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8천만원 거액 손배소송... "주민들 자살충동"

[강정마을 평화유배자들③]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등록 2011.07.19 18:37수정 2011.07.19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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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해군기지 건설 추진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 강정마을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다양한 이들이 함께 폭염의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서울에서 왔고, 어떤 이는 프랑스에서 왔고, 또 어떤 이는 날 때부터 강정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평화를 지키겠다며 스스로 강정마을 찾은 이들을 '자발적 평화유배자'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강정마을로 자발적 평화유배를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세 번째로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이주빈

지난 15일 오전 6시 30분, 제주도 강정마을에 있는 한 주택을 사복경찰들이 덮쳤다. 스무 명이 넘는 형사가 출동해 체포한 중년 사내는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그는 강정마을 주민 1930명의 대표다.

주거 확실하고, 도주할 의사 전혀 없는 그를 긴급체포한 까닭은 출두요구서를 한 번 보냈는데 경찰서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전격적으로 긴급체포된 강 회장은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묵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해군기지 만들려고 강행하는 육상공사와 해상공사는 합법적인 공사가 아닙니다. 환경영향평가 등 지켜야할 법을 전부 어기고 있는 불법공사에요. 그런데 경찰과 검찰은 불법공사는 방조한 채 주민들만 사법처리하려고 달려듭니다. 영장실질심사하면서 검찰이 한다는 말이 '도주 우려가 있고, 업무방해 등 재발의 위험이 있다'던데 왜 불법공사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입니까. 지금 사법기관이 하는 짓은 강도질하는 강도를 잡은 시민을 거꾸로 강도질하는데 업무방해 했다고 잡아넣는 꼴입니다. 이게 민주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까? 강도로부터 마을을 지켜도 모자랄 판에 우리가 왜 도망갑니까."

그 새벽 난리통에서 회장을 구하겠다며 마을 주민 30여 명이 그의 집으로 달려왔다. 이 가운데 고권일 강정마을해군기지대책위원장과 국제평화운동단체인 '개척자들' 소속의 송강호 박사가 긴급체포 돼 구속·수감되고 말았다. 사지에서 혼자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죄책감이 자꾸만 삐죽거리며 기어 나오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을의 운명을 생각했다.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흔들려선 안 돼. 그럼 지는 거야. 이 싸움 결코 질 수 없어!'

겉으로는 소강상태처럼 보이지만 강정마을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사법 공세'에 피를 말리고 있다. 주민들이 이제까지 낸 벌금만 5천만 원이다. 해군으로부터 공사를 수주한 삼성물산과 대림산업, 두산건설, 대우건설 등은 주민 14명을 상대로 2억8900만 원이라는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또 해군은 주민 77명을 대상으로 공사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주민 9명이 재판 중이고, 3명은 구속된 상태며, 14명에 대해선 경찰이 출두를 요구하고 있다.


"법이라고 하면 벌벌 떠는 순진한 시골사람들을 상대로 검찰과 경찰, 해군과 기업 등이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한꺼번에 사법적 겁박을 주고 있어요. 지적 장애가 있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청년을 연행해 가서 재판에 송치했어요. 바깥출입도 거의 하지 않는 92세 할머니까지 공사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대상으로 올려놨어요. 얼마나 치졸한지…."

해군기지 문제 불거진 뒤 대부분 깨져버린 친목모임... '섬 안의 섬'


 강정마을에 있는 넷길이소. 물이 좋기로 유명한 강정마을엔 도처에 비경이 숨어 있다.
강정마을에 있는 넷길이소. 물이 좋기로 유명한 강정마을엔 도처에 비경이 숨어 있다.이주빈

너무도 기막힌 일들을 숱하게 당하고 있지만 '육지 사람들'은 먼 나라 일 대하듯 한다. 만 4년째 악몽 같은 싸움을 날마다 하고 있지만 언론들은 '서울 공화국' 소식만 전한다.

육지 사람들이 '가장 풍광 좋은 코스'라고 격찬한 올레 7코스. 그 코스 한복판에 해군기지가 들어설 예정인데도 그렇다. 그곳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자 세계지질공원이고 생물권보존지역이다. '세계자연유산 3관왕' 지역에 해군 기지를 짓겠다는, 국제적인 조롱을 받을 짓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그렇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생업을 제치고, 그 아름다운 구럼비를, 바다를, 길을 지키겠다고 굴착기 앞에 몸을 던지고 벌금폭탄을 맞고 감옥에 끌려가도 모른 척한다. 섬의 운명인가.

