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열풍? 나랑은 참 안 맞더이다

25살 여대생의 내일로 여행기...불편한 좌석, 밀려드는 사람에 '좌불안석'

등록 2011.08.07 12:17수정 2011.08.3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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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로' 열풍이 불고 있다. 내일로 티켓은 한국철도공사 코레일에서 여름·겨울 시즌에 만25세 이하에게 판매하는 일주일 철도 프리패스권이다. 가격은 54,700원, 이 돈이면 7일동안 KTX를 제외한 모든 열차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젊은이들이 방학동안 학업이나 취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획상품으로 최근 그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데,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제 방학이면 수많은 청춘들이 열차에 몸을 싣는다.

나도 그 열풍에 동참해보기로 했다. 한국나이 25세로 어느덧 반오십, '내일로'의 만료시한이 다가오고 있었다. 후회는 남기고 싶지 않았다. 친구가 추천해 준 가이드북과 배낭을 가지고 길을 떠나기로 했다.

'초저가' 특별상품 내일로... 그러나

첫날(7월 26일)의 목적지는 부산이었다. 운좋게도 새마을호를 탔다. 역무원에게 내일로 티켓을 보여주니 다섯 번째 칸으로 안내해주었다. 나는 창가 쪽 어느 자리에 앉아 짐을 풀고 편하게 잠들어 이동했다. 그 때는 알지 못했다. 부산 가는 열차에서의 느긋함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것을.

'운좋게도' 새마을호를 탔다는 것은 단순히 더 넓은 좌석과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새마을호만 평일에 다섯 번째 칸이 자유석으로 제공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다음날부터는 보따리 싸기 혹은 더부살이의 연속이었다. 영주로 이동한 둘째날부터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쭉 무궁화호를 타고 이동했다. 자유석이 없는 무궁화호 열차에선 스스로 빈자리를 찾아 앉아야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자주 자리를 옮겼다. 삼십분 혹은 한시간 간격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오는 원 주인들에게 자리를 비켜줬다.

처음 한두 번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번 자리를 옮기다 보니 점점 피곤해졌다.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으리라 예상하지 못한 나의 실수도 있었을 것. 이런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니니 그러려니 해야지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연달아 자리를 옮기니 마치 기차에 몰래 올라탄 부정승차자를 쳐다보는 듯했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은 은근히 상처가 됐다.


마지막 날은 아예 작정하고 열차에 타자마자 열차 카페 칸으로 향했다. 마침 고장난 PC이용좌석이 있었고 그곳에 짐을 풀었다. 동해역에서 출발해 서울로 돌아왔는데 근 5시간을 그곳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동해에서 태백, 원주로 내려올수록 점점 많은 사람들이 열차를 가득 채웠다. 불편한 좌석에 허리가 아파오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래도 저렇게 서서가는 이들보단 낫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나의 계획은 동해가 끝이 아니었다. 원주에 잠시 내려 그곳에 사는 친구의 얼굴을 보고 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불편한 좌석, 밀려드는 사람들에 치인 나는 그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향했다.

내일로를 인터넷에 쳐보면 '젊은 시절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청소년만을 위해 초저가 특별상품으로 기획되었으며'로 시작하는 소개글이 나온다.

특별한 상품이다. 청춘만의 특권, 그 열정으로 전국 곳곳을 기차로 여행할 수 있는 내일로 티켓은 정말 특별하다. 내일로를 꿈꾸는 모든 이들이 '특별상품'이라는 단어를 보고 황홀경에 빠진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러나 '초저가'라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그만큼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알아야 한다. 짧게는 한 시간에서 많게는 다섯 시간 이상을 서거나 혹은 바닥에 퍼질러 앉아 여행해야 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촘촘하고 치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생존여행

 내일로 여행 중 제공되는 이불.
내일로 여행 중 제공되는 이불.강혜란

기차에서 눈치보며 쪼그려 앉았다, 퍼질러 앉았다를 반복하며 3일을 여행했더니 결국 몸에 탈이 나고 말았다. 밀려오는 피로와 근육통에 급기야 찜질방에서 끙끙 앓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원래 일정을 도저히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아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올라가기 전 집으로 향했다. 하룻밤만 자고 새벽에 다시 떠나야지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꼬박 하루를 쉬고 4일째에 다시 길을 떠났다. 물론 또다시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였다.

그래도 원기회복한 후 향했던 민둥산역에서 다시금 활력을 되찾았다. 친절한 역무원 아저씨가 고마웠고 내일로여행을 하며 다른 '내일로어'들과 함께 치킨과 맥주로 저녁시간을 보낸 것도 좋았다. 다시 문제가 생긴 것은 밤이 되면서였다.

