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비스 매각 '정몽구 회장 약속' 지켜보겠다"

[e사람]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등록 2011.07.15 09:08수정 2011.07.1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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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 권우성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 권우성

재벌개혁이 화두로 떠올랐다. 역설로 들릴지 모른다. 가장 친기업적인, 친 재벌적인 정부에서 말이다. 청와대 뿐 아니라 정부, 여당까지 목소리가 크다. '우리가 그만큼 해줬는데, 너흰 뭘 했느냐'는 인식이다. 현 정부들어 고환율정책과 세금감면, 규제완화 등의 혜택은 고스란히 대기업에 돌아갔다. 덕분에 일부 수출대기업들은 사상 최대 이익을 올렸다.

 

하지만 이들은 실제 고용 창출이나, 설비투자 등에선 인색했다. 오히려 중소업체 영역에 뛰어들거나, 계열사 늘리기에 급급했다. 특히 대기업들이 회사를 세운 지 60여년이 지나면서, 재벌 2, 3세대로 경영권 승계가 본격화되고 있다. 문제는 방법이다. 온갖 탈법과 편법을 써가며, 자신들의 재산을 아들, 딸에게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5년 넘게 이들 총수일가의 재산 넘기기를 추적해 온 사람이 있다. 채이배 회계사(38)다.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이다. 연구소는 지난 2009년 김상조 한성대 교수 주도로 만들어졌다. 김 교수는 참여연대 시절부터 꾸준히 재벌 총수일가 지배구조 문제를 지적해 오면서, 국내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로 불린다.

 

김 교수의 애제자격인 채 연구위원이 최근에 낸 보고서가 큰 논란이 됐다.  재벌총수 일가들의 부(富) 증식에 관한 보고서였다. 이미 지난 2006년부터 매년 발표했던 내용이었다. 최근 재벌의 무분별한 중소기업 영역 진출에 따른 따가운 시선이 있던 터에, 그의 보고서는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대다수 재벌총수 일가들이 편법적인 방법으로 막대한 재산을 늘리고,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허탈해 했고, 상대적 박탈감 역시 컸다. 재벌에 대한 여론은 더욱 나빠졌다. 정치권 뿐 아니라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뒤늦게 제도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그를 지난 8일 오후에 만났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빌딩 맨 꼭대기에 자리잡은 연구소였다. 흰색 와이셔츠 차림에 마치 큰 시험을 끝낸 수험생을 본 듯했다. 아직 언론과의 인터뷰가 서툴다면서도, 2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내비쳤다.

 

"글로비스로 정몽구 부자(父子) 막대한 이익 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

 

-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통화하기 어렵더라.

"(고개를 흔들며) 정말이지, 2~3일 동안 기자들 전화 받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 기업들로부터 전화 등은 없었나.

"롯데를 포함해 몇 군데서 연락이 왔다. 롯데는 자신들이 아니라고 해서. 알고보니 장 아무개씨가 영풍그룹에 이름만 같고, 다른 사람이 있었다. 다음날 곧바로 수정보고서를 냈다."

 

- 다른 곳들은 항의성 전화였나.

"항의보다는…그룹의 관련 담당자인데, 어떻게 집계했는지 방법 등을 물어왔다. 자신들도 윗선에 보고를 해야한다면서."

 

지난 2006년 11월 1차 보고서를 낸 이후, 일부 기업에선 담당자들이 직접 연구소까지 자료를 들고 찾아온 경우도 있다고 했다. 대체로 당시 상황 등에 대한 해명과 변명이 많았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 보고서만 보면, 재벌 가족들은 '큰 돈을 정말 참 쉽게 버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끄덕이며) 이번에 대규모 기업집단들만 조사했지만, 실제 그 아래 중견기업들도 똑같다. 오히려 감시의 눈을 피해 더 심한 경우들도 많다."

 

채 연구위원의 말이다.

 

a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 권우성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 권우성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는 회사들을 분석해보면, 자신 회사 이익은 거의 없어요. 그런데, 그 아들이 가진 계열사를 보면, 순이익률이 30%이상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거의 다 내부거래죠. 해당 기업 소액주주들이 문제 삼고 해야하는데, 우리가 이런 것에 아직 부족하죠."

 

그가 재벌 총수일가들의 주식변동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글로비스라는 회사 때문이었다. 이 회사는 현대기아차에서 생산되는 완성차를 주로 실어나르는 물류회사다. 정몽구 회장과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지난 2001년 100% 출자해서 만들었다.

 

글로비스는 현대차 그룹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주면서, 날로 성장했다. 500원짜리 주식은 지난 2005년 상장되자마자 상한가를 쳤고, 최근에 17만 원을 웃돌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10년새 글로비스 주식으로만 2조 원 가까운 돈을 벌었다. 다시 채 연구위원의 말이다.

