴서 엎드려 뻗치기 등 수도 없는 얼차려가 반복되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얻어맞은 상병들은 분풀이하듯 일병, 이병들을 으슥한 곳으로 불러 모아 똑같은 얼차려와 구타를 반복했다. 일병은 이병을 불러모아 또 그렇게 하고… 그런 날은 하루 동안 침상에 잠들기 전까지 얼차려와 맞는 일이 전부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런 날은 편안했다.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며칠은 평안할 수 있으니까. 그런 이병, 일병시절을 거쳐 상병 말호봉. 내무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 식기당번이 되었다. 맞던 군번에서 패는 군번이 된 것이다. 파묻어 놓은 국방부 시계가 부지런히 돌고 돌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될 수 있는 혜택 아닌 혜택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식기당번이 되고 병장을 달아도 군대생활이 피곤하긴 마찬가지였다. 장교 중에는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아 사병을 괴롭히는 사람도 있었다. 관물대(사물함) 뒤켠 먼지가 손에 묻어난다고 점호를 몇 번이나 다시 했다. 모포에 각이 안 잡혔다고 잠도 안 자고 몇 번이나 관물 정리를 다시 하기도 했다. 몇몇 장교들은 '왜 이렇게 내무반이 엉망이냐, 군기는 쏙 빠졌다'라는 말로 병장들을 갈구(?)었다.
그건 후임병들을 패서라고 군기를 잡고 한따까리 찐하게 해서라도 자기 생각한 대로 팡팡 잘 돌아가게 하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그런 날이면 병장이나 고참들은 싫든 좋든 후임병들을 괴롭히는 가해자가 되어야 했고 후임병들은 구타와 얼차려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야 했다.
'강군' 꿈꾼다면 장군에서 이등병까지 인권교육 새로 하시라20년 전 군대생활.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 혼자 특별나게 어렵게 군대생활 한 것도 아니고 나만 못나서 맞아가며 군생활하고, 나만 모나서 후임병들을 괴롭힌 건 아닌 것 같다. '군기 잡는다'란 미명하에 구타와 얼차려가 당연시되고, '까라면 까'라는 상명하달 문화가 어떤 원칙보다 앞섰던 군대. 맞고 얼차려 당하던 후임병 시절이 끝나면 곧바로 가해자가 되어야 하는 후진적 군대.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나 인격에 대한 예의조차 무시된 군대가 6·25직후 3년을 넘게 사병으로 지냈다던 아버지 병영의 모습이었고 내가 20년 전 겪은 군의 모습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니. 강군육성을 내세우는 군, 가정보다 편안한 잠자리, 엄마가 해주는 밥같이 맛있다는 식사, 형님 같고 동생 같이 지낸다는 내무반 생활, 이것들이 한낱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쇼에 불과했었나?
기수열외, 작업열외라는 극한적 인간 무시의 소외 현상. 후임병조차 선임병에게 말을 놓고 선임병 대우는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은 수없이 맞고 얼차려 받으면서 군생활을 한 20년 전의 그것과 비교해봐도 나을 것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기수열외를 전통이라고 하지만 20년 전 군대에서도 후임이 선임에게 말을 놓는 문화는 꿈도 못꿨다. 전통이 아닌 '악습'일 뿐이며 강군은 절대 이런 문화 위에서 이루어 질 수 없다.
그쪽보고는 오줌도 안 싼다는 군대생활. 지금 생각해도 힘들고 어려웠다. 올해는 유독 군에 관련된 소식이 많다. 좋지 않은 소식들이 대부분이다. 고위 공직자 선출이나 임명시에는 군에 왜 안 갔냐, 면제가 합법적인가 아닌가 하는 논쟁이 끊이질 않는다. 또 한쪽에서는 군에 간 자식들이 동료의 가슴에 총을 겨누고, 구타에 못견뎌 스스로 죽어가고 있다. '강군육성'은 첨단 무기만 들여온다고 되지 않는다.
군대가 '진짜 군대'로 거듭나려면 국방의 의무가 신성하다는 교과서 이야기를 지도층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 또 군대가 강군이 되려면 인간의 권리, 인권에 대한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 '쫄다구'와 '고참'이 아닌 인간이 먼저라는 것을 군이 모두에게 주지시켜야 하는 것이다. 강군은 인권의 바탕 위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장군에서 이등병까지. 제대로 된 인권교육으로 이번 기회에 구타와 얼차려의 악습을 반드시 끊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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