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5당 서울시의회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부자아이 가난한 아이 편 가르는 나쁜투표 거부 시민운동본부 발족식'을 열고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철회를 촉구했다. 참석자들이 친환경무상급식 실현을 위해 주민투표 거부운동에 나서겠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주민투표는 참여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지만, 모든 주민투표가 그런 것은 아니다. 프랑스 헌법학에서는 주민(국민)투표를 크게 '위로부터의 주(국)민투표(plebiscite)'와 '아래로부터의 주(국)민투표(referendum)'로 구분한다.
아래로부터의 국민투표가 국민 스스로 투표의 시기와 내용을 발의할 수 있는 '국민주도적'인 것이라면, 위로부터의 국민투표는 대통령 등 권력자가 투표의 시기나 내용을 배타적으로 결정하는 성격을 갖는다. 이런 이유로 흔히 위로부터의 주민투표(plebiscite)는 '신임투표'라고도 불리며, 투표를 제안하는 권력자의 정책적 수단으로 이용되곤 했다.
이번 주민투표 역시 주민들의 연서명이라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위로부터 기획되고 추진되어 왔다. 애초부터 주민투표의 발의과정에 오세훈 시장이 깊숙이 개입한 것은 물론, 6월 16일 복추본의 서명용지 앞에서 보란 듯이 주민투표 기자설명회를 개최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청구인 서명과 관련한 모든 질의에 복추본은 어떤 공식 답변도 한 적이 없으며, 대신 모든 답변은 서울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후 주민투표 추진과 관련한 일정과 계획도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 대변인을 통해 제공됐으며, 이를 자신의 신임과 연계시킨 발언을 쏟아낸 것도 오세훈 시장 자신이다.
지난 역사에서도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키려는 권력자가 국민투표 방식을 활용한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애초 국회 간선제였던 대통령 선거를 국민 직선제로 처음 바꾼 것도 한국전쟁 와중에 의회의 반대로 재선되지 못할 것을 우려한 이승만의 '부산정치파동'에 따른 것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투표 역시 5·16 쿠데타 이후 쿠데타 세력이 국민투표법을 제정하고 개헌을 추진하면서 이루어졌으며, 박정희의 3선 개헌안 통과 때도 국민투표가 동원됐고, 1972년 유신헌법을 통과시킬 때 이용되었던 것도 국민투표였다. 이런 투표는 투표를 제안한 권력자가 자기 마음대로 의제를 설정하고, 투표 시기를 정하면서 자신의 신임과 연계시키는, 전형적인 '위로부터의 국민투표'다.
우리 헌법재판소 또한 이런 식의 신임투표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지난 2004년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탄핵결정문'에서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신임투표'에 대해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재신임을 국민투표의 형태로 묻고자 하는 것은 헌법 제72조에 의하여 부여받은 국민투표부의권을 위헌적으로 행사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국민투표제도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남용해서는 안된다는 헌법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물론 이는 국민투표에 부정적인 보수적 헌법재판소의 시각을 드러낸 것이지만, 모든 국민투표를 동일한 참여민주주의 기제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주민투표가 과거 독재시절처럼 계엄을 선포하고 사이비 언론은 물론 역술인까지 동원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것은 아니더라도, 관제투표의 전형적 성격을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무상급식 의제, 서울시민 의사를 반영하고 있나더구나, 이번 주민투표는 서울 시민들이 진정한 자기 의사를 표출할 수 있도록 명료한 선택지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당초 복추본은 청구 대상을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실시'로 명기하고 서울시도 2월 9일 그 내용으로 공고를 냈지만, 6월 17일 서울시의 청구사실 공표에는 '단계적 무상급식과 전면적 무상급식 정책 중 하나를 선택하는 주민투표'로 바뀌었다.
게다가 실제 치러지는 투표 내용은 '단계적', '전면적'과 거리가 멀다. 투표의 선택지는 '소득 하위 50%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안'과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2011), 중학교(2012)에서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안' 중 선택하게 되어 있다.
문항을 잘 살펴본다면, 애초 서울시의회의 조례안 자체가 시기에 따라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복추본에서 제시한 안은 시기별 단계에 방점이 찍혀 있다기보다 무상급식 대상의 범위에 대한 것으로, 정확히 발해 선별적 무상급식 안이다.
서울시와 복추본은 주민들이 의제의 쟁점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선별적 무상급식'과 '보편적 무상급식'으로 구분하지 않고, 혼란을 줄 수 있는 '단계적', '전면적'이라는 표현을 강조함으로써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두 안 중 어느 것도 지지하지 않는 주민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중학교까지 무상급식을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소득 하위 90%정도로 확대하자는 주민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로 선관위에서도 '투표불참운동' 역시 합법적인 투표운동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오세훈의 꼼수, 성공 가능성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