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겉그림〈십자군 이야기1〉
문학동네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를 보면 그야말로 웅장한 그림 하나가 등장한다. 거대한 십자군 무리들이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벅찬 감동에 전율하는 게 그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북유럽에서부터 먼 길을 거쳐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당도했으니,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나미는 그들 십자군 부대가 이슬람을 곧바로 공격하지 않고, 십자가를 앞세우고 줄지어 찬송가를 부르며 성벽 아래를 행진했다고 말한다.
더욱이 제 5차 십자군과 관련된 휴전 체결 이후, 술탄을 방문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의 손짓을 보여주는 판화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수도사들은 대부분의 십자군 전투에 참전하여, 병사들을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게 의무였다. 이탈리아 출신인 성 프란체스코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적 대장 술탄에게 직접 찾아갔던 것이다.
"당신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기 위해 신이 보내서 왔노라고 말하는 수도사에게 술탄도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을 그만두고 평화를 확립하는 길이라며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것을 권유하는 젊은 수도사에게 술탄 휘하 사람들은 더할 수 없이 격양했다. 그러나 술탄은 미소 지으며 수도사를 그리스도교군 진영으로 무사히 돌려보내라고 명령했다."(140쪽)다시 <십자군 이야기1>로 돌아와, 1099년 7월 15일에 드디어 십자군 부대가 예루살렘 성읍을 탈환하게 된다. 그야말로 원정을 떠난 지 3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었는데, 문제는 그 이후에 나타난다. 성을 점령하기 전까지는 서로가 한 데 뭉쳐서 하나로 공략해 들어갔지만, 성을 함락시킨 이후 18년 동안의 주도권 다툼이 그것이다. 더욱이 십자군을 제창한 교황 우르바누스 2세도 성지 탈환 소식을 접하지 못한 채 죽었기에, 더욱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대주교가 열중했던 것은, 예루살렘에 감추어져 있다고 전해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혔던 십자가였다. 사실은 그저 평범한 나뭇조각에 지나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이 나뭇조각을 끼워 맞춘 십자가는 '성십자가'(True Cross)로 불리며 이후 십자군이 군사행동을 할 때면 어디에나 받쳐 들고 다니게 된다."(243쪽)이 이야기가 내게는 너무 재밌게 다가 왔다. 물론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경외감을 불러 일으켰을 법하다. 어쩌면 이때 발견된 나무 십자가 덕에 1571년 때까지, 최초의 십자군으로부터 5백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레파톤 해전까지, 피 터지는 전투에 임했는지도 모른다. 본래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힌 십자가는 자유와 해방의 십자가였다. 하지만 교황과 결탁한 권력의 수뇌부들은 그 당시의 나무 십자가를 그처럼 전쟁을 위한 십자가로 미화시켰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도 집단 이기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귀스타브 도레 그림, 차용구 감수,
문학동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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