 

"글로비스가 상장된 이후 정몽구 부자(父子)가 매년 엄청난 이익을 내는 것을 보고 놀랐죠. 우리 연구소의 미국 변호사 출신 선배가 '(미국에선)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이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죠."

 

"정몽구 회장, 지분 매각하기로 약속...합의 지켜질지 볼 것"

 

- 경제개혁연대에서 2008년에 정몽구 회장 등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냈는데.(경제개혁연대는 시민단체로, 경제개혁연구소와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다)

"소액주주 15명을 모아서, 계열사 부당지원과 회사기회유용에 대해 소송을 냈다. 지난 2월 1심에서 일부 승소판결을 얻어냈다."

 

- 그런데, 이후 현대차와 개혁연대에서 모두 항소하지 않기로 하고 종결됐다.

"(끄덕이며) 현대차쪽에서 1심 판결이후에 이번 건에 대해 협의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현대차쪽의 진정성도 있었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쪽과 합의를 이뤘다."

 

- 정몽구 회장이 갖고 있는 글로비스 지분 매각에 합의했다는데.

"그렇다. (책을 펴 보면서) 정 회장의 글로비스 지분이 20%(정확히는 20.29%)인데, 이것을 처분하기로 합의를 한 것이다."

 

- 구체적인 매각 시기까지는.

"(잠시 생각을 한 뒤) 현대차 쪽과 합리적인 기간 안에 (정 회장의 지분을)매각 하기로 했다는 정도다."

 

'만약 정 회장쪽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라고 되묻자, 그는 별다른 말없이 웃음으로 답했다. 이어 다시 묻자, "약속을 했기 때문에 지킬 것으로 믿는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다시 법적으로 문제 삼을 것"이라고 답했다. 현대차쪽과 어느 정도 구체적인 시간에 대해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채 연구위원은 "글로비스 등 계열사 주식을 통해 정의선 부회장이 상당히 많은 자금을 확보하게 됐다"면서 "당장 정몽구 회장이 경영권을 정 부회장에게 넘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지만, 계열사 간 합병과 지주회사를 통한 그룹 지배구조에 변화가 올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일감 몰아주기 등 제도로 규제하고, 과세 방안 찾아야"

 

a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 권우성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 권우성

- 삼성 3세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이번에 크게 주목을 못 받은 것 같다.

"이재용 사장도 서울통신기술 등 비상장 계열사를 갖고 있지만, 다른 곳보다 이익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웃으면서) 그쪽은 이미 (경영권 승계가) 끝난 상황으로 봐야 한다."

 

삼성의 경우는 과거 90년대 후반 비상장 계열사들이 특혜성 주식을 이건희 회장 자녀들에게 넘겨 주면서, 경영권 승계 작업을 진행했다. 전형적인 세금없는 경영권 세습이라는 비판이 이어졌고, 뒤늦게 정부가 법을 다시 고쳤다. 이 때문에 2000년대 들어 다른 재벌들이 자녀 소유의 계열사를 통한 일감몰아주기로 경영권 승계 방식을 바꾼 것이다.

 

채 연구위원의 말이다.

 

"삼성 사례 이후, 정부가 법으로 막아놓으니까 다른 길을 찾은 것이죠. 사실 자신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면 제대로 세금을 내면 되지만, 대부분 기업들은 '탈세가 아닌 절세'라는 생각에 그렇게 하지 않아요. 이번 일감몰아주기 등도 그렇지만, 기업들이 먼저 치고 나간 뒤에야 제도가 따라가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 문제죠,"

 

물론 소득도 있다. 올 4월 상법이 일부 바뀌면서, 회사기회 및 자산의 유용 금지 조항이 만들어졌다. 시행은 내년 4월부터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일감 몰아주기 등에 대한 제도 규제 방안이 미약하다.

 

채 연구위원은 "현행 공정거래법상의 부당지원행위를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면서 "재정부 등에서도 이같은 부당거래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벌이 앞으로 이런 방식으로 해선 이익이 될 수 없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당장 완벽한 제도를 만들 수 없겠지만, 공정거래법과 세법 등을 바꾸고 주주들도 적극적으로 소송 등으로 나서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그는, 참여연대 소액주주 활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회계사의 길을 걸었다. 실제 국내 대형 회계법인에서 3년 넘게 실무를 쌓기도 했다.

 

인터뷰 끝날 즈음에 '월급 많이 받는 좋은 직장 놔두고 연구소에서 일할 때 혹시 후회한 적 없느냐'고 애꿎게 물었다. 그는 웃으면서 "연구소에서 일하면서도 충분히 먹고 살 만한다"고 말했다. 그리곤 "예전에 경제로 여유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연구와 보고서를 쓰니까 이 일이 훨씬 좋다"고 전했다.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일감 몰아주기 #재벌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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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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