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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디디에 드쿠앵의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등록 2011.07.28 10:20수정 2011.07.2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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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책표지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서재호
▲ 책표지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 서재호
1964년 3월 14일. <뉴욕타임스>의 구석진 12면에 짤막한 기사가 몇 줄 실렸다.
 
'퀸즈구역: 한 동네 주민 아가씨가 집 앞에서 칼에 찔려 숨지다.'
기사는 간단했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불필요한 듯 보였다.  이곳은 해마다 1만여 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뉴욕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아가씨를 살해한 범인은 일주일쯤 후에 체포되었고 모든 범행사실도 자백했다.
이 사건은 보도될 때 보다 더 빨리 잊혀져 가는 듯 했다.
 
그러나 잊혀져 가던 이 사건은 3월27일부터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사건이 일어난 날로부터 14일이 되는 날이었다. 사건을 처음 보도했던  <뉴욕타임즈>는 다시 이 사건을 다루기 시작했다.  그것도 1면에 크고 상세하게 실었다.
 
'한 여자가 30분 넘게 살인범에게 쫓기며 칼에 찔리는 동안 서른여덟 명의 퀸즈 구역 주민들은 지켜보기만 했다.'  이후 이 문장은 미국의 모든 신문들에 인용되기 시작했다.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그 증인들은 서른여덟명이다. 서른여덟명의 증인, 남자와 여자들이 30분 넘는 시간동안 제노비스라는 젊은 여자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따뜻한 집안에서! 어떤 이들은 담요로 몸을 꽁꽁 싸맨 채, 또 어떤 이들은 실내복까지 걸쳐 입으면서.  하지만 그중 어느 누구도 가엾은 여자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조차도.  그중 한명이 마침내 경찰에 전화를 걸기로 했다. 경찰은 그다지 멀지않은 곳에서 순찰 중이었다. 2분이면 사건 현장에 출동하기에 충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땐 너무 늦었다.'
 
이 기사를 작성한 마틴 캔스버그 기자의 기사는 심층탐사 보도의 전범이 되었다.  이후 사회심리학에선 피살자 제노비스의 이름을 딴 '제노비스 신드롬'(방관자 효과)란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사건 때문에 미국에서 긴급구조 911이라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다시 그날로 되돌아 가보자 . 사건이 일어난 1964년 3월13일 새벽으로 말이다.
키티 제노비스는 이날도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제노비스는 꿈이 있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중산층 가정 장녀인 그녀에게는 실현가능해 보이는 꿈이었다.
 
조만간에 아버지와 함께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여는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키 155센티미터의 키에 55킬로그램의 작은 체구였지만 사업에 대한 열정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목표를 위해서 성실했고 최선을 다해 일했다.  오늘도 평소처럼 새벽까지 인근마을의 바에서 매니저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집이 가까워질 때까지 자신의 뒤를 은밀히 따라오는 흰색 코베어 승용차를 눈치 채지 못했다.  흰색 코베어 승용차 안에는 진정한 사냥꾼 윈스턴 모즐리가 타고 있었다.  지난 몇 개월간 세 명의 젊은 여성을 살해한 모즐리는 이날 네 번째 먹이 감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는 사냥꾼이었다. 20대 후반의 흑인 남성인 모즐리는 시체애호가였다. 낮엔 천공기 회사에서 모범적인 직원이었고 가정에서는 성실한 남편이었다. 단지 그는 밤의 생활이 남들과 달랐을 뿐이었다. 밤이 되고 그의 아내가 잠들고 나면 묘한 활력과 흥분을 느꼈다. 그 흥분과 쾌감을 위해 그는 기꺼이 밤거리를 나서곤 했다. 밤거리를 나서는 모즐리에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 그는 살아있는 여성에게선 성욕을 느낄 수 없었고 자신이 만족하기 위해서는 어떤 여성인가는 죽어줘야만 했다.
 
그는 진정한 포식자였다.  백인이건 흑인이건 가리지 않았다.  희생자 중엔 십대의 어린 여자아이도 있었고 아이 엄마도 있었다.  여성의 외모도 상관이 없었다. 필요한건 단지 여성이기만 하면 되었다.  자신의 서식지에 인접해서 살고 있는 '죽일 여성'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집근처 골목을 걷던 제노비스가 등 뒤의 이상한 느낌을 눈치 챘을 땐 이미 늦고 말았다. 타겟의 등 뒤에서 조용히 다가가는 게 모즐리가 즐기는 전략이었다.  제노비스는 서둘렀다. 30미터만 더 뛰어가면 경찰을 호출하는 비상호출기가 있었지만 불과 10여 미터를 앞에 두고 등 뒤에서 남자의 긴 칼이 척추부위를 뚫고 들어오는 걸 느꼈다.
 
