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인들의 내무생활 지침을 담은 '군대내무서'(1908년 제정, 1943년 군대내무령으로 대폭 개정)에서는 군대를 '一大家族'으로 간주했다.
오마이뉴스
복장상태, 병기손질, 내무생활, 태도 등 장병들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 장교는 부사관을 구타하고 부사관은 고참병을, 고참병은 신참병을 구타하는 폭력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상급자가 지시한 것에는 옳고 그름을 떠나 일체의 비판과 질문은 허용되지 않았다. 군인들의 내무생활 지침을 담은 '군대내무령'(1908년 제정된 '군대내무서'를 1943년에 개정)은 11항에서 "명령은 겸손하게 지키고 실행한다. 결코 당부당을 논하거나 그 원인과 이유 등을 질문하는 것을 불허한다"고 명기되어 있을 정도였다.
폭력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일본군을 갉아 먹었다. 병사들은 아침, 저녁으로 군인칙유에서부터 군대내무령까지 갖가지 암기사항을 기계적으로 외워야 했다. 또 몸이 아픈 것은 정신상태가 해이해진 것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져 '기합을 넣는다'는 미명하에 또다시 폭력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육체적, 정신적 측면에서 노예 상태에 다름 아니었던 일본군대의 강요된 군기는 강제력이 사라지면 여지없이 붕괴했다. 강제력이 없어졌을 때 자발성이 결여된 병사의 전투의지 또한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군의 병영문화 속에는 해방 전의 일본군 폐습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편제와 제도는 미군의 그것을 차용했으면서도, 고압적 군대문화를 가진 옛 일본군 출신들이 군 창설을 주도했던 까닭이다.
역설적이게도 정작 우리에게 악습을 남겨주었던 일본의 병영문화는 과거와 사뭇 달라진 지 오래다. 현재 일본 자위대의 모습에서 옛 일본군의 고질적 폐습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구습에서 '환골탈태'한 자위대... 병사끼리는 경례 않는 미군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일본은 자위대의 전신인 경찰예비대를 만들면서 철저한 인적청산으로 옛 일본군 장교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또한 서구식 '문민통제' 원칙에 따라 경찰예비대의 참모조직을 모두 경찰 등 민간인으로 채웠다. 이와 함께 모병제를 채택한 자위대가 대원 확보를 위해 벌여온 '매력 있는 자위대 만들기'는 억압적 문화를 없애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 개인의 자유와 개성, 인권 존중 의식이 뿌리내리고, 숙소 등 병영생활 여건이 크게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형식상 정식 군대가 아닌 자위대와 남북대치 상태에 있는 한국군을 기계적으로 비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과거 비인간적인 구타와 가혹행위가 일상화되었던 옛 일본군의 모습에서 '환골탈태'해 새로 태어날 수 있었던 자위대의 의식적 노력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겸허하게 경청해봄 직하다.
또 사적관계에서는 위계질서를 따지지 않는 미군의 병영문화도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미군의 경우 장교에게만 경례를 하고 이병에서 상사까지 서로 경례하지 않는다. 미군은 직책에 의한 지휘 계통을 철저히 확립하고 있고, 병사들끼리는 서로 간섭을 최소화하고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구조여서 사적 제재는 필요하지도 않고, 발붙일 공간도 없다. 일각에서 주장하듯 병영문화가 바뀐다고 해서 전투력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미군의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다.
해병대 총기사건이 보여주듯 우리 군에서는 아직도 '고참은 하느님과 동기다', '억울하면 군대 일찍 오지 그랬느냐'는 식의 비합리적 의식이 남아 있고, 이것이 구타와 가혹행위, 집단 따돌림의 배경이 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정부 당시 '군인복무 기본법'을 추진하는 과정이 보여주 듯 '병장과 이등병이 서로 친구 하자는 것이냐', '군대를 보이스카우트로 만들려는 것이냐'는 등의 시각이 군은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도 폭넓게 깔려 있어 병영문화 개선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남아있는 한 군내 폭력 근절을 위한 군 당국의 거듭된 다짐도 결국 구두선(口頭禪)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군 기강과 병사의 인권을 대립적 개념으로 파악하는 군 수뇌부의 인식전환과 아울러 국민적 관심과 이해로 군이 시대적, 사회적 변화에 맞게 스스로 변화하도록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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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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