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노조 설립 신고서, 왜 과천에서 영등포로 넘어갔나

[삼성노조 설립 신고 취재기] 과천에서 영등포까지 동행하다

등록 2011.07.13 17:47수정 2011.07.1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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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남부지청에서 삼성노조 조장희 부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백승진 사무국장(가운데)이 삼성노동조합 설립신고을 한 뒤 접수증을 들어보이며 밝게 웃고 있다.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남부지청에서 삼성노조 조장희 부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백승진 사무국장(가운데)이 삼성노동조합 설립신고을 한 뒤 접수증을 들어보이며 밝게 웃고 있다. ⓒ 권우성


13일 오전 9시 30분 과천 정부종합청사의 고용노동부 민원실. 삼성노조 설립 신고를 위해 조장희 부위원장과 백승진 사무처장, 권영국 변호사,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과 임미영 사무국장이 모였다.

김성환 위원장이 2층의 노사관계법제과로 들어섰다. 이어 설립신고서를 제출하려고 하자 이상영 사무관이 "카메라 좀 치우세요"라며 약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사람이 많으니 1층에 내려가서 얘기하자"고 제안했고, 이에 김 위원장이 "미리 통보하고 왔는데 왜 그러냐"고 맞서는 등 실랑이가 벌어졌다.

"노조 사무실 소재지인 영등포 남부지청으로 가세요"

일행은 다시 1층으로 내려왔고, 강진성 감독관과 대화를 나눴다.

강진성(감독관) "뭐 질문할 것 있으십니까?"
김성환(위원장) "저희가 질문할 게 아니라 그쪽에서 접수신고서를 보시고 저희한테 말씀을 해 주셔야죠.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신고절차가 복잡한 겁니까? 민원실에 전화를 두 번이나 했는데 대체 누구하고 얘기해야 하는 겁니까?"

권영국(변호사) "접수절차가 복잡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설립신고서 복사본을 내밀면서) 서식에서 누락된 것만 검토하고 접수해 주십시오."
강진성 "삼성 본사뿐 아니라 관련 단위까지 다 포함된 건가 보죠?"

권영국 "네. 삼성 관련 하청 업체와 비정규직까지 포함된 겁니다."
강진성 "고용노동부가 본부(정부청사)와 지방처(관할단위)로 나눠져 있습니다. 조합원들이 두 개 광역시 이상에 퍼져 있는 전국단위 연맹 이상일 경우에 고용노동부 장관이 설립신고를 담당하지만, 이 경우에는 노조 사무실 소재지인 영등포(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에서 담당합니다."


김성환 "어차피 같은 노동부 소관이면 여기에서 받아서 관할처에 보내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이상영(사무관) "관사가 다르면 이송하는 데 시간이 걸리죠. 서울남부지청으로 보내면 기본적으로 3일 정도가 걸리고, 우편 상황에 따라서 더 늦어질 수도 있구요."

삼성에는 이미 지난달 말 설립된 삼성에버랜드 노조가 있다. 이른바 '회사노조'라고 추측되는 이 노조가 먼저 교섭권을 신청할 경우 7일 이내에 다른 노조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이상 해당 노조가 교섭권을 갖는다. 관할처까지 이송되는 3일이라는 시간이 이들에게는 아까운 상황인 것이다. 


조장희(부위원장) "남부에서 접수하든 여기에서 접수하든 상관없다면 바로 남부 가서 접수하죠."
권영국 "다른 부분은 누락된 게 없나요?"

강진성 "설립총회 회의록 같은 게 있으면 검토해 참고할 수 있으니 함께 제출하시면 좋죠."
권영국 "그 관련 법안은 2010년 삭제돼 그 부분(회의록)은 제출대상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성환 "아니, 이것만 내면 된다고 해 놓고 회의록도 필요하다며 가져오라고 하시면..."
강진성 "그런 건 아니죠. 저는 그냥 설명해 드리는 거고, 안 해준다는 거 아니니까요."

권영국 "신고서에는 문제 없는 겁니까."
강진성 "규약상 특별히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카메라 기자들을 향해) 그런데 설명해 드리는 거 꼭 찍으셔야 되나요?"

강 감독관은 계속해서 "필수 항목은 다 기재됐으니 문서상 문제는 없지만 여기에서 문제가 없다고 해서 그쪽에서 통과된다는 보장은 못한다"고 말끝을 흐렸다.

