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요즘 '두 개의 날개'로 난다. 하나는 '동반성장위원회'고, 다른 하나는 '제주-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다.
14일 오후 4시 범국민추진위 사무실에서 만난 정 전 총리는 이를 두고 "중요한 두 가지 문제"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기자가 보기엔 '두 개의 날개'의 무게감은 같지 않았다. '동반성장'을 더 중요한 화두로 붙잡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도 "동반성장은 정말 한국이 사활을 걸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동반성장위와 범국민추진위가 발족하기 전에는 신문사에서 와도 안 만나고 강의도 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두 위원회가) 발족한 이후에는 (인터뷰나 강의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정 전 총리는 "일생에서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며 "여기(동반성장위와 범국민추진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무게중심은 '동반성장'쪽에 있었다. 그가 "제주는 세계 7대자연경관에 선정되지 않아도 죽지 않잖아"라고 말한 것도 그런 판단에 확신을 주었다.
기자가 이날 <경향신문>에 보도된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현 지식경제부 연구·개발 전략기획단장)의 발언 얘기를 꺼내자 정 전 총리는 "굉장히 좋은 것(발언)"이라고 강한 공감을 나타냈다.
황창규 단장은 전날(13일) 열린 '미래산업선도기술개발사업단 출범 및 협약식'에서 핀란드 노키아를 "나라경제가 소수의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하면서 "우리 경제가 대기업에 의존할 경우 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황 단장은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소․중견기업의 경쟁력이 확보되지 않고서는 단언컨대 선진국 진입은 요원하다"고 강조했다. 20년간 삼성에서 몸담았던 CEO출신으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발언이다.
이러한 황 단장의 발언을 두고 정 전 총리는 "(동반성장을 주장하는) 나와 통하는 이야기"라며 "적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대세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반겼다. 정 전 총리는 "솔직히 잘 알려진 삼성의 CEO였던 황 단장이 지경부 R&D 단장으로 간다고 했을 때 '삼성사람에게 R&D 돈을 맡기다니 큰 일 났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경향>에서 황 단장의 말을 오버해서 보도했는지 모르겠지만 '대기업에 의존하는 경제는 위험하다'는 것을 황 단장 같은 사람이 이해하게 됐다는 것은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고 있는 것"이라며 "오늘 아침에 라디오에서 그의 발언을 들었는데 굉장히 기분이 좋더라"라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황 단장의 발언을 듣고서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면 좋은 사회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면서 크게 웃었다.
"세종시건은 내게 '훈장'이지 '전과' 아니다"
정 전 총리는 최근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한진중 사태를 주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정 전 총리는 지난달 28일 김 전 의장에게 보낸 답신에서 "한진중 사태는 한진중 최고 경영자가 해결해야 한다"고 '조남호 회장 책임론'을 주장했다.
이와 관련, 정 전 총리는 "김 전 의장이 (한진중 사태 해결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시는 것 같아 '동반성장을 위해 같이 노력합시다'고 편지를 보낸 것"이라며 "엊그제 만나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솔직하게 얘기하더라"고 전했다. 당시 점심식사 자리에서 김 전 의장은 "그동안 내가 워낙 대기업적 사고를 해왔지만 한진중 주인(조남호 회장)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며 "만나자고 해도 안 만나줬다"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정 전 총리는 '한진중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거기에 대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다음에 얘기하자"고 직답을 피해갔다. 다만 정 전 총리는 "오늘 공학한림원에서 한 강연에서 '지난 주말 부산에 내려간 희망버스에서 이명박 대통령 물러가라는 얘기가 나온 것 아느냐?'고 물어보면서 '이것은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고 전하면서 "세상은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 전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 실패'와 관련해 "개인·정파·정당의 이익을 위해 수정안을 반대한 것이어서 참으로 개탄스러웠다"며 "앞으로 걱정되는 게 많다"고 우려했다. 정 전 총리는 "한나라당이 분열했기 때문에 세종시 수정안이 실패했다"며 "나는 세종시건을 훈장으로 생각하지 전과라고 보지 않는다"고 '세종시 수정안'을 향한 소신을 과시했다.
정 전 총리는 "잘 나가는 나라들은 모두 5km 안에 사법부·행정부·입법부가 다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행정부가 100km 떨어져 있으면 국가경영이 아주 어렵다"며 "이 비용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 전 총리는 "총리 재임 시절이던 지난 2009년 10월께 이명박 대통령에게 '오늘부터 부자들만을 위한 입학사정관 얘기를 하지 마세요'라고 얘기했다"며 "그때부터 이 대통령이 입학사정관 얘기를 하지 않더라"라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당시 이 대통령에게 '입학사정관제는 부자들을 위한 것이다, 저나 이 대통령 같은 가난한 가정을 배경으로 가진 사람은 입학사정관제로는 대학에 못 들어간다, 다 스펙 가지고 하는 건데 무슨 수로 불우한 가정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을 골라낼 수 있겠나?'라고 설득했다"고 전했다.
2011.07.15 13:50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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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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