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정도는 만져야 이쁜 '아이'가 나오죠"

[인터뷰] 문래동 가구쟁이 '나무수레' 이경원씨... "작품 아닌 가구 만든다"

등록 2011.08.03 16:09수정 2011.08.0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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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어서 그만 둔거라기 보단, 삶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는 것 같았다. 방송 밑바닥 아르바이트에서부터 시작해 공중파 방송사에서 외주를 받는 형태의 영상편집까지 하게 되었다는 그는 34살 나이에 '목수'되기를 자청했다. "하다 보니깐 이건 내 직업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는, 이제는 자신을 '나무수레'라 불러주길 원한다는 이 사람. 문래동 '가구쟁이' 이경원(43·가구제작)씨 앞에서 기자는 그 삶의 '빛깔'에 압도당했다.


 문래동 가구쟁이 '나무수레' 이경원씨
문래동 가구쟁이 '나무수레' 이경원씨하자센터 달시장 블로그

'아이'를 가꾸는 아버지의 손

"결혼한 지 10년 정도 되었는데 아이가 없다"는 이씨의 나무 만지는 손길이 '부드럽다'. 기자에게 가구를 소개시켜 줄 때마다 그는 가구 한 점 한 점을 "아이"라고 부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영락없는, 사랑에 빠진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

그러나 자신은 한편으로 "가구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며 가구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는 기자의 시선에는 "그런 것까진 아니고 다른 사람보다는 좀 더 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맞다"고 애써 거리를 유지하려는 듯도 했다.

 작업 중인 이경원씨. 나무를 항상 '아이'라고 부른다
작업 중인 이경원씨. 나무를 항상 '아이'라고 부른다하자센터 달시장 블로그

"가구 하나를 만드는 데 2주에서 한 달 정도 걸린다"는 이씨는 "밴딩하고, 만지고, 숙성시키고, (한 달 정도는) 만져야 쓸 만한 가구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렇게 만들어 놓아야 가구가 '이쁘다'고.

한 번 만드는 것도 아니다. 본 제품을 만들기 전에 똑같은 작업으로 작은 형태의 축소모형, 소위 '목업'을 만든다.


"이것도 한 2주 정도 걸리긴 하지만 이런 걸 해봐야 좀 더 완성도를 높여서 만들죠."

CAD 같은 프로그램으로, 가상으로 돌려볼 수도 있는데 굳이 그렇게 한단다. 그냥, 공장에서 가구 만드는 목수는 아니다.


 그가 만든 가구들. 한 작품을 만드는데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가구는 아트마켓이나 인터넷을 통해 주문을 받는다.
그가 만든 가구들. 한 작품을 만드는데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가구는 아트마켓이나 인터넷을 통해 주문을 받는다.하자센터 달시장 블로그

나무를 싣고 어딘가로 가는 사람

예술가도, 공예가로도 불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을 '나무수레'라고, "나무를 수레에 담고 어딘가로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길 원한다는 이씨.

그 말을 듣고 있노라니 낡은 철제수레를 꼭 잡은 그의 때 묻은 두 손이 그려진다. 안경을 낀 부드러운 웃음 위로는 짙은 태양이 내리쬐고, 땀과 톱밥이 뒤섞여 엉겨 붙은 티셔츠. 그리고 다부진 두 팔에 들어간 힘까지. 수레를 끌어나가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노라니 미소가 떠오른다.

그것은 단순한 열정이라기 보다는 묵묵한 노력 같다. "억지로 정체성에 몰두해 혼을 불어넣지도" 작위적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하다보니 좋아서,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생계가 힘들 때도, 열심히 해도 잘 안될 때도 있지만" 이씨는 그 자리에서 계속 나무를 놓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온 지 10년. "원대한 꿈이라고 생각하면 집도 짓고 싶고, 언젠가는 귀농도 생각했지만, 찾아보니 길게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가구였다"고 이씨는 말한다.

 자신을 '나무수레'라고 이름붙인 이경원씨. 예전 작업실에 있던 문짝이다
자신을 '나무수레'라고 이름붙인 이경원씨. 예전 작업실에 있던 문짝이다하자센터 달시장 블로그

작품보단, 가구를 만드는 그만의 '매력'

어떤 가구를 만들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씨는 "가구를 만드는 사람이지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고 운을 뗐다. 그는 "그 사람에게 쓰기 편하게, 늘 봐도 안 질리게, 오래 쓸 수 있는 그런 가구"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오늘도 문래동 공방촌 한쪽 귀퉁이에서 이씨는 본드와 톱밥을 한가득 몸에 묻히리라. 그리고 나의 행복과 그 가구를 쓸 '남의 행복' 또한 생각하며, 다소 조금 삶이 고달파도 묵묵히 가구를 '한 땀, 한 땀' 새길 것이다. 진정 행복해보여서 좋았던 이씨. 그는 앞으로도 영락없이 '나무수레'를 이끄는 가구쟁이일 것이다.

 지난 5월 말 열린 영등포 지역마켓 달시장에 참여해 물품을 파는 이경원씨
지난 5월 말 열린 영등포 지역마켓 달시장에 참여해 물품을 파는 이경원씨하자센터 달시장 블로그

덧붙이는 글 | 하자센터 달시장 공식블로그(http://dalsijang.tistory.com)에서 발행한 영등포 지역 예술가 인터뷰입니다. 달시장 블로그는 정기적인 공유를 통해 오마이뉴스의 많은 독자들과도 예술가, 지역주민, 사회적기업가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하자센터 달시장 공식블로그(http://dalsijang.tistory.com)에서 발행한 영등포 지역 예술가 인터뷰입니다. 달시장 블로그는 정기적인 공유를 통해 오마이뉴스의 많은 독자들과도 예술가, 지역주민, 사회적기업가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하자센터 #문래동 #가구 #목공예 #이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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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우진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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