"서울이나 부산 등지에 사는 도시사람들이 제주도 오는 이유가 뭐겠어요. 경치 아름답고 편안한 곳에서 도시에서 찌든 삶, 잠시 숨고르기 하러 제주도 오는 것이잖아요. 해군이 공사장 광고판에 군사기지가 '제주도의 또 하나의 명소'라고 광고하고 있는데 어떤 도시 사람이 군사기지 있는 곳으로 쉬러 오겠습니까. 이것만 보아도 해군기지 문제는 강정마을만의 문제도 아니고, 제주도만의 문제도 아닌 대한민국의 문제입니다. 삶에서 휴식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가장 아름다운 우리의 쉼터에 해군기지를 만들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 강정마을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섬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안다. 스치는 눈길 한 번에도 얼마나 마음이 울렁대는지.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하고 열정적인 기쁨인가를. 외로움을 천형처럼 지고 태어나서 그렇다. 섬에서 태어난 순간 이미 고독은 뗄 수 없는 멍에인 것이다.

그래서 섬마을엔 여러 갈래의 모임이 많다. 나이 같다고 갑장회를 만들고 초등학교라도 같이 다녔다 치면 동창회를 만든다. 부모님 장례 치러주는 상여계도 있고, 동생 결혼식 밑천 모으는 장가모임도 있다. 외로워서 그렇다. 믿고 의지할 데라곤 서로 뿐이어서 그렇다.  

"제주도에서는 제사를 한 밤에 지냅니다. 대개 자정에 제사를 시작해 새벽 한 시경에 끝나지요. 그러면 한 시 반부터 제사 음식을 이웃집에 돌립니다. 그 한밤중에 자고 있다가도 음식 받아먹고 그랬지요. 그렇게 친형제처럼 지내던 사이가 해군기지 찬성이네 반대네 하는 문제로 파탄 나버렸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수십 년을 하루라도 붙어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던 이웃집 아주머니랑 원수가 돼버렸어요, 자식들이 찬성, 반대로 갈리는 바람에.

국가시책 사업이 무엇입니까. 나라 살찌우고 국민들 행복하게 해주는 사업 아닙니까. 그런데 해군기지 사업은 그 정반대로 가고 있어요. 2009년에 국정원, 해군, 도청, 경찰 해군기지 관련 유관기관 회의 자리에서 유덕상이라는 제주도부지사가 '주민들 이간질시키고 깨트려서 소용돌이로 몰아넣어야 해군기지 사업 성공한다'고 말한 것이 언론에 보도됐어요. 주민들 갈가리 찢어놓는 게 국책사업인가요? 사촌들끼리도 제사를 함께 지내지 않게 돼버렸어요. 이 상처를 어떻게 치료하고 보상할겁니까. 지금도 자살충동을 느끼는 주민이 절반 가까이 되는데…."

강정마을엔 약 200여 개의 각종 친목모임이 있었다. 하지만 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진 뒤 대부분 깨지고 말았다. 그렇게 서로 섬 안에서 섬이 되어버린 것이다.

'망가지고 깨지기는' 그의 살림살이도 마찬가지. 4년 동안 마을회장을 맡아 해군기지 반대싸움을 하느라 남의 밭을 빌려서 하던 밀감 농사는 관리를 못해 포기했다. 그나마 금귤 하우스 농사는 버티며 하고 있는데 큰 소득이 안 돼 부인이 노동 품앗이를 다니고 있다. "덕분에 빚이 많이 생겼다"고 속 좋게 웃는다.

설득당하고 싶은 '강정 소'... 힘으로 밀어붙일 궁리만 하는 행태 한심스러워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이 주민들과 해군기지 반대 집회를 하는 도중 한 주민과 눈 인사를 하고 있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이 주민들과 해군기지 반대 집회를 하는 도중 한 주민과 눈 인사를 하고 있다.이주빈

강정마을에서 나고 자란 강 회장은 젊어서는 100미터를 11초3에 뛸 정도로 민첩했다. 태권도 실력은 알아주는 수준급이었고 중학교 때는 핸드볼 선수로 활약했다. 기골이 장대하고 힘도 세 싸움도 곧 잘했는데 그래서 붙은 별명이 '강정 소'였다.

