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스산한 도시로 변해버린 서울 강남 1번지

[현장] 폭우가 할퀴고 간 강남역 일대 돌아보니

등록 2011.07.28 08:42수정 2011.07.2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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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3시 경 강남역 일대 모습. 물이 빠진 자리엔 토사가 남아있다.
 오후 3시 경 강남역 일대 모습. 물이 빠진 자리엔 토사가 남아있다.이주영

지난 27일 오후 3시.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일대엔 약간의 비만 내리고 있었다. 도로에 가득 찼던 물은 빠지고 갈색 빛 토사만 길 곳곳에 남았다. 몇몇 건물에서 굵은 호스를 통해 흙탕물을 인도로 흘려보냈다. 시민들은 짜증을 내며 까치발을 딛고, 흙탕물 사이를 헤쳐 나갔다.


침수 피해가 컸다는 삼성 본관 주변으로 향했다. 본관 앞 도로가 다른 길에 비해 지저분했다. 침수를 막으려 했던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삼성 본관 지하로 내려가 봤다. 어느새 정리가 됐는지 말끔했다.

강남역 지하상가와 연결된 통로로 나왔다. 상가 전체는 어두컴컴했다. 통로 조명등만 켜져 있다. 점포 대부분은 셔터로 굳게 닫혀있었다. 구역마다 한두 곳 정도 어두운 상태에서 장사를 했다. 이날 오전 8시께 이곳 지하상가 전체가 정전됐다. 이들 상가 출입문은 자동으로 작동되기 때문에 전기 공급이 필요하다. 전기가 끊어지기 전에 영업을 시작한 몇몇 점포만 가까스로 문을 열어 놓은 상태였다.

지하철 2호선 개찰구 쪽으로 가봤다. 굉장히 환했다. 개찰구 주변 편의점, 액세서리 전문점엔 멀쩡히 전기가 들어와 있었다. 편의점 주인은 "여기는 서울메트로에서 관리하는 구역이라 전기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곳과 지하상가 쪽과 관할하는 곳이 서로 다르다는 이야기다. 서울도시공사 쪽에서 관할하는 곳만 전기 공급이 중단됐다는 것.

강남역 지하상가, 정전돼서 영업 못해

  27일 오후 5시경 강남역지하상가의 점포 대부분이 영업을 하지 않았다. 이날 오전 8시경 서울도시공사 구역에 속한 강남역지하상가 일대가 정전됐다.
 27일 오후 5시경 강남역지하상가의 점포 대부분이 영업을 하지 않았다. 이날 오전 8시경 서울도시공사 구역에 속한 강남역지하상가 일대가 정전됐다. 이주영

2호선 7번 출구 길목에 있는 신발가게는 통로 조명 아래 가까이 물건을 진열해 놓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가게 주인은 "운 좋게 정전 전에 셔터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울도시공사 측이 복구해주기 전까지 어떻게든 장사 좀 해보려고 했는데…"라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1번 출구 근처에서 영업을 하는 또 다른 신발가게 주인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것보다 더 장사가 잘 돼야 하는데…"라며 "정전이 돼서 사람들 발길도 끊겼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옆 옷 가게에선 셔터 문을 내리려 했다. 가게 주인은 어두컴컴해서 보이질 않으니 애초부터 장사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세도 비싼데… 오늘 돈을 못 벌어서 큰일이네요"라며 허리에 손을 얹은 채 허공을 바라봤다. 옆에 있던 남자는 "도시공사 측에서 최대한 빨리 복구를 해준다고 방송을 하고 있다"며 "오늘 밤 늦은 시간에나 복구될 듯하다"고 답했다.

지하상가를 더 돌아봤다. 한 남자가 휴대전화 가게의 문을 손으로 직접 열었다. 그리곤 곧장 그 사이로 들어갔다. 기자가 궁금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옆에 있던 가게 주인이 "안에 물에 샜는지 확인해보려는 것"이라 설명했다. 뒤늦게 침수 피해 등을 알아보기 위해서 상점 주인들이 직접 문을 열어, 걸레 등으로 바닥을 닦거나 상품 등을 정리하고 있었다.

  27일 오후 5시경 강남역 일대에 한 차례 더 집중 호우가 내렸다. 골목 언덕길로 빗물이 세차게 흘러내려가고 있다.
 27일 오후 5시경 강남역 일대에 한 차례 더 집중 호우가 내렸다. 골목 언덕길로 빗물이 세차게 흘러내려가고 있다.이주영


지하상가에서 다시 지상으로 올라갔다. 잠잠했던 비가 다시 세차게 내렸다. 골목 언덕길에서 물이 급격히 흘러내려왔다. 금세 도보 위로 물이 불어났다. 기자의 신발도 흠뻑 젖어버렸다. 레인부츠를 사기 위해 한 잡화점에 들어갔다.

입구 바로 앞엔 고작 세 켤레의 레인부츠만 진열돼 있었다. 점원은 "전부 품절되고 이것만 남았다"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거리로 나가보니 많은 여자들이 레인부츠를 신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오후 6시께.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졌다. 기상청은 27일 밤 한 차례 더 집중호우가 있을 것이라 예보했다. 평소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강남역 일대는 어두컴컴하고, 스산한 거리로 변해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주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14기 인턴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주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14기 인턴입니다.
#강남역 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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