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희 삼성노조 부위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남부지청에서 '삼성노동조합' 설립신고 서류를 접수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우성
- 지금 네 명 모두 일은 하고 있는지?조장희 "우리 네 명은 모두 삼성 에버랜드 리조트사업 FNB(Food and Beverage)에 있다. 오늘 오지 않은 두 명은 근무하고 있고, 나는 휴가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조장희가 노조를 만든다'는 것을 모두가 다 알고 있으니 당연히 노조와 관련된 일인 줄 알고 거부한 것 같다.
작년 1월에 30분 만에 삭제되기는 했지만 사내게시판 싱글(single)에 노조를 설립하자는 글을 올렸다. 지금도 노조설립과 관련해 근무시간에 회사 컴퓨터를 사용했다는 이유인지 월요일 징계에 회부돼 내일 징계위원회가 열린다. 하지만 징계회부서에는 아무런 이유가 나와있지 않았다.
일단 내일 열리는 징계위원회 연기를 요청해놓은 상태이다. 이와 관련 정부에 진정을 낼 생각이다. 노무현 정부 때에도 이런 일로 '신문고'에 진정을 요청했더니 30분 만에 해결됐는데,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삼성이 거의 모든 사회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한국에서 어떻게 삼성 노조를 설립할 생각을 했을까? 운전하며 기자의 질문에 담담하게 대답하는 조 부위원장이 크게 보였다. 대화가 더 이어졌다.
- 이전에 노동활동 경험이 있었나?"노조나 노동활동 경험은 전무하다. 그래서 이번에 노조설립을 준비하면서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간사님들을 모셔 노동법과 노조법 등을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다른 계열사 직원들과 백혈병 피해자들도 만나게 됐다."
- 노조설립은 어떻게 계획하게 됐나?"노사협의회에서 6년 있으면서 삼성에서도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역시나 안되더라. 노사협의회에서 위원장 선거를 하면 경선은 우리 단위밖에 없었다. 다른 데는 모두 회사에서 회사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위원을 '찍어서' 단선을 하는 것이다.
내가 5번을 선거에 나갔는데, 소위 '내 편'들은 회사 측에서 모두 다른 데로 보내버리니까 선거에 당선될 리가 없었다. 작년 2월에도 회사에서 나를 선거 한 달 전에 다른 곳으로 발령내려고 했다. 해당 단위에서 1년 이상 근무해야 위원장 입후보 자격이 생기기 때문이다."
- 노조설립을 계획하면서 회사 측의 회유는 없었나?"많이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두 번 만났었는데, '회사보다 사업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며 '나가면 사업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하더라. '직급 원하는 대로 맞춰줄 테니 다른 부서로 옮겨라'는 말도 들었다. 사실 노사위원 6년 했는데 회사 말만 잘 들었어도 진급, 연봉 쭉쭉 올라갔을 거다. 노사위원들은 인사팀하고 술 먹는 게 일이니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조 부위원장과 백 사무처장의 핸드폰은 계속 울렸다. 어젯밤 민주노총 설립총회에서 '오늘 10시에 설립신고서를 접수하겠다'고 발표한 대로 관련 기사들이 속속 올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정부과천청사에서 접수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권영국 "기사 다 나갔는데 접수 못 하면 어쩌나." 조장희 "접수 해야죠.""우리 노조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얻었으면 한다"영등포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에 도착하자 접수처인 운영지원팀(6층) 앞에는 이미 카메라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조 부위원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설립신고서를 접수했다.
남부지청 관계자에 따르면 접수된 설립신고서는 오늘 바로 근로개선지도과로 넘어가 하자가 없을 경우 다음주 월요일(18일)쯤 허가난다. 하자가 발견될 경우 20일 내로 보완을 요구하게 된다.
조 부위원장은 노조설립의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대가 바뀐 만큼 삼성도 이제는 좀더 노동자들도 고민하고 연대해서 노동자의 권익이 인정돼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했으면 해서 신청했다"고 답했다.
노조설립 계획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물론 예상대로 경기가 일어날 만큼 어려움이 많았고 포기할까도 생각했다"며 "하지만 우리 노조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미 설립된 이른바 '회사 노조'와의 차별성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 스스로 차별화하지 않아도 노동자들이 이미 우리의 진정성을 알고 있다"며 "앞으로의 활동을 통해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삼성 노동자들 사이에 퍼져 있는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전환시키기 위해 노조 홍보와 교육 활동을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까지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했던 노사협의회는 이제까지 삼성에서 백혈병으로 수십명이 죽고 노동자들이 투신자살을 해도 침묵했다"며 "이번 계기로 삼성도 시대착오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노조를 인정하는 자세를 배우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 부위원장이 흥분된 상태로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와 숨을 돌렸다. 그 사이 기자는 백 사무처장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아직까지는 반신반의해요. 그래도 기분은 좋네요(웃음)."이렇게 노조설립 신고서는 무사히 접수됐다. 하지만 '진짜 삼성노조'가 설립되려면 아직도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한다. 이들은 과연 '무노조 삼성'에 도전해 성공한 '용기있는 노동자'라는 평가를 얻을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문해인 기자는 <오마이뉴스> 14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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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노조 설립 신고서, 왜 과천에서 영등포로 넘어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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