젊은 '강정 소'는 놀기 좋아하고 술 마시기 좋아해 부인의 타박을 듣기 일쑤였다. 그러다 홀연히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일용노동으로 벌이를 하며 11년을 살았다. 2001년 7월에 다시 고향에 돌아왔다. 공무원이었던 매형이 지방선거에 출마해 선거운동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그의 매형은 고 이영두 전 서귀포시장으로 2006년 11월 방어축제 점검을 위해 배를 타고 나갔다가 순직했다.

"매형은 김태환 전 제주지사와 짝을 이뤄 두 번 선거를 했어요. 첫 번째 도전은 실패했고, 2006년에 김 전 지사의 러닝메이트로 나와 서귀포시장을 했습니다. 그때 모슬포부터 성산포까지 맨발로 뛰며 선거운동을 했어요. 김태환씨 득표율이 높은 곳은 자기고향과 강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지지를 해줬는데 강정에 기습적으로 해군기지 유치를 선언해버린 겁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셈이죠. 만약 매형이 살아있었다면 김태환씨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매형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에 지금도 마음이 아리다. 마을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4년이라는 기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저도 많이 힘들어서 몇 번이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주민들 때문에 그만두질 못했어요. 하우스 같은 시설재배는 날씨나 온도변화에 민감해서 늘 앉아서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비오면 온도 올려줘야 하고 볕이 나면 하우스 안에 열기를 빼줘야 하는데 제주시내서 집회를 열면 비오다가 갑자기 볕이 나도 어떻게 해줄 수가 없잖아요. 그 한 순간 때문에 작물이 다 말라죽어요. 일년 농사 망치는 거죠. 그래도 저는 계속 싸우자고 말하고 주민들은 변함없이 생업을 제치고 마음을 모아주시고 힘을 모아줍니다. 얼마나 미안한지…."
 
그 미안한 마음 조금이라도 덜어내 보려는 것일까. 강 회장의 마을방송 마무리 말은 항상 "해군기지 저지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주민 여러분 힘내십시오"다.  

강정마을회에서 웃음치료와 명상치료, 역할극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는 "이 프로그램들이 해군기지 반대 싸움을 해오는 동안 주민들에게 생긴 오래된 상처를 씻어내고 아물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치유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사람의 마음이 건강하게 치유되어야 이웃 간 쌓인 불신과 분노의 벽도 사라지고 마을 전통도 되살아날 것이란 생각이다.

강 회장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서너 시간. 4년 동안 마을회장을 맡으면서 갖은 협박과 회유를 받았다. "가족들 목숨은 생각하지 않나"라는 협박은 차라리 가소로웠다. "해군기지 찬성 입장을 배려해주면 편히 살게 해줄 테니 챙겨서 뜨라"는 회유엔 모멸감을 느꼈다. "사람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가치 하나는 지키고 살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친구 만나면 술 한 잔 나누고 힘들 때 옆에서 도와주고…. 이웃끼리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평화라고 생각해요. 강정은 제주의 어떤 지역보다 신으로부터 좋은 환경을 물려받았습니다. 이것을 함께 누리면서 주어진 생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가는 것이 행복일겁니다. 근데 국민들 재산과 안녕, 행복을 지켜줘야 할 군대가 이걸 깨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싸울 수밖에요."

그는 여전히 설득당하고 싶다. 정부와 해군, 제주도가 반대하는 주민들을 대화로 설득한다면, 그래서 주민들이 동의한다면 언제든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접을 뜻이 있다는 것이다. 진정어린 대화로 주민들을 설득하기 보다 힘으로 밀어붙일 궁리만 하는 행태가 한심스러울 뿐이다.

"우리는 국책사업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왜냐고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을 뿐입니다. 제주도 강정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게 이익인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을 지키는 것이 이익인가. 제주도를 '평화의 섬'이라고 하는데 해군기지가 제주도를 '평화의 메카'로 만들어 주는 시설인가 아닌가. 지역경제 활성화 측면을 따지더라도 군사기지가 들어서는 것이 관광객 유치에 유리한가 아니면 지금의 자연유산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관광산업 활성화에 유리한가.세계 7대 경관 도전한다면서 세계자연유산을 없애고 군사기지를 만든다는 것이 국제적으로 설득력이 있는가…."

그와 주민들이 던지고 있는 의문부호에 대한 답을 이제 정부와 해군, 제주도가 해줄 차례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제주도 #강동균 #유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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