칼에 찔린 제노비스는 비틀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커진 눈으로 물었다. " 왜?... "
하지만 제조비스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남자는 묵묵히 칼을 찌르고 또 찌르는 일에만 열중했다.  맨손의 제노비스는 자신의 마을에서 자기 집 현관을 앞에 두고 살인귀와의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했다. 이때가 새벽 3시 20분이었다.
 
제노비스는 살기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했다. 도망가고 피하며 소리치고, 넘어지고 또 도망가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도와주세요!", "누구 없어요?", "누가 날 죽이려고 해요."
 
골목 여기저기 집과 가게에서 불이 켜졌지만 아무도 구하러 내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등과 가슴에 점점 피가 번지고 흘러내렸다. 17군데에 찔리는 동안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지만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의식이 희미해지는 가운데 필사적으로 자신의 집 계단을 기어 올라가 현관문을 열었지만 그녀의 뒤에는 날이 긴 칼을 든 살인마가 여유롭게 현관을 따라 들어왔다.  그녀 집근처 이웃 건물들에선 창가에 커텐이 열어 제쳐 지기도 했고 사람의 실루엣이 어른거리긴 했지만 내려와 보는 이웃은 한명도 없었다.  최초의 비명소리로부터 30분가량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이웃들은 ?
 
제노비스의 집 현관 안에까지 따라 들어온 살인귀 모즐리가 마지막 의식을 준비하는 동안 마을의 이웃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세기의 재판이 된 제노비스 사건 법정에서는 당시의 이웃들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비명소리를 듣거나 창문너머로 내려다본 38명의 증인 모두가 출석하진 않았지만 출석한 증인들은 당시의 상황을 비교적 담담하고 상세하게 진술했다.
 
"소리는 들렸지만 그날 밤 너무 추워서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싶지는 않았어요."
"비명소리라는 건 알았지만 그 소리가 싫어 라디오를 켜고 볼륨을 높여버렸죠"
"처음엔 고양이 떼 소린 줄 알았어요.  남편이 이상하다고 내려 가보려 했지만 내가 말렸어요. 우리와 관련도 없는 일에 개입 되는 게 싫었어요."
 
"저는 전화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경찰에 신고를 하는 대신 여자 친구에게 먼저 걸었어요. 제 여자 친구는 깊이 잠들어 있어서 전화를 받을 때 까지 시간이 꽤 걸렸죠.  우리는 서로에 대한 안부를 물었고 그 다음에 제가 본 장면에 대해 여자 친구에게 설명했어요. 그리고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봤죠.  여자 친구는 그때 제게 명령조로 말했어요. 아무것도 하지마!"
 
이웃주민들이 머뭇거리거나 모른척하고 다시 잠을 청하려 할 때 제노비스의 집안에서는 살인귀 모즐리가 가장 좋아하는 일 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마지막 숨이 넘어가던 제노비스의 동공에 무언가 비쳤다. 그건 모즐리가 자신의 성기를 꺼내는 모습이었다. 모즐리는 이 순간 항상 장갑을 끼는 것을 좋아했다.  깨끗한 장갑을 낀 손으로 제노비스의 옷을 정성들여 벗겨낸 후 강간하기 시작했다.  모즐리가 시신의 몸 위에서 성스러운 흥분동작을 반복하는 동안 제노비스의 목 상처에선 분홍색 거품이 부글거리며 끓어 흘러내렸다.
 
열중해서 흥분의 시간을 보내던 모즐리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제노비스가 생리중인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무척 화가 난 모즐리는 생리를 하는 것에 대해 벌을 주기로 했고 옆에 있던 긴 칼을 여자의 질 안으로 최대한 깊숙이 쑤셔 넣었다.
 
새벽 3시 50분. 모즐리는 뒤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최대한 주변을 신속하게 정리한 후 그 집을 빠져나왔다.  피살자집의 현관문을 나서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이웃들에게선 어떤 의미 있는 움직임도 없었다.  모즐리는 만족했다.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와 자신의 흰색 코베어를 탔고, 아내가 잠들어 있는 자신의 집으로 여유 있게 돌아올 수 있었다. 아내는  여전히 편안히 잠들어 있었다.
 