나는 내일로 플러스 혜택을 이용해 민둥산역의 숙소에서 하룻밤 보내기로 되어있었다. '내일로 플러스'란 내일로 티켓이 나날이 발전해가며 각 철도역에서 내일로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내건 홍보전략이다. 자신이 출발하는 곳 혹은 사는 곳이 아닌 특정 역에서 발권을 하면 여행 중 그 역에 들렀을 시 역사에서 무료숙박을 할 수 있다. 또, 각종 관광상품을 할인받을 수 있는데 나는 친구의 추천으로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역에서 발권했다. 그곳 역의 무료숙박 매력에 끌렸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도착한 민둥산역에서 무료숙박을 하게 됐다. 역무원을 따라간 숙소는 얼핏 깔끔하고 정돈돼 보였다. 하지만 막상 이불을 펴보니 이 이불은 언제 빨았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불만스럽긴 했지만 감히 그것에 대해 말할 처지는 못됐다. 나는 그저 무료로 제공되는 숙소에 감사해야하는 가난한 내일로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곳을 거쳐간 수많은 내일로어들이 그저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지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씁쓸해졌다. 내일로어들 대부분 찜질방이나 게스트 하우스를 전전하며 여행 내내 편하게 지내지 못하는 불편함에 힘들었을 터였다.

나 또한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와 핸드폰 만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기를 여러번 했다. 내일로어 중 누군가는 가벼운 침낭을 가지고 다닌다고도 했다. 내일로 플러스를 비롯 수많은 찜질방과 여관이 있는데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것은 유난이 아니었다. 내일로 여행을 떠나기 전 좀더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야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열차 시간표 8월 5일 기준 정선의 민둥산역에서 강릉역으로 가는 열차 시간표. 생각보다 배차 간격이 크다
열차 시간표8월 5일 기준 정선의 민둥산역에서 강릉역으로 가는 열차 시간표. 생각보다 배차 간격이 크다강혜란

다음날 일정은 강릉 경포호수를 걷는 것이었다. 잠들기 전 역에서 기차 시간표를 확인했다. 강릉으로 가는 기차는 새벽 2시가 아니면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있었다. 밤 기차를 타고 떠날 것인가 아니면 잠을 자고 오전 10시가 넘어서 기차를 탈 것인가 고민을 하다가 다음날 오전에 떠나기로 했다. 결국 강릉에는 그 다음 날 1시가 훌쩍 넘어 도착했고 나는 계획했던 일정을 모두 소화할 수 없었다.

수많은 열차가 오고가는데 내가 타고자 하는 열차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오기란 힘들었다. 물론 미리 확인하지 않은 나의 불찰이 가장 컸다. 하지만 정선(민둥산역)에서 강릉까지 배차 간격이 그렇게 클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좀더 철저한 확인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깨끗하지 못했던 역 숙소나 배차 간격이 큰 열차 시간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뽀송뽀송한 하얀 이불을 원한다면 호텔을 갔어야 했고, 원하는 시간에 움직이길 원한다면 자가용을 탔어야 했다. 나는 그만큼의 불편을 감수해야할 각오를 좀 더 철저히 하고, 계획을 좀더 치밀하게 세웠어야 함을 후회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길을 떠나지 않은 내일로어들에게 나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미리 알려주고 싶다. 내일로 여행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직 떠나지 않은 내일로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준비를 필요로 함을 알아야 한다.

철저하게 혼자였던 시간들... 외로웠다

 내일로 기차여행 중.
내일로 기차여행 중. 강혜란

결국 나는 여행이 끝난 후 내 스스로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를 맛본 '내일로어'였다고 결론지었다. 부산에서 먹었던 맛있는 회, 민둥산역에서 만났던 친절한 역무원 아저씨, 강릉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경포호수는 황홀할 만 했다. 이것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피곤했던 일정, 불편한 잠자리, 그리고 몇 날 며칠 혼자여서 느낀 지독한 외로움은 나에겐 절반의 실패였다.

철저하게 혼자였던 시간들. 사실 처음 그것을 바라기도 했다. 친구와 가장 싸우기 좋은 기회(?)가 여행이라는 말에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에, 한번쯤 혼자 여행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도 있었다. 그러나 나의 상상보다 훨씬 더 외로운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나 혼자 등산화를 손에 들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거니는 바닷가는 모두가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여름의 그곳에서는 이질적이었다.

상상한 것처럼 "내일로어세요?"하고 말 걸어오는 이들 또한 없다. 내일로 여행에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같은 꿋꿋함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인사하는 친화력 또한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지치지 않는 체력은 필수다.

피곤한 일상에 찌들어 있다면, 내일로 여행은 '보류'

지금 당장 내가 피곤한 일상에 찌들어 어딘가로 여행을 가고 싶은 이라면 내일로 여행은 보류하는 것이 좋겠다. 사람들이 덜 찾는 한적한 어느 곳으로 열차표를 끊어 그 곳에 틀어박혀 쉬는 것이 나을 것이다.

지금 당장 친구들과 어울려놀고 싶은 이들에게도 내일로보다 동해안 어느 바다로 떠날 것을 권한다. 그 곳에서 민박집 혹은 펜션을 잡아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를 즐기고 해수욕을 즐기는 것이 훨씬 더 즐거울 수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 공부하는 방식, 사람들과 친해지는 방식, 심지어 자는 방식까지도. 여행도 다르지 않다. 여행에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야 하고 알아야 한다. 내일로 여행 절반의 실패자였던 나, 나는 내 발로 끝없이 걷는 것을 좋아했고, 느긋하게 쉬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나에게 열차에서 보낸 시간은 너무 아까웠다. 난 친구들에게 말했다.

"고마 내는 쎄리 걸어 댕겨야겠따."
#내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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