김성환 "그러면 처음부터 회의록을 갖다 달라고 하면 좋았잖아요."
강진성 "갖다 주면 좋아요. 같이 내는 경우도 많아서 참고하기도 하니까."

"기사들이 다 나갔는데 설립 신고서 접수 못하면 어쩌나?"

노동부와의 대화가 끝나고 일행은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조 부위원장, 백 사무처장, 권 변호사에게 삼성노조 설립과 관련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노조설립 허가를 받아도 교섭권을 갖는 노조가 실질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것이 아니냐. 복수노조 시 교섭권 선정과정은 어떻게 되나?
권영국 "그 과정이 아주 복잡하다. 한 노조가 교섭권을 요구하면 회사가 그 사실을 7일 동안 공고하는데, 그 기간 내에 교섭권을 요구하는 다른 노조가 없으면 해당 노조가 교섭권을 가져가게 된다. 하지만 다른 노조가 교섭권 요구에 참여할 경우 14일 동안 자율적으로 각 노조의 대표들에게 합의할 시간이 주어진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두 노조 중 직원의 과반수 이상이 가입돼 있는 노조가 '우리가 과반수'라고 통보를 하게 된다. 이 통보와 관련 5일 내에 이의신청을 하면 노동위원회에서 10일 내에 어느 쪽이 과반수인지 결정한다. 하지만 노조가 3개 이상일 경우 과반수가 넘는 노조가 없을 수 있다. 이 경우 각 노조가 자율적으로 공동교섭대표단을 꾸리거나 노동위원회가 과반수 노조를 임의로 결정한다.

이번 경우 상대 노조(삼성에버랜드 노조)에서 교섭권을 먼저 신청하고 우리(삼성노조)가 7일 안에 허가를 받지 않으면 최소 1년 동안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 공동교섭대표단이 꾸려지면 2년을 같이 하고, 안 되면 1년 동안 교섭권을 그 쪽(삼성에버랜드 노조)에서 갖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4명, 4명으로 조합원 수는 같지만 그쪽에서 한 명이라도 더 가입시키면 그쪽이 과반수가 되기 때문에 상황이 많이 어렵다. 이 교섭권 선정제도가 교섭권 획득을 어렵게 하는 문제가 있다."

- 왜 일반 노조 조합원이 네 명밖에 없나?
조장희 "삼성에서 그동안 노조를 만들려고 할 때마다 탄압해왔다. 이전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하러 관할처를 가면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서류를 탈취해가거나 감금시키고 마지막에는 돈으로 해결했다고 하더라. 노조를 만들려는 많은 시도들이 실패하면서 삼성 직원들은 '삼성에서는 노조를 만들 수 없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또한 노조에 가입하는 순간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회사 전체에 퍼져 있다."

권영국 "이 네 분은 모든 걸 각오하신 분들이다. 사실 변호사로서도 이 경우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삼성자본은 우리나라의 모든 권력과 행정기관을 장악하고 있다. 아까 노동부에서도 그냥 서류접수인데도 '삼성' 얘기 나오자마자 말이 길어지지 않았냐. 자기들도 부담을 느낀 거다.

'삼성 장학생'이라는 말도 있지 않냐. 삼성의 눈치를 보지 않는 행정기관은 없다. 그 벽을 넘으려면 이 네 분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수밖에 없다. 물론 직원들이 조합에 확 가입해주면 되지만, 모든 일이 예상대로 가지는 않으니까. 다만 이 분들이 잘 버텨주고 이를 세상에 알려내면 변화가 가능할 수도 있다."

a  조장희 삼성노조 부위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남부지청에서 '삼성노동조합' 설립신고 서류를 접수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장희 삼성노조 부위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남부지청에서 '삼성노동조합' 설립신고 서류를 접수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우성

- 지금 네 명 모두 일은 하고 있는지?
조장희 "우리 네 명은 모두 삼성 에버랜드 리조트사업 FNB(Food and Beverage)에 있다. 오늘 오지 않은 두 명은 근무하고 있고, 나는 휴가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조장희가 노조를 만든다'는 것을 모두가 다 알고 있으니 당연히 노조와 관련된 일인 줄 알고 거부한 것 같다.

작년 1월에 30분 만에 삭제되기는 했지만 사내게시판 싱글(single)에 노조를 설립하자는 글을 올렸다. 지금도 노조설립과 관련해 근무시간에 회사 컴퓨터를 사용했다는 이유인지 월요일 징계에 회부돼 내일 징계위원회가 열린다. 하지만 징계회부서에는 아무런 이유가 나와있지 않았다.

