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과 호두를 함께 갈면 더 고소하고 영양가 있는 콩물 완성
조명자
콩을 삶다 보니 어린 시절 생각이 난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시하여 고모, 삼촌 열 명이 넘는 대가족이 모여 살던 우리 집에 콩국수를 만드는 여름날은 축제와 다름없었다. 엄마는 커다란 가마솥에 콩을 삶고 할머니 고모들은 마루에서 칼국수를 미는데 그 양이 엄청나 한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
밀가루는 우리 집에서 기른 호밀가루다. 호밀은 백밀에 비해 색깔이 누렇고 더 구수한 반면 야들야들한 백밀의 촉감과 달리 거친 느낌이 난 것 같다. 아무튼 한쪽에선 열심히 칼국수를 밀고 다른 쪽에선 다 삶은 콩을 맷돌에 가는 공정이 시작된다.
엄마와 함께 맷돌 손잡이(어처구니)를 같이 돌리는 장난은 내가 제일 하고 싶어 하던 놀이였다. 엄마와 고모가 아무리 비키라고 해도 악착같이 달려들어 양손을 잡고 뺑뺑 돌리다가 위아래 맷돌짝을 흔들어 놓거나 속도가 안 맞아 일만 더디게 해서 혼나던 기억. 어릴 적 추억이다.
다 갈은 콩은 바로 커다란 무명 자루에 넣는다. 오지자배기에 물을 붓고 콩이 든 무명 자루를 힘껏 주물러 콩물을 얼추 빼낸 뒤 자배기 위에 걸친 나무 삼발이 즉 쳇다리 위에 올려놓고 자루를 쥐어 짜 나머지 콩물을 쏙 빼놓으면 깔끔한 콩물 완성.
칼국수를 그릇에 담고 맑은 콩물을 부어 오이채 썬 것을 올려놓으면 정말로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콩국수가 탄생한다. 반찬이라 봤자 시어 꼬부라진 열무김치나 얼가리김치, 대표적인 여름반찬 오이지가 전부지만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시원한 우물 물을 부어 만든 콩국은 요즘 얼음 띄워 내온 콩국의 시원함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에휴, 맷돌로 간 콩물을 아무리 그리워한들 무슨 소용인가. 믹서기로 후다닥 갈아 낸 콩물, 힘이 하나도 안 들어 좋긴 좋다만 걸쭉한 데다 열까지 받았으니 콩물의 질과 맛은 비교하고 자시고가 없다.
삼계탕 버금가는 여름 보양식 콩국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