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쇠못 박힌 아들, 엄마는 '미친여자' 됐다

[기획-폭력으로 녹슨 국방①] 군 사망률 획기적으로 낮춘 타이완... 수뇌부 인권 의식 바뀌어야

등록 2011.07.16 11:07수정 2011.07.2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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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와 가혹행위는 군기강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악일까? 최근 해병대 총기사건을 계기로 폭력적인 병영문화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오마이뉴스>는 '폭력으로 녹슨 국방' 기획 기사를 통해 전근대적인 한국군의 현실을 고발하고 대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편집자말]
 의문사'로 아들을 군에서 잃고 군 인권운동가로 변신한 타이완 '군인의 어머니' 첸피에씨.

의문사'로 아들을 군에서 잃고 군 인권운동가로 변신한 타이완 '군인의 어머니' 첸피에씨. ⓒ 연합뉴스


지난 1995년 6월 15일 중국 푸젠성 근해에서 조업 중이던 어부들이 바다에 떠 있는 한 타이완 해군 수병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 수병의 이름은 '후앙궈장', 타이완 군은 시신이 발견되기 전 가족들에게 함상 근무 중이던 후앙궈장이 군 복무에 염증을 느껴 바다에 투신했다고 통보했던 터였다. 하지만 발견된 시신의 두개골에는 긴 쇠못이 박혀 있었다.

아들의 죽음은 평생 가정주부로만 살아온 어머니를 인권운동가로 변모 시켰다. 후앙궈장의 어머니 첸피에씨는 이때부터 '후앙마마(황씨 성을 가진 아이의 엄마라는 뜻)'라고 불리며 아들의 사인 규명과 함께 병영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 타이완 국방부를 찾아가 항의할 때마다 수갑이 채워진 채로 끌려나오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미친 여자'란 말이 그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후앙마마는 미인가 단파 라디오 방송을 통해 끊임없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국방장관의 외부 행사마다 쫓아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 군에서 의문사를 당한 같은 처지의 피해자들을 모아 '군중인권촉진회'를 만들어 힘을 모았다. 이러길 5년, 마침내 그 끈질긴 활동은 작은 결실을 맺었다. 1999년 9월 타이완 국방부가 첸씨를 장병들의 인권과 관련하여 국방정책의 입안과 집행을 감독하는 권한을 가진 '관병권익보장위원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한 것이다(하지만 아들 후앙궈장의 사인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타이완, '후앙마마'의 투쟁이 가져온 병영문화 개선

그가 활동하는 군중인권촉진회는 군에 입대하는 장병들에게 인권촉진카드를 나눠준다. 이 카드에는 상관이나 선임병으로부터 폭행이나 가혹행위를 당하면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되어 있다. 또 후앙마마의 전화번호는 대만의 각 부대 막사에 헌병대 등 폭행사건 처리를 담당하는 군의 공식기구의 전화번호와 함께 나란히 붙어 있다. 타이완 국방부는 아예 이런 사건 처리를 위해 군중인권촉진회와 바로 연결되는 직통전화까지 설치했다. 여기에는 첸씨를 '훼방꾼', '상습민원 제기자' 정도로 여기던 타이완 군 당국의 인식의 전환이 있었다.

첸씨는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군이 사망 사건을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 대만 군내 사망자는 1995년 408명, 1999년 270여 명, 2002년 200명 등으로 꾸준히 줄었고 현재는 100여 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군 폭력을 근절하려는 이런 노력과 함께 타이완 군의 사망률이 낮아진 시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949년 국민당 정부가 본토에서 쫓겨 온 이래 타이완은 90년대 중반까지 2000여만 명의 인구로 한국군에 조금 못 미치는 60만 명의 대군을 유지해온 병영국가였다. 군 인권 문제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어서 매일 한, 두 명 꼴의 사망자가 군에서 발생했다. 경직되고 방만한 군 조직 탓에 군의 자살률이 사회의 3~5배에 이르고 군 의문사도 자주 발생해 결과적으로 군대의 질적 하락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런 상황은 국민당에서 민진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타이완 군은 2000년대 초 단계적으로 병력을 60만에서 45만 이하로 감축하는 대대적인 감군을 실현했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과의 민간 차원의 경제협력 활성화, 자유로운 왕래 등으로 인한 양안관계 개선이라는 측면도 있었지만, 12억 인구의 중국을 상대해야 하는 타이완이 병력 수보다는 장비를 현대화하는 것이 국방력 향상에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타이완이 도입한 대체복무, 현역 병사의 복무 여건도 개선시켜

감군은 병사의 복무 기간 단축뿐 아니라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을 가능케 했다. 타이완 병역제도에서 신체 등급은 현역, 체대역, 면제로 나뉘는데 현역 판정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대체복무를 원하는 사람은 체대역을 신청할 수 있다.