일단 내일 열리는 징계위원회 연기를 요청해놓은 상태이다. 이와 관련 정부에 진정을 낼 생각이다. 노무현 정부 때에도 이런 일로 '신문고'에 진정을 요청했더니 30분 만에 해결됐는데,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삼성이 거의 모든 사회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한국에서 어떻게 삼성 노조를 설립할 생각을 했을까? 운전하며 기자의 질문에 담담하게 대답하는 조 부위원장이 크게 보였다. 대화가 더 이어졌다.

- 이전에 노동활동 경험이 있었나?
"노조나 노동활동 경험은 전무하다. 그래서 이번에 노조설립을 준비하면서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간사님들을 모셔 노동법과 노조법 등을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다른 계열사 직원들과 백혈병 피해자들도 만나게 됐다."

- 노조설립은 어떻게 계획하게 됐나?
"노사협의회에서 6년 있으면서 삼성에서도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역시나 안되더라. 노사협의회에서 위원장 선거를 하면 경선은 우리 단위밖에 없었다. 다른 데는 모두 회사에서 회사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위원을 '찍어서' 단선을 하는 것이다.

내가 5번을 선거에 나갔는데, 소위 '내 편'들은 회사 측에서 모두 다른 데로 보내버리니까 선거에 당선될 리가 없었다. 작년 2월에도 회사에서 나를 선거 한 달 전에 다른 곳으로 발령내려고 했다. 해당 단위에서 1년 이상 근무해야 위원장 입후보 자격이 생기기 때문이다."

- 노조설립을 계획하면서 회사 측의 회유는 없었나?
"많이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두 번 만났었는데, '회사보다 사업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며 '나가면 사업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하더라. '직급 원하는 대로 맞춰줄 테니 다른 부서로 옮겨라'는 말도 들었다. 사실 노사위원 6년 했는데 회사 말만 잘 들었어도 진급, 연봉 쭉쭉 올라갔을 거다. 노사위원들은 인사팀하고 술 먹는 게 일이니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조 부위원장과 백 사무처장의 핸드폰은 계속 울렸다. 어젯밤 민주노총 설립총회에서 '오늘 10시에 설립신고서를 접수하겠다'고 발표한 대로 관련 기사들이 속속 올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정부과천청사에서 접수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권영국 "기사 다 나갔는데 접수 못 하면 어쩌나."
조장희 "접수 해야죠."

"우리 노조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얻었으면 한다"

영등포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에 도착하자 접수처인 운영지원팀(6층) 앞에는 이미 카메라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조 부위원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설립신고서를 접수했다.

남부지청 관계자에 따르면 접수된 설립신고서는 오늘 바로 근로개선지도과로 넘어가 하자가 없을 경우 다음주 월요일(18일)쯤 허가난다. 하자가 발견될 경우 20일 내로 보완을 요구하게 된다.

조 부위원장은 노조설립의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대가 바뀐 만큼 삼성도 이제는 좀더 노동자들도 고민하고 연대해서 노동자의 권익이 인정돼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했으면 해서 신청했다"고 답했다.

노조설립 계획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물론 예상대로 경기가 일어날 만큼 어려움이 많았고 포기할까도 생각했다"며 "하지만 우리 노조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미 설립된 이른바 '회사 노조'와의 차별성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 스스로 차별화하지 않아도 노동자들이 이미 우리의 진정성을 알고 있다"며 "앞으로의 활동을 통해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삼성 노동자들 사이에 퍼져 있는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전환시키기 위해 노조 홍보와 교육 활동을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까지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했던 노사협의회는 이제까지 삼성에서 백혈병으로 수십명이 죽고 노동자들이 투신자살을 해도 침묵했다"며 "이번 계기로 삼성도 시대착오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노조를 인정하는 자세를 배우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 부위원장이 흥분된 상태로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와 숨을 돌렸다. 그 사이 기자는 백 사무처장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아직까지는 반신반의해요. 그래도 기분은 좋네요(웃음)."

이렇게 노조설립 신고서는 무사히 접수됐다. 하지만 '진짜 삼성노조'가 설립되려면 아직도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한다. 이들은 과연 '무노조 삼성'에 도전해 성공한 '용기있는 노동자'라는 평가를 얻을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문해인 기자는 <오마이뉴스> 14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문해인 기자는 <오마이뉴스> 14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삼성에버랜드노조 #조장희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권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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