범인의 체포, 그러나
 
범인은 전혀 엉뚱한 계기로 체포되었다.  이 고상한 살인마에겐 좀 지저분한 취미도 있었나보다.  가끔은 빈집을 털어 가전제품을 훔치곤 했으니까. 제노비스를 살해한 후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다. 인근 마을의 어떤 집에서 텔레비전을 훔치던 모즐리는 이웃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 마을의 이웃들은 제노비스 마을의 이웃들보다 훨씬 신고정신이 투절했나보다.
 
모즐리는 경찰서에서 심문을 받을 때 TV를 훔친 사실뿐 아니라 살인에 대해서도 담담히 실토했다.  그는 살인자였지 거짓말쟁이는 아니었다.  그는 구변도 좋은 사람이었다. 또렷한 목소리로 명확하게 자기의사를 표현할 줄 알았다. 경찰이나 배심원단 앞에서 침착하지 못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무언가를 감추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모즐리는 전혀 감출 이유가 없었다. 그는 모든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걸 표현 할 줄도 알았다. 법정에서의 진술도 그러했다. 그는 자신이 죽인 여자들에 대한 대목에서도 성실하고 친절하게 답했다.
 
"한참동안 그 여자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몸에 칼을 쑤셔 넣었습니다. 하지만 칼로 찌르는 동안 여자가 하도 몸을 비틀어서 칼날이 다시 빠져나왔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입을 막고 다시 또 다시 칼로 찔렀습니다."
" 그 사건 후로 바바라 클랙릭에게 한 일을 후회하십니까?"
" 아니요."
" 그러니까 ... 뭐라고 할까? ...  그녀에 대해 어떤 연민 같은 게 느껴지나요?"
" 아니요."
" 애니 매이 존슨이란 여성의 경우 가슴에 이미 총 두발을 쏘았는데 왜 등에 네 발을 더     쏘았습니까?"
" 완전히 죽이려고요."
" 바바라 클랙릭은 왜 그렇게 여러 번 칼로 찔렀습니까?"
" 죽이고 싶었으니까요. 한번으로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 애니 메이 존슨에게 아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않았습니까?"
"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마을에는 언제나 '이웃'이 있다.
 
1964년 6월15일 재판의 결심이 있었다.  모즐리는 1급 살인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사형이 선고되고 뉴욕주의 아티카 교도소에 수감되었지만 3년 만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말이 무기징역이지 확정 구금기간은 20년이었다. 그건 모즐리에게 희망적인 의미를 가진다. 감옥에서 성실하게 생활한다면 20년 후 부터는 가석방을 신청할 자격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모즐리에게는 20년을 기다릴 인내심이 부족했었나 보다. 탈출을 시도했다. 항문 속에 금속물질을 집어넣어 복막염을 일으켰다. 공중보건의 구급차로 인근병원으로 실려가던 중 탈출에 성공했다.
 
탈출 후 한 가정집에 침입해 어리둥절해 하는 그 집 남편을 때려 제압했다.  머리를 너무 맞아 피를 흘리고 쓰러진 남편을 옆에 두고 모즐리는 그의 아내를 강간했다.  남편은 의식이 있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의 집이었지만 그곳의 주인은 더 이상 그 집 남편이 아니었다.  남편은 거실에 쓰러진 채로 아내가 겪어야 하는 모든 걸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아내는 경찰이 모즐리를 찾아낼 때까지 오래 동안 폭행당하고 여러 번 강간당해야 했다.
 
모즐리는 다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그도 가석방 요청을 처리하는 위원회에 출두하기 시작했다. 그가 하는 말은 주로 이런 말이었다.
" 전 이제 과거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죠 ... "
 
그는 어쩌면 다시 풀려날지 모른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의사표현을 분명히 할 줄 알았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출소한다면 다시 사회로 돌아 갈 것이다. 언제나처럼 '이웃'들이 있는 마을로 말이다.
 
이제 이 책을 덮을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은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다른 보통의 유사 '팩션' 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저자는 피살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나 살인자의 프로필링 보다 더 관심을 가지는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그 현장, 그 공간에 사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 한 것이리라.  '이웃' 들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이글을 끝내려는 순간 책의 말미에 있는 글귀가 눈길을 잡는다.
 
" 당신이 제노비스의 마을에 살았다면, 정말 비명소리가 나는 곳으로 내려가 봤을까?"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디디에 드쿠앵 지음, 양진성 옮김,
황금가지, 2011


#제노비스 #살인마 #이웃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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