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없이 '날라리 치마' 입고 2박3일 일정으로 강정마을에 온 '춤추는 날라리' 김세리씨. 이제 그는 소환장을 네개나 받은 '확신범'이 되었다.
김세리
역시 사전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날라리'라는 단어를 한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넣었더니 '언행이 어설프고 들떠서 미덥지 못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그나마 진화된 풀이가 '학교에서 공부를 안 하는 학생으로 말썽을 일으킴'이다. 이 풀이엔 '오픈사전'이란 단서가 붙어있다.
하지만 근래 날라리에 대한 사회적 관계 풀이와 해석은 사전의 의미와 크게 다르다. 사전은 날라리를 매우 부정적인 사회적 존재로 규정한다. 그런데 2011년 한국 사회에서 날라리는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발랄하고 똑똑하며 재능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날라리는 매우 긍정적 존재이며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배우 김여진씨와 방송인 김제동씨 등이 오늘날 날라리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제주 강정마을에도 날라리가 있다. 그 스스로의 안내처럼 "한때 무용을 했으나 전문 무용은 접은, 그렇지만 여전히 세상과 춤추고 있는" 날라리 김세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배우 김여진씨가 '외부세력'을 몰고 다닌다면, 그는 '당원'을 몰고 다닌다. 그는 '온라인 강정당'의 당수이다. 그는 벌써 약 400명이 넘는 '진성당원'을 거느리고 있다. '강정당'이라는 당명이 말해주듯 '당 강령'의 핵심은 강정마을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
강정마을 '날라리', 눈물의 힘을 믿다"2011년 4월 1일에 생명평화결사가 강정마을에서 주최하는 문화제가 있었어요. 영화상영을 초대 받아서 왔지요. 그래서 한 2박 3일 정도 일정으로 '날라리 치마(그는 길이가 길고 주름이 많으면서 너풀거리는 치마를 이렇게 표현했다)' 입고 아무 생각 없이 왔지요.마을 의례회관에서 4.3을 다룬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터>를 상영했는데, 영화평론가 양윤모(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으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석방) 선생님이 엄청 우는 거예요. 동네 할아버지들과 함께 봤는데 양 선생님이 '너무 위대한 영화'라고 극찬을 하시면서 '내가 이곳에 왜 있어야 하는지 알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 어떤 진정성이 그분으로 하여금 3년 동안 바닷가를 지키게 했을까, 얼마나 아름답기에 그럴까…. 그 다음날 새벽에 일출을 보러 중덕해안에 갔죠. 구럼비를 맨발로 걸었어요. 그때의 충격이란…. 그 거대한 바위에 파도가 치는데 숨이 콱 막히는 느낌이었어요. 봄이라 야생화는 바위 주변에 지천으로 피었구요. 꽃 하면 미치는 여자인데 운명 같은 날이었고, 운명 같은 아침이었어요. 구럼비를 반쯤이나 걸었나... 눈물이 줄줄 계속 나오는 거예요." 왜 운명의 순간엔 항상 그렇게 벼락 치듯 눈물이 쏟아지는 것일까. 우연의 뒤에 숨은 인생의 필연을 스스로 지켜보는 게 그렇게 눈물나는 일인 줄 예전엔 알았을까.
당위가 아닌 눈물로 새 길 떠난 이들에겐 특징이 있다.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국가든 사회구조든 위력을 발휘해 제압하고 관철하려들면 두려워하지 않고 싸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힘센 자가 아닌 여린 이를, 많이 가진 자가 아닌 가난한 이웃을 눈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구분할 수 있다면, 분별할 수 있다면 사랑이 아니다. 가늠지어 말할 수 있다면 계산되어 행할 수 있다면 사랑이 아니다. 말로 어찌할 수 없는 그 무엇, 몸으로 결코 증명할 수 없는 바로 그것, 사랑! 해서 눈물이 나는 것이다.