사회치안, 사회복지, 의료, 교육 등 민간 분야에서 근무하는 대체복무자의 경우 현역 병사(1년)에 비해 복무기간이 두 배 정도 길다. 현역 판정을 받은 사람이 체대역 복무 지원을 할 경우에는 2년, 체대역으로 분류된 사람이 체대역 복무를 할 경우에는 1년 10개월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 같이 종교 등의 사유로 징집입영을 거부하고, 체대역으로 복무를 할 경우에는 2년 2개월을 복무해야 한다.


대체복무제 시행 초기에는 병역기피 풍조 확산과 안보위협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으나 대체복무의 강도가 세고 기간도 길기 때문에 봉사분야 편중 외에 별다른 부작용 없이 복지환경과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가져왔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또 대체복무제는 현역 병사의 복무여건을 개선하고 일선 지휘관들의 지휘부담도 줄여주는 효과도 가져왔다.

타이완 중앙연구원의 첸신민 교수는 군대와 대체복무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때 "현역으로 온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하여 복무하기 때문에 군대 생활에 더 잘 적응하게 되고, 군대 역시 통제가 용이해짐에 따라 구타 등 폭력 사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타이완의 대체복무제 실태를 조사했던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 역시 "현역 복무부적격자들이나 신체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대체복무로 걸러질 뿐 아니라, 일단 대체복무와 현역 중에서 일정한 선택의 기회를 준 뒤 현역에 응한 사람들만으로 군을 운용하다 보니 사병들의 복무적응도도 크게 향상되었다"며 "그 결과 군에서도 자살, 의문사, 각종 안전사고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퇴행적 행태 보인 MB의 국방부


a  강화도 해병대 해안소초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로 희생된 고 이승훈 중사, 고 이승렬 병장, 고 박치현 병장, 고 권승혁 상병의 합동영결식이 6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 연병장에서 해병대사령부 주관으로 열렸다. 관이 모두 운구차량에 실린 가운데 고 이승렬 병장의 어머니가 아들의 영정사진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화도 해병대 해안소초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로 희생된 고 이승훈 중사, 고 이승렬 병장, 고 박치현 병장, 고 권승혁 상병의 합동영결식이 6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 연병장에서 해병대사령부 주관으로 열렸다. 관이 모두 운구차량에 실린 가운데 고 이승렬 병장의 어머니가 아들의 영정사진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종교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 도입을 정부에 권고한 데 이어 2007년 국방부도 '병역이행 관련 소수자의 사회복무제 편입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국방부는 이를 백지화시켰다. 여론조사 결과 시기상조라고 판단되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런 국방부의 태도는 애초에 이 제도를 도입하려는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여론조사도 그에 맞게 실시한 것이라는 시민사회의 반발을 불러왔다. 또 불온서적 리스트 지정 파문, 고교 역사 교과서 수정요구 등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국방부가 보여 온 일련의 퇴행적 움직임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의 첫 국방장관인 이상희 장관은 '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오늘밤 싸워라)'과 '군 재조형(Reshaping)'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전투형 부대 육성을 부르짖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정부에서 강조되던 군 인권 관련 프로그램 등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장병 인권 증진과 새로운 병영문화 정착을 그 목적으로 지난 정부에서 입법예고까지 했던 '군인복무 기본법안'도 국방부가 소극적 태도를 보이면서 17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 군 수뇌부 보신주의


13일 국회 국방위원회 송영선(미래희망연대) 의원이 공개한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군에서는 2009년부터 올해 6월30일까지 3년간 모두 29건의 총기사고가 발생했으며 이 가운데 22건이 총기를 이용한 자살로 나타났다. 또 국방부가 낸 통계자료에는 최근 5년간 군내 자살률과 자살자 수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상이 이런데도 이 대통령은 12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해병대 사건 원인과 관련, "체벌 자체보다도 자유롭게 자란 아이들이 군에 들어가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더 큰 원인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언급은 총기사건의 원인을 기수 열외나 구타 등 해병대의 구조적인 문제보다 병사 개인의 부적응에서 찾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논란을 일으켰다.

결국 이런 대통령의 인식수준은 '일단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군 수뇌부의 보신주의의 배경이 되고 있다. 지난 2005년 6월 19일 경기도 연천의 육군 28사단 530 GP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사건 때는 발생 사흘 만에 윤광웅 국방장관이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가 반려됐지만, 이번에는 사건 발생 열흘이 지나도록 책임지겠다는 군 고위관계자가 한 사람도 없다가 비판여론이 비등하기 시작한 14일에야 해병대 사령관이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지겠다"는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군내 폭력의 척도는 바로 그 사회의 민주주의의 성숙 정도와 정비례한다고 지적한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총기사건과 자살사고의 저변에 깔려 있는 군 폭력은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퇴행적 움직임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병대 총기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전면으로 떠오른 군내 폭력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군 기강과 인권을 대립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 군 당국의 인식 전환과 더불어 실용주의적 접근을 통해 군대 내 인권 상황도 개선한 타이완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군 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의 지적이다.
#총기사건 #군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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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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