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도전방송국에서 카메라테스트 받는 장면
이영미
어느날 딸이 TV를 보다가 "엄마도 한 번 해보지 그래?" 하고 무심하게 말했다. 뭔가 싶어 봤더니 빠르게 자막이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인앵커를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막연한 생각이 들다가 하루하루 지나면서 '그래도 해보자! 꼭 필요한 일이야!' 하는 의지가 다져졌다.
중증청각장애인인 나는 어느날 앵커에 도전해서 523명 중에 1차를 통과한 2차 합격자 30명 안에 들어서 카메라테스트를 받았다. 30명의 합격자 중에서 청각장애인은 나와 나보다 10살 연하의 우리나라 청각장애 박사 1호가 될 가능성이 큰 그녀 둘뿐이었다. 그리고 뉴스원고를 읽는 실무테스트도 받았는데 너무 가슴이 떨렸다.
나는 2차에서 떨어졌지만 그녀는 2차를 통과하고 3차에 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3차에 합격하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그녀도 3차에서 떨어지고 최종적으로 앵커에 합격된이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일단은 첫 합격자라도 나와서 반갑고 고마웠다. 그리고 내년에 또 뽑는다니 긍정적으로 여기고 나는 재수를 준비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자막수신기는 가히 혁명적이다. 아직도 많은 분야의 정보 전달에서 소외가 되고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세상의 소리를 눈으로 전달 받아 무척 고마웠다. 마치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번역기로 세상의 모든 글자들을 눈 대신 손으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소리를 귀대신 눈으로 전달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물질문명의 긍정적인 결과이다.
그러나 여전히 청각장애인은 세상의 소리 밖에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대가 살아있어도 청각장애이기 때문에 언어장애라는 복합장애의 틀에서 갇혀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환경은 현실적인 청각장애 이유보다, 청각장애이기 때문에 끼리끼리 사회와 동떨어져 살게끔 유도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만들어진다. 이러한 사회 관념을 깨기 위해서는 청각장애인도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일반인처럼 말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례가 세상에 많이 전해져야 한다.
나만 해도 사회 생활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도 운보 김기창 화백이 방송에서 말이 어눌하긴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 보고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방송의 힘은 정말로 크다. 어떤 한 사람이 신호등처럼 모델 역할을 하는 것은 어둠 속에서 길찾기가 어려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과 같다.
그러나 심사위원은 이러한 청각장애인의 소리 전달에 대한 간절한 이유보다도 그냥
뉴스를 잘 전달하는 앵커를 뽑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장애인이지만 일반인보다 월등하거나 일반인처럼 뉴스를 잘 전달하는 그러한 전문직업인으로서 앵커가 필요한 것 같았다.
마치 여성장애인 고용창출을 위해서 여성장애인을 원하는 도로공사 인터체인지와 비슷한 경우라고 할까? 여성장애인을 고용하고 싶다면서도 여성장애인 표시가 나지 않는- 그러니까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뇌성마비 장애인 등은 제외하고 싶다는 - 여성장애인을 원했던 경우였다.
장애인 방송앵커를 모집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뉴스를 전달하는 그러한 전문능력에 더 점수를 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나 오해가 쏟아진다해도 재수하는 심정으로 내년에 다시 도전하고 싶다. 다시 도전하되 계획을 잘 짜서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하겠다. 퇴직 여자앵커에게 과외를 받고 말과 함께 동시 수화통역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전문농인에게도 과외를 받을 계획이다. 서울에는 앵커교육연구원이 있다고 하지만 청각장애인을 위한 맞춤교육은 없을 테니 말이다.
세상의 소리 밖에서 세상의 소리 안에 설 수 있는 청각장애인이 한 사람이라도 생긴다면 얼마나 많은 어린 청각장애아동들이 너도 나도 구화와 스피치 연습을 하게 될 것인가? 얼마나 많은 청각장애학생들이 일반인들의 세상에서 동화되어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겪어본 당사자가 아니면 이러한 간